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오면 사람들은 쉰다.
하지만 나에게 밤이란 버티는 시간이다.
누군가에게 잠은 하루의 끝이지만
나에게 잠은 매번 처음부터 다시 풀어야 하는 숙제와 같다,
정답도 없고, 힌트도 없고, 포기한다고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아, 죽으면 이 고민이 끝나게 되니 언젠가는 끝이 날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불을 끄고 누우면 세상은 조용해지는데
내 머릿속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낮에는 미처 다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이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든다.
재미있었던 일, 웃겼던 일만 생각나면 좋을텐데
늘 밀려드는 것은 후회와 분노와 짜증으로 점철된 생각들 뿐이다.
이미 끝난 일들과 지나간 말들, 굳이 지금 떠올릴 필요가 없는 장면들까지 모두 한꺼번에 되살아난다.
오늘 하루를 보낸 것만으로도 내 몸은 이미 지쳐있다.
눈도 따갑고 심한 노동이라도 한 것처럼 온 몸 마디마디가 쑤시는데
이상하게도 잠드는 순간만큼은 끝까지 나를 비껴간다.
나는 어두운 방 안에 누워서
잠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잠과의 사투를 벌였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도 다른 건 무던했지만 잠에서 만큼은 예민했다고 한다.
내가 기억나는 시간의 어린 나는 잠자리를 무척이나 가렸고 밤에도 여러 번 깨는 편이었다.
늦은 밤 잠에서 깨면 컴컴한 방안이 너무나 무서웠다.
엄마는 나를 위해 항상 거실불이나 간접등을 켜두셨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방 안 풍경도 나에게는 공포였다.
옆에서 누가 자고 있어도, 자지 않고 있어도, 나에게 밤은 늘 무서운 시간이었다.
밤에 자다가 깨어 소리를 지르며 공황상태를 보이지만
다음 날 기억하지 못하는 소아 야경증이라고 부르는 증상도 자주 있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내가 어릴 때는 이런 일로 병원을 찾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저 악몽을 꿨나 보다 할 뿐.
다음 날 아침에 엄마나 아빠가 왜 그렇게 소리를 질렀냐고 물어보는데
어린 나는 기억나지 않는 그 순간이 너무 무서웠다.
그런 이유로 잠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더 풀기 힘든 숙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성인이 된 후에도 잠을 자기 위해 정말 모든 것을 다 해보았다.
운동도 했고, 햇빛도 쬐었고, 명상도 했고, 멜라토닌도 먹었다.
심지어 상추도 엄청나게 먹어보았다.
자기 1시간 전부터는 핸드폰도 보지 않았고
침대는 잠을 자는 공간으로 뇌가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기에
잠 자는 시간 외에는 침대에 눕지 않았다.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물밀듯이 밀려오는 생각은 도무지 내가 어찌할 재간이 없었다.
한 때는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보기도 했다.
작은 알약 하나에 기대어 오늘 밤은 잘 잠들 수 있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약의 효과는 들쑥날쑥이었다.
다행히 잠을 잘 자는 날도 있었지만
약을 먹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다음 날 하루종일 몽롱하고 몸이 땅으로 꺼질 것처럼 무거워서
하루가 엉망이 되었다.
이렇게 힘이 들면 그 다음 날은 잠들어야 맞는 것 같은데
내 몸은 기가 막히게도 잠들 시간이 되면 다시 깨어난다.
이런 탓에 나는 주변인들에게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시차 적응 중이다."라는 말을 한다.
우스개소리로 농담처럼 말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나는 잠과의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약도 이것저것 바꿔보았지만 어떤 약도 만족스러운 효과를 보지 못해서
나는 결국 약도 포기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잘 자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못 자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은 그냥 편하게 영상을 시청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남들 다 자는 새벽에 나가서 만보 걷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날이 쌓여갈수록
내 머리는 흐릿해지고 기억력도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하루는 흘러가니까.
잠들지 못하는 밤은 밀려드는 생각 때문인지
유난히 더 많은 일들을 겪은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밤이 찾아왔다.
나는 또 불을 끄고 누울 것이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벽을 바라보다가 한참을 뒤척거리겠지.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잠이 들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여느 때처럼 밝아오는 아침을 기다리게 되겠지.
이번에는 생각이 조금 더 늦게 밀려들기를.
몸이 먼저 잠들어버리기를.
그렇게 작은 가능성에 기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