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잠에 예민했어요.
아주 어릴 때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제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뭔가 조금만 마음이 불편하면
늘 머리가 아팠고 그날 밤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죠.
저의 선천성(?) 불면증은 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 이어졌어요.
제 주변 사람들이 저의 불면증을 전부 알고 있을 정도로요.
운동도 해보고 명상도 해보고, 어디서 주워들은 3분이면 잠이 온다는 호흡법도 해보고
그 시절에는 우리나라에 멜라토닌이 없었거든요.
친구가 해외 직구로 구해준 멜라토닌도 먹어보고 상추도 한트럭은 먹었을거에요.
약을 복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알려져 있는 방법은 거의 다 시도해 보았을거에요.
하지만 저에게는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죠.
그러다가 제 인생을 뒤흔든 사건을 겪은 뒤로 저의 불면증은 극도로 심해졌어요.
거의 한 달이 넘도록 잠을 자지 못한 채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져갔죠.
잠을 자려고 누우면 제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고 몸은 기진맥진에 정신도 흐려져 가는데 도무지 잠은 오지 않았어요.
누가 보아도 곧 죽을 것 같은 몰골이 될때 쯤 저는 처음 정신과를 찾았고 수면제를 처방받았어요.
▪️치료 유형과 선택한 이유
약의 복용을 미뤘던 이유는, 당시에는 정신과를 찾는 것이 지금보다 더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저는 늘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불면증을 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는다는 것은 당시의 제 기준에서 더 심각한 것으로 느껴지는 질환,
예를 들면 조현병이나 발달장애 같은 병만 해당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리고 약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되었고
잠을 자지 못하는 것으로 약을 먹는 게 맞는 것인지 저 혼자 판단하기도 어려웠어요.
하지만 더 이상은 혼자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서야 병원을 찾았죠.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병원에 대해서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제일 먼저 보이는 정신과를 찾았던 것 같아요.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처음에는 스틸녹스 서방정을 복용했어요.
그런데 저에게는 약이 잘 맞지 않았는지 약을 복용하고 난 다음 날이면
한낮이 될 때까지 멍하고 몸이 너무 쳐지더라고요.
저는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는데 대화를 하다가 자꾸 엉뚱한 말을 하기도 했어요.
4일차 쯤에는 몽유병처럼 밤에 돌아다니기도 했대요. 저는 기억이 없는데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두통이 너무 심했어요.
다시 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은 뒤 알프람과 트라조돈으로 약을 조절했지요.
다행히도 알프람과 트라조돈은 부작용이 거의 없었고
6시간 정도 깨지 않고 잠드는 날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치료 후 언제쯤, 어떤 변화를 느꼈는지.
약의 최대 장점은 '즉각적'이라는 것이죠.
스틸녹스를 처음 복용했던 날도 거의 마취 된 것처럼 잠을 잘 자기는 했거든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 저에게 스틸녹스는 부작용이 너무 심했어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알프람과 트라조돈으로 약을 조절했는데
이 약도 한동안은 부작용이 생길까봐 불안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조절한 약은 부작용은 없었고 기존의 약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게 잠이 들었던 것 같아요.
물론 약을 복용한 뒤로 늘 숙면을 취하게 된 것은 아니었어요.
여전히 중간에 깨기도 했고 약을 먹고도 잠들지 못하는 날도 있었거든요.
그래도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잠을 잔다는 것 자체가 예전처럼 극단적으로 두렵지는 않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해가 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잠드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뒤로는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긴 것 같아요.
복용에 익숙해진 뒤부터는 수면 시간이 6~7시간 정도 충분히 확보된 날에만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수면 시간이 충분하지 못해서 약을 복용하지 못한 날에는
'내일 약 먹고 푹 자면 되지 뭐'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뭐랄까.. 이제는 나 혼자 싸우는 느낌이 아니라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 치료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가장 힘들었던 건 부작용이 아니라 약의 효과가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솔직히 처음 약을 받아왔을 때는
약을 먹으면 바로 숙면을 취하고
아침이면 새 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약을 복용하자 처음에는 심한 부작용을 겪었고
약을 바꾼 뒤로는 약을 먹고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날도 있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힘들었던 점은
남들은 다 아무렇지도 않게 잠드는 걸 왜 나는 못할까.. 하는 자책감이었어요.
제가 볼 때 다른 사람들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잠에 빠지고
오히려 잠에서 깨지 못해서 알람을 수십 개 씩 맞춘다는데
나는 왜 이게 안될까 하는 생각이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치료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제가 생각한 것만큼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하루 이틀 점차 잠드는 날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전에는 잠을 싸워야 하는 대상처럼 느꼈지만
조금씩 수면의 질이 나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오늘 못 자면 내일 자면 되지' 와 같은 여유 있는 마음도 갖게 된 것도
제가 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에 큰 몫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병원에서 저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도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 전까지 잠을 못 잔다는 말을 하면
저는 늘 "남들 다 자는데 너는 왜 못 자?" "몸이 덜 피곤한가보지" 와 같은 냉담한 말이나
"생각이 너무 많은 거 아냐?" 생각을 하지 말아봐"
"억지로 자려고 하지 마, 그럼 자연스럽게 잠이 들꺼야."와 같은 말을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지금은 저라도 그렇게 말할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만
그때의 저는 그런 말조차 버겁고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환자와 의사'의 관계 이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아닌 제 3자가
지금 저의 상태가 왜 이런지, 약은 어떤 이유로 사용하는지 설명해주는 것이
오히려 저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것 같아요.
▪️치료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혹시 저처럼 잠드는 시간이 괴로운 분이 계시다면
절대로 혼자서 버티려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처음 병원에 갈 때, 특히 정신과를 찾아간다는 사실에 많이 불안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생각보다 별 것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치료를 시작한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처럼 부작용을 겪으실 수도 있고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하실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적어도 혼자 어둠 속에서 버티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질 수 있어요.
저는 아직도 아주 잘 자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어요.
적어도 밤마다 불안하고 초조하지는 않거든요.
잠으로 고민이 많으신 분들은 꼭 약을 드시는 것이 아니더라도
상담이라도 받아보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조금 느리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분명 다시 회복해나갈 수 있다는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