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다보면 일상이 지루해져요. 다시 열심히 하시길 응원합니다
저는 7살 때부터 노래를 시작해, 국악풍 동요로 첫 대회 한 번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대상을 탔습니다. 노래를 배운 건 10년정도로, 올해 초까지 계속 노래를 배우고 있다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그만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노래를 너무 좋아하고, 여전히 국악풍 노래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노래를 포기한게 너무 후회됩니다.
저는 선천적으로 귀가 민감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병적으로 민감합니다. 음악활동을 할 때는 유리했지만, 동시에 큰 오점이었습니다. 악기소리를 들을 때마다 공황이 왔으니까요. 레슨을 받을 때도 귀를 막고 노래를 불렀고, 악기를 배울 때도 한 음 치고, 멈추고, 한 음 치고, 멈추고를 반복했습니다. 음악회나 콘서트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아빠가 몇 번 음악회에 데려가 주셨지만 10분도 못 버티고 울면서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올해 초에 결국 이 문제로 이비인후과를 찾았는데(엄마가 정신과를 싫어하셔서요), 검사 결과 달팽이관 나이가 8살에서 9살 정도였습니다. 청각은 어릴수록 민감한데, 제 본 나이보다 약 10살 정도 더 어렸습니다. 그래서 전 다른 사람들보다 소리가 훨씬 크게 들리고, 여전히 카페 같은 곳에 가면 CCTV나 스피커에서 들리는 바늘같은 소리도 듣습니다. 부모님은 이걸 아시고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집에 귀마개 한 박스를 사두셨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귀마개가 필요할 정도니까요. 이런 신체적인 특징 때문에 음악을 하기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엄마는 제가 노래를 배우는 걸 싫어하셨습니다. 제가 뭘 하든 마음에 안 들어 하셨습니다. 발레가 재밌다며 발레를 배울 때도 자기가 마음에 안 들면 말도 안하고 마음대로 끊어버린 후, 자기가 원하는 학원에 집어넣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성격이 소심한 저는 가족들 앞에선 필요하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엄마는 이걸 제가 노래를 대충대충 배운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딴 식으로 할 거면 끊어라", "가족들 앞에서 노래도 못하면 학원에 돈 낭비하는 거다."이렇게 말해놓고선 노래하다 실수하면 몇날 며칠을 놀려먹었습니다. 거기다 엄마는 자신이 예체능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체능을 하등하게 보셨습니다. 엄마가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가정 주부로 살고 계신 것도 한 몫 했겠지만, 예체능은 직업으로 삼으면 안되는 것, 스트레스 풀이의 오락으로 이해하셨습니다. 여동생은 미술을 잘 합니다. 고집이 세고,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집도 나가버리는 승질머리 나쁜 놈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여동생을 설득하는 걸 포기하시고 엄마가 대학 때 쓰시던 전공 책을 주시는 등 지지해주고 계십니다. 저도 여동생이 저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응원해주고 있고요. 남동생도 그림을 잘 그려서 아직 좀 어리긴 하지만, 미술 쪽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되니 부모님은 제가 당연히 공부를 택하길 바라십니다. 결국 저는 반 타의 반 자의로 현재는 특목고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저는 아직도 노래가 너무 좋습니다. 매일매일 노래를 들으며 가수의 기교, 음색 등을 분석하고 따라해보고, 오디션 영상을 보며 분석해보는게 제 취미이자 도파민입니다. 제가 부를 때 제일 행복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중학교 때 자살 고위험군 수준의 우울증을 4년동안 겪었습니다. 매일 죽기를 기도하고, 자해하고, 심할 때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며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원래 있던 불안장애와 공황장애가 심해졌고 대인기피증까지 오며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미친 듯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대회에 나가지 않았던 것같습니다.
사실 오늘 학교 축제 노래 대회에 신청을 넣은 상태입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요. 우울증도 많이 회복되었고, 공황장애도 거의 사라졌으니까 괜찮을 것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재밌는걸 내가 왜 그렇게 쉽게 포기했지'하는 생각도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