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astar
임상심리사
답변수 323ㆍ채택률 3%ㆍ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전문
평생 타지 않을 수도 없다는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용기를 내어 탑승까지 시도해 보셨지만, 심해지는 압박감과 호흡 곤란으로 결국 실패하셨을 때 느꼈을 좌절감과 덜컥 내려앉았을 공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외로운 고통인 것 같아요. 직접적인 사고를 당한 적이 없는데도 갑자기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내가 왜 이럴까 싶어 당황스럽겠지만, 최근 미디어나 주변에서 엘리베이터 사고 소식을 종종 접하셨던 것이 나의 무의식에 강렬한 위협 신호로 각인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비록 내 몸이 직접 겪은 일은 아닐지라도, 간접적으로 목격한 상황들이 뇌의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를 강하게 자극하여 내가 저 좁은 공간에 갇히면 탈출할 수 없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험 신호를 켜버린 것이지요. 뇌가 이 상황을 생명이 걸린 비상사태로 오인하면서 자율신경계가 과각성되고, 그 결과로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전형적인 공황발작 증상이 엘리베이터라는 특수한 공간과 결합하여 나타나게 된 것 같네요. 처음에는 운동삼아 계단으로 다니며 상황을 회피하셨던 것은 당장의 공포를 피하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였지만, 안타깝게도 회피는 뇌에게 잘못된 확신을 심어주어 공포증을 더 공고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그렇다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눈을 감고 무작정 타버리는 직면 방식 역시, 뇌에게 극심한 공포의 기억을 한 번 더 증명해 주는 꼴이 되어 실패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안전하게 끊어내기 위해서는 무조건 버텨내겠다는 무모한 결심보다, 뇌가 안심할 수 있도록 아주 작은 단계부터 통제력을 회복시켜 주는 체계적 둔감법이 필요합니다. 당장 엘리베이터에 타서 문을 닫는 연습을 하기보다는, 처음에는 문이 열려 있는 엘리베이터 내부를 밖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그다음 단계로 동행인과 함께 문이 열린 상태의 엘리베이터에 발만 디뎠다가 바로 내리는 연습을 하고, 이것이 편안해지면 딱 한 층만 이동해 보는 식으로 뇌가 단계별로 '어라, 갇혀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네'라는 안전한 경험을 재학습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탑승하기 전과 탑승한 순간에는 코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아주 길게 내뱉는 복식 호흡을 유지하며, 내 몸이 지금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잘못 켜진 비상벨 때문에 일시적으로 과부하가 걸린 것뿐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계속 상기시켜 주는 정서적 다독임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천천히 조금씩 할 수 있는만큼만 시도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