[시]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

산더미같이 쌓여진 그릇을 씻기 위해

개수대 앞에 선다.

밥 공기들을 하나 하나 '퐁퐁'을 묻혀 닦아내다가

문득 씻지도 않고 쓰는 마음이 손바닥에 만져졌다.

먹기 위해 쓰이는 그릇이나 

살기 위해 먹는 마음이나

한번 쓰고 나면 씻어두어야 

다음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라 싶었다.

그러나 물만 마시고도 씻어두는 유리컵만도 못한 내 마음은

때묻어 무엇 하나 담을 수가 없다.

금이 가고 얼룩진 영혼의 슬픈 그릇이여

깨어지고 이가 빠져 쓸 데가 없는 듯한 그릇을 골라내면서

마음도 이와 같이 가려낼 것은 가려내서 

담아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누룽지가 붙어서 좀처럼 씻어지지 않는 솥을 씻는다.

미움이 마음에 눌어붙으면

이처럼 닦아내기 어려울까.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는 주전자를 보면서

씻으면 씻을수록 반짝이는 찻잔을 보면서

영혼도 이와 같이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릇은 한 번만 써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뼈 속까지 씻으려 들면서

세상을 수십 년을 살면서도 마음 한번 비우지 못해

청정히 흐르는 물을 보아도 

때 묻은 정을 씻을 수가 없구나.

남의 티는 그리도 잘 보면서

제 가슴 하나 헹구지도 못하면서

오늘도 아침 저녁을 종종걸음치며

죄 없는 냄비의 얼굴만 닦고 닦는 것이다.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 / 송유미>

 

[시]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

 

 

 

예전에 지하철 어딘가에 붙어 있는 걸 읽고 

글이 너무 좋아서 저장해두고 보고 또 보는 글입니다.

사실 요즘 누군가가 부쩍 미워진 탓에 

마음이 힘들어서 또 한번 이 글을 꺼내보게 되었네요.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한게, 

미우면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인데

내 기분을 망치는 그 미움이란 마음을 쉽게 버리질 못하네요.

시원하게 흘러가는 개수대 물줄기에

저의 이 미움이란 감정도 같이 흘려보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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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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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od luck
    청소하고 나면 좀 개운한기가 있죠.
    어제 호박죽 통에 담는다고 한것이...
    청소로 이어 졌는데. 개운하던데요.
    설겆이도 그렇잖아요.
    음식을 하고 난후 산더미 같은 설겆이 하고 나면 개운함이 생기죠
    개수대 물줄기에 미움이란 감정이요??
    씽크대가 막히는 미움은 아닌거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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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루잠
      작성자
      음식이 눌어붙고 탄자국이 난 냄비도 물에 불리고 약품이라도 써서 박박 씻고 나면 깨끗해지고야 마는데 미움이 눌어붙은 마음은 어찌해야 깨끗해질지 모르겠습니다.
      굿럭님 아시잖아요. 저 환경에 관심 많은거요ㅋㅋㅋ 일단 덩어리가 크고 수질오염 시킬만한 감정은 잘 분리수거 해서 버려야지요ㅋㅋ근데 일단 눌어붙은 마음을 어찌 떼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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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
    우와 이 글이 그루잠님 통해서 다시 보게 되는군요. ㅎㅎ 
    저도 이 글을 아주 오래전부터 킵하면서 보고 또 보고 했던 글인데 역시 내가 좋아하는 그루잠님~! 내가 좋아하는 글을 귀신같이 알고 보고 또 보고 하시는군요. 저번에는 전경린 글귀도 그러셨잖아요. ㅎㅎ 
    개수대에 뭐 잘못 버리면 막힙니다. 그루잠님. 내 힘으로 뚫지 못하는 일 생겨요. 
    미운정이 원래 더 무서워서 생각만큼 잘 안되지만 적당히 생각하고 적당히 아파하고 적당히 흘려 보내는 그루잠님이시길 응원 합니다.
    힘드시겠다. ........그루잠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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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루잠
      작성자
      이 글 쓰면서 유리님 생각이 나더니 유리님도 역시나 좋아하는 글이였군요. 신기하네요ㅎㅎ 지하철역에 붙어있던 이 글이 눈에 밟혀서 생각날때마다 꺼내보고 있어요. 
      유리님 말씀처럼 적당히 아파하고 적당히 흘려보내야 하는데 가끔 미움이라는 감정은 주머니에 든 송곳처럼 마음을 뚫고 나와 생채기를 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미워하는건 나인데, 상처받는것 역시 나 자신이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지요. 그냥 무작정 미우면 실컷 미워만 하고 내 마음은 편할텐데 어설프게 못되고 어설프게 착한 인간이라 나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내나봅니다.
      잘 지나갈거예요 여느때처럼요.
      걱정과 응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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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나비
    어떤 순간에도,주인은 그루잠님 자신입니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미움이란 감정들은 그루잠님의 감정이 아니라고 "큰 마음,,의 주인은 본인이라고,...
    미움의감정들은 잠시 나를 찾아오는 손님일뿐이라고...
    그러니,손님만큼만 대우하고 바로 보내주세요,
    소중한 님의 육체와정신을 "큰 마음,,이 지켜낼수있게,
    깔끔하게 청소하심이 좋을듯요,
    뭐든~적당히는 오히려 더~키울뿐입니다,
    미움도미련도 빡빡~한방에~청소끝!!!
    소중한 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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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루잠
      작성자
      오늘도 마음이 너덜너덜해서 퇴근 후 집에 와서 씻고 가만히 앉아서 저 글을 읽고 또 읽습니다. 
      좋게 말하면 섬세하고 나쁘게 말하면 예민의 극치인 성격탓에 손님을 손님처럼 대하지 못하고 안방까지 내어줘버린 기분이네요.
      가끔씩, 이런 시기가 오곤 합니다. 가만히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면 어느 순간 이 태풍같은 감정도 사라지겠지요.
      생각이 많은 요즘입니다. 그래도 내 마음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곳까지 가지 않도록 잘 붙들어보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