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아주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계셨어요.
젊은 시절 사별한 뒤 어렵게 자녀들을 키우시느라 자신의 건강을 돌볼 틈이 없으셨거든요.
어머니의 고생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는 잘 자라서 결혼을 했고 어머니께 손주들도 안겨드렸어요.
그 시절이 지금까지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 중 가장 행복해 보이셨던 때라고 합니다.
손주들이 자라면서 어머니는 다시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이제는 즐기면서 사시라고 여행도 보내드리고 복지관 프로그램에도 등록해드렸지만
어머니는 동네 한바퀴를 돌고 오시는 것 말고는 하루종일 집에만 계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어머니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 하셨대요.
자꾸 못쓰는 물건들을 주워 오셨던거죠.
망가진 우산이나 고장난 선풍기, 걸레로도 못 쓸 것 같은 옷가지로 집안이 점점 엉망이 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으셨대요.
손주들이 할머니에게 냄새가 난다고 곁에 가지 않아도 어머니는 화만 내셨다고 합니다.
어려운 살림이었어도 평생을 단정하고 깔끔하게 살아오셨던 어머니의 낯선 모습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당뇨를 앓고 계시던 어머니가 믹스커피를 하루에 10봉지씩 드시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되셨어요.
병원에 입원해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집에 가겠다며 난동을 피우셨다고 해요.
그 때 담당 주치의로부터 신경과 진료를 권유 받았다고 합니다.
신경과 담당 선생님은 치매 검사와 뇌영상 검사를 진행하자고 하셨답니다.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1시간이 훌쩍 넘게 걸리는 문진으로 진행되는 검사를 제일 먼저 했대요.
선생님은 어머니께 어디가 불편하신지, 기억력은 어떠신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등등 일상과 관련된 질문하고
1시간이 넘게 한참 동안 단어를 기억하게 하거나 그림을 그려보게 하는 인지검사를 진행했고
마지막으로 보호자에게 어머니의 변화와 일상생활에 관한 문진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났어요.
검사 자체도 매우 길었는데 어머니가 여러 번 화를 내시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시거나
선생님께 거친 행동을 하시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MRI와 PET이라는 뇌영상 검사를 진행했는데 이 역시도 굉장히 힘들었다고 해요.
특히 MRI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장비 안에서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계속 움직이시는 통에
예정된 검사 시간보다 훨씬 길어졌다고 하고요.
다행히도 선생님들께서 이런 일은 치매 검사를 할 때는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주시고
일단 지금까지 촬영한 영상을 보고 주치의가 판단할테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켜주셨대요.
PET이라는 것도 이름만 언뜻 들어봤던 검사였는데
뇌의 어떤 부위가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검사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니처럼 성격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에는 꼭 필요한 검사라는 설명도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 알게 된 어머니의 진단명은
이름도 낯선 "행동변이 전두측두엽 치매" 였다고 합니다.
뇌 위축이 진행된 상태였고 문진 검사에서도 전반적인 인지기능에 저하가 분명하게 관찰되었다고 해요.
특히 전두엽과 측두엽의 대사 저하도 분명하게 나타났고요.
살면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지요.
치매는 알츠하이머나 알콜성 치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진단명을 듣고 와서 검색 보니 너무 많은 종류의 치매가 있어서 한참 동안 멍해졌다고 합니다.
진단을 받고 처음 시작한 약물은 아리셉트와 쿠에티아핀이었어요.
처음에는 낮은 용량부터 시작하자고 하셔서
아리셉트는 5mg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 약을 복용하고 난 뒤 속이 좀 불편하다고 하시며 식사량이 줄어 들었고
평소보다 잠을 많이 주무셨대요.
그래도 차츰 속이 거북한 증상은 사라져서 현재는 10mg으로 증량한 상태라고 합니다.
치료를 시작하고 난 뒤 제가 어머니의 상태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사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고 합니다.
외부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쓰레기를 모으시는 행동은 확실히 줄어들었고
화도 예전보다는 덜 내시는 것 같은데
그게 자신이 어머니의 병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약물 효과 때문인지는 확실하게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자신도 주치의에게 약을 복용하는 이유는 완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증상을 완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는 말도 하더군요.
그리고 이제는 어머니가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하시면 짜증부터 났는데
지금은 처음 답변해드리는 것처럼 반응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하고요.
치매는 정말 어렵고 슬픈 병인 것 같습니다.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는데 예전과 너무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이해도 되지 않고
그게 나의 어머니, 아버지이면 더더욱 받아들이기가 힘들지요.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님이란 늘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존재이니까요.
그래서 점점 어린 아이가 되어가는 부모님을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힘들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진행될지, 얼마나 오랫동안 곁에서 돌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많을 것 같고요.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들 중에 아직 병원을 찾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찾으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그리고 진단을 받으신 분이 계시다면 약물 치료 외에 주간보호센터나 방문요양서비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셨으면 좋겠고요.
치매가 꼭 기억력 저하만으로 시작되는 것만이 아니라고 하니 부모님이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신다면 단순히 나이 탓으로 넘기지 마시고 주의 깊게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