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딜 가나 주식 이야기 뿐인 것 같습니다.
그 중에 단연코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누가 삼전닉스로 얼마나 벌었는가' 입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쌍끌이 하고 있는 이 종목에 투자해서 수익률이 몇 백 퍼센트가 났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다른 종목에 투자했다가 고점에 물려 있다는 이야기가 주된 주제이지요.
국장, 미장, 코인, 부동산 등등,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돈이 모이는 곳을 향하게 마련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요.
돈은 우리의 삶과 뗄 수 없는 존재니까요.
과거 몇 차례 있었던 주식과 코인 황금기 때의 분위기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만 모이면 돈 이야기였고 방송 매체에서도 연일 돈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지요.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누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정작 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요.
돈이 많으면 좋다는 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돈이 얼마나 많아야 좋은 것인지,
얼마나 돈이 많아야 불안감도 사라질 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1997년에 있었던 우리나라 IMF 외환위기 사태를 다룬 영화입니다.
뱅상 카셀이 출연했다기에 2018년 개봉 당시에도 영화관에서 보았고 이후로도 몇 차례 더 본 기억이 납니다.
볼 때마다 신기한 것은 영화를 보는 저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이예요.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권력자들의 야비함, 시스템의 무능함, 국민들의 헌신만 눈에 보였거든요.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재정국 차관 역할을 맡은 조우진 배우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는데 외환위기 사태 후 30년 뒤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지금 조우진 배우가 한 말에 일부는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신기하면서도 조금 씁쓸해지는 대목입니다.
오늘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통해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 생긴다
<워런 버핏>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국가 경제가 무너져 내리는 위기 속에서
누군가는 이를 막기 위해 애쓰고 누군가는 다가올 위기를 이용해 돈을 벌 기회를 찾지요.
또 누군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영화를 보면서 늘 가장 인상에 남는 사람은 한갑수 역할을 맡은 허준호 배우입니다.
한갑수는 국가 부도 위기를 처음으로 예측하고 대책팀에 투입된 작품의 주인공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의 오빠이기도 합니다.
그는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자 그릇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으로 어느 날 백화점에 5억원 규모의 그릇 납품 제안을 받고 기뻐하지요.
하지만 평소에 현금 거래를 하던 발주처에서 어음 거래를 요청하자 계약을 주저하지만
표면적으로는 호황인 경제 상황, 무엇보다 영세 기업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5억원이라는 거래 규모에 결국 계약서에 날인을 하지요.
하지만 하필 납품처였던 백화점은 미도파백화점이었고 미도파백화점이 채무를 갚지 못하자 납품을 하던 영세 업체들이 줄도산을 하게 되고 갑수의 공장 또한 도산의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제가 영화에서 늘 갑수가 인상에 남는 이유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살아가던 평범했던 우리 집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을 경험한 분들은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평범한 회사원이 갑자기 실직자가 되고
평생 일구었던 사업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집에는 빨간 딱지가 붙던 그 시절이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수 많은 가정이 붕괴되었지요.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그들에게 비극이 벌어진 이유는 단 한 가지.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돈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은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일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요.
요즘은 예전보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훨씬 많고 사람들도 투자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지만
많은 경우는 편향적인 정보만을 받아들이거나 아예 자신이 투자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왜 오르는지,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수익을 내고 있을지는 몰라도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갑자기 주식이 떨어질 때, 혹은 다른 기업에 투자해서 손실을 보고 있을 때 방어하기가 어렵겠지요.
무엇을 사고 있는지 모르고,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우리는 언제든 또 다른 갑수가 될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져라.
<워런 버핏>
[국가부도의 날]에는 희생자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사람들도 존재하지요.
대표적인 인물이 금융맨 정학입니다.
정학은 외환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주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잘 다니던 증권 회사를 그만 둡니다. 퇴직금까지 야무지게 챙겨서요.
그리고 자본금으로 달러를 사들이고 투자를 준비하지요.
외환위기의 공포가 온 나라를 뒤흔들자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것들을 팔아 치우기 시작하고 정학은 헐값에 그것들을 매입합니다.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위기를 정학은 기회로 본 것이지요.
저는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정학이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절망에 빠져 울부짖을 때, 자신의 주머니를 불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거든요.
하지만 정학에게도 본받을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정학은 운이 좋아서 돈을 번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외면하던 현실을 똑바로 보았고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기회로 만든 사람이니까요.
저에게는 없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과 선택에 대한 책임감은 분명 본받을 만한 점인 것 같습니다.
워런 버핏이 말한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져라.'의 의미는
아마도 공포에 휩쓸리지 말고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돈은 정보에 따라 움직이고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오기 마련이니까요.
저도 남들의 말에 휩쓸리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돈은 훌륭한 하인이지만
형편없는 주인이다.
<프란시스 베이컨>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갑수나 정학과 같이 돈으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참 묘한 기분이 듭니다.
돈이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돈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게 이용 당하는 것 같은 삶을 살게 될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갑수는 가족에게 더 나은 삶을 만들어 주고 회사를 성장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지만
부도 위기를 겪으면서 마치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변해버립니다.
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에도 주식창으로 몇 번이나 들여다 보면서 이 종목을 사야 할지 고민하고
수시로 계좌를 확인하며 수익률을 확인하지요.
요즘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돈 계산을 하면서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내가 돈을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돈이 나를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질 때도 있습니다.
분명 돈은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내 생활을 포기하기도 하고 극단적으로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지요.
이 때가 돈이 우리의 하인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 버리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저는 [국가부도의 날]을 볼 때마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던 그 시절을 떠올림과 동시에
나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돈은 분명 훌륭한 하인이지만 주객이 전도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시장은 비합리적인 상태를
생각보다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국가부도의 날]과 비슷한 결을 가진 영화들을 보면
위기를 알리려는 주인공과 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반대 세력(주로 권력자들)의 대립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클리셰처럼 영화에 등장합니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또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경제는 계속 성장할 것이고 호황도 이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쩌면 이 상황은 케인스가 말한 '비합리적인 상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모습은 투자 시장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지요.
위험 신호가 나타나고 있는데도 "이번에는 다르다" 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세계적인 사례를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미국 대공황, 일본 버블 경제, 아시아 금융위기, 닷컴 버블 등등 끝없이 이어지는 핑크빛 미래를 전망했지만 결국 사라져버린 케이스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몇 가지 사례들만 꼽아보아도 모든 거품은 언제가 가장 낙관적인 순간에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거품이 터지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위험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케인스의 말처럼 시장은 비합리적인 상태를 생각보다 오래 유지하기도 하니까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었죠,
이렇게 까지 오르는게 맞나 싶은데 연일 긍정적인 전망만 쏟아지고
수십 배의 수익을 거둔 사람들의 인증을 보다 보면 나만 기회를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은 조급함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들어갔다가 폭망한 경험이 참 많습니다....
시장은 늘 이성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좋은 기업의 주가가 이유 없이 떨어지기도 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상승하는 경우도 있죠.
가장 문제는 이 비합리적인 상황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투자를 할 때는 수익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희망 섞인 기대인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지식에 대한 투자는
최고의 이자를 준다.
<벤자민 프랭클린>
[국가부도의 날]은 많은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 중에 하나는 '돈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메시지입니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돈 때문에 움직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더 큰 부를 얻기 위해서 돈을 쫓지요.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매번 조금씩 달라지지만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생각은 바로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돈이 많으면 분명 많은 것이 해결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이 가져다주는 안정감, 자유,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는 안도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의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지식에 대한 투자는 최고의 이자를 준다'라는 말은 단순히 투자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무엇이 진짜 가치 있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인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더라도 돈의 목적을 모른다면 결국에는 돈에 휘둘리게 될 뿐이니까요.
[국가부도의 날]은 우리나라가 겪었던 외환위기에 대한 영화이지만
저에게는 돈을 바라보는 법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돈을 얼마나 벌고 싶은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