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측두엽 치매_기억력 저하보다 행동변화가 먼저 나타날 수 있어요.

이 이야기는 저와 아주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계셨어요.

젊은 시절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안 해본 일 없이 닥치는 대로 일하시다가 얻은 병이었죠.

자식들은 어머니의 고생에 보답이라도 하듯 잘 자라서 

밥벌이도 하고 각자 가정도 이루어서 이제는 좀 안정된 환경을 갖게 되나 싶었다고 합니다.

이제 어머니께 맛있는 음식도 사드릴 수 있게 되었고

엄청 비싼 건 아니더라도 때가 되면 선물도 사드릴 수 있게 되었죠.

맛있는 음식도, 선물도 좋아하셨지만 

어머니께서 가장 기뻐하셨던 순간은 손자 손녀들이 태어났을 때였어요.

여느 할머니들처럼 손주들 주려고 맛있는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시기도 하고

아이들 용돈 챙겨주려고 쌈짓돈도 모아두셨어요.

평생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가장 행복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안 분위기는 또 한번 달라졌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학원을 다니느라 바쁘고

여가 시간에는 친구들과 만나서 노느라 더 이상은 할머니 품을 찾지 않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어머니는 다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죠.

자녀들은 어머니께 복지관에 가보시거나 취미생활을 해보시라고 

이것저것 권유하고 등록도 해드려 보았지만

어머니는 그조차도 서너번 나가고 금방 그만 두셨다고 합니다.

아침 식사 후 동네 한바퀴를 돌고 오시는 것 말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집에서 보내셨죠.

처음에는 어머니가 평생 일만 해오신 분이라 

수영을 하거나 노래 교실을 다니는 것이 어색해서 그러신가 생각했대요.

솔직히 각자 일하고 애들 키우느라 어머니께 신경을 많이 못쓴 건 사실이겠죠.

 

어느 날 어머니의 집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방 한 칸에 남들이 버린 쓰레기를 잔뜩 모아두신 걸 보게 된거죠.

고장난 자명종 시계, 오래된 선풍기, 더러운 옷가지들이요.

처음에는 이런 걸 왜 주워오셨냐고 물어봤대요.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직 쓸 수 있는거야. 버리기 아까워"라고 하셨고요.

이후로 몇 번 쓰레기를 버려드렸지만

자녀들이 돌아가고 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쓰레기장에 나가서 다시 물건을 주워오셨죠.

 

다들 이 대목에서 왜 그때 병원에 모시고 가지 않았냐고 다그쳤어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사실 저는 자녀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어머니 세대는 뭐든 아끼며 사셨던 세대니까 그러시겠지. 

-우리 어머니는 원래 알뜰한 분이시니까.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직 쓸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혼자 계시기 적적해서 자꾸 이런 걸 모으시나봐. 

-기억력에는 큰 문제는 없으니까 괜찮을거야.

 

저라도, 

어머니의 이런 행동을 성격 탓, 우울증 탓, 환경 탓으로 돌리고 싶을 것 같아요.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병, 

절대로 아니었으면 좋겠는 그 병,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정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겠지요.

 

하지만 어머니의 모으는 행동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위생 상태는 점점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어요.

냉장고에는 썩은 음식이 가득하고

씻지 않은 더러운 그릇과 옷가지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죠.

그리고 누구보다 깔끔하던 어머니는 점점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으려고 하셨대요.

씻겨 드리겠다고 하거나 옷을 갈아입도록 권하면

"내가 더럽니? 냄새나니?" 하며 불같이 화를 내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어요.

어머니는 예전에 당뇨 초기 진단을 받으셨고 원래는 식이 조절을 잘 하던 분이었죠

그런 어머니가 유일하게 끊지 못하신 음식이 믹스커피였는데

그래도 신경을 쓰셔서 이 삼일에 한 번 정도로 조절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자녀들이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믹스커피를 하루에 10개 이상을 드셔버린거에요.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되셨고 

신경과 진료를 보는게 좋겠다는 주치의의 권유로 치매 검사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MRI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진 형식의 검사를 마치고 난 뒤 

최종적으로 받게 된 진단은 이름도 낯선 "행동변이 전두측두엽 치매".

생전 처음 듣는 병명에 어안이 벙벙해졌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기억력 저하 보다 성격이나 행동, 언어, 감정조절의 문제가 더 먼저 나타날 수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단순히 나이가 들더니 성격이 이상해졌다고만 생각하여 

늦게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완치는 불가능하고 증상 완화와 진행 속도를 늦추는 방법 밖에 없다는 사실도요.

 

지금 저의 지인은 다른 형제들과 힘을 합쳐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어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게 해보았지만 자꾸 다른 어르신들과 다투시는 통에 

더는 센터에 다니시게 할 수 없었대요.

방문 요양서비스를 이용해보았지만

요양보호사님들을 도둑으로 몰거나 난폭한 행동을 하셔서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최근 저의 지인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는 여러 명이서 어머니 한 분을 모시는 것도 이렇게 버겁고 힘든데

어머니 한 분이 어떻게 우리 여러 명을 키워내신걸까, 하고요.

 

다른 많은 질환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치매라는 병은 정말 나를 잃어가는 질환이기에 더 슬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치매에 대한 세상의 인식 때문에 빨리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는 것이 사실이고요.

그렇기에 끝까지 아니라고 믿고 싶어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들을 붙들고 병원에 가는 것을 자꾸만 미루게 되지요.

하지만 그 사이에도 병은 멈추지 않고 천천히 삶을 바꿔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느껴졌을 때 빨리 내원하시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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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익명1
    어머니의 헌신과 자녀분들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아프네요. 보호자가 참 힘든 병일거에요. 병원을 미루고 싶었던 그 마음마저 사랑이었을 거예요 두 분 모두 부디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