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깊이를 증명하는 아픈 시간들이네요. 그 긴 시간이 당신을 더 단단하게 안아주길 응원합니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늦게 찾아오는 사랑의 깨달음
“이별은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알려주는 마지막 증거다.”
—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
이별은 늘 준비되지 않은 얼굴로 찾아온다.
특히 그것이 ‘엄마와의 이별’일 때는 더 그렇다.
나는 엄마를 세상에 보내던 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별이란 떠나는 사람보다 남은 사람에게 훨씬 더 긴 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을.
엄마가 편찮으셨을 때, 나는 엄마를 직접 집에서 모시지 못했다.
현실이라는 이름의 벽 앞에서 우리는 요양원을 선택했고,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얼굴을 보러 가는 딸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날,
다시 마주한 엄마 앞에서 그 모든 말은 의미를 잃었다.
더 자주 손을 잡아드릴 걸,
더 오래 이야기를 들어드릴 걸,
“엄마”라는 말을 아끼지 말 걸.
후회는 너무 조용해서 더 아프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에야, 그 사랑을 어떻게 쓰지 못했는지 깨닫는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Elisabeth Kübler-Ross)
이별은 누군가를 잃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하지 못한 말들과 행동들을 한꺼번에 떠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슬펐다.
슬픔보다 더 무거운 건 ‘미안함’이었고,
그 미안함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가 완벽한 딸이길 바라셨을까,
아니면 그저 살아가며 엄마를 기억해주는 딸이길 바라셨을까.
“이별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사랑을 끝내지는 않는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éry)
지금의 나는 안다.
엄마와의 이별은 끝이 아니라,
엄마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시작이라는 것을.
후회 속에서도 사랑은 남았고,
그 사랑은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게 만든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아직 이별 앞에 서 있다면,
혹은 이미 이별을 지나왔다면,
부디 자신을 너무 오래 탓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늘 그 순간의 최선으로 사랑했을 뿐이니까.
이별은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은,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가장 인간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