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요. (가정폭력 PTSD)

가폭 피해자 분들은 읽기에 주의해주세요.

 

중학교 1학년 초,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을 때부터일까요.

아니면 더 어릴 적, 엄마와 아빠가 다투기 시작했을 때부터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언니는 대학 진학으로 타지역에 가게 되었고 집에는 엄마와 저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전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히스테리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아마 이혼의 스트레스, 자식만큼은 영원히 자신의 편이자 소유물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감정이 극에 달했던 것 같습니다.

 

소리만 지르는 수준의 히스테리가 폭력에 도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느날은 옷 정리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제 뺨을 때렸고, 머리채를 잡고 때리기도 했습니다. 입에 담기 힘든 폭언도 이어졌습니다. 옷걸이, 책상 스탠드 등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던졌고, 거실 의자처럼 큰 물건까지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면 저는 온 몸으로 그 폭력들을 받아내며 “그만”, “아파”,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말은 변명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다 네 잘못이다.”
“맞을 짓을 하지 마라.”
“네 마음대로 살 거면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

“죽고 싶으면 죽어, 왜 살아?“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엄마가 방에서 떠나고 나서야 부서진 물건들과 망가진 마음을 주워 담으며 매일 혼자 울었습니다. 그 방, 찢어진 벽지는 아직 그대로일까요?

 

이제는 저를 때리기만 해서는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한시간 가량의 폭언과 폭행을 이어간 후 저를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신발도 없이요. 심한 날에는 휴대폰을 정지시켜놓고 내쫓기도 했고, 옷을 벗긴 채 현관 밖으로 내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여고생을요. 보통 그렇게 쫓겨나면 늦은 밤까지 시내를 떠돌다가 잠복 근무 중인 형사에게 잡혀서, 형사에 의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엄마가 저를 내쫓아놓고 가출 신고를 했던 것입니다.

 

엄마에게 인솔이 완료되면, 형사는 엄마에게 말합니다.
“아이 키우기 힘드시죠.”
“요즘 애들 영악하죠.”
“이런 문제아 키우시느라 많이 힘드시겠어요.”

엄마는 형사에게 가출 신고를 할 때 뭐라고 말했길래 제가 이런 말을 들어야만 했을까요?

 

엄마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점점 사회적으로도 문제 있는 아이로 낙인찍혀 갔습니다. 형사님 말 들었지? 네가 문제야. 그 말은 제 정신을 점점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형사같은 대단한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하니 정말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옷 정리를 제때 하지 못했다는 등의 사소한 이유로 맞고, 죽으라는 소리를 들으며 집에서 쫓겨났지만, 남들은 저를 비행 청소년, 가출 청소년이라 불렀습니다. 오해라고 설명할 힘도 없었습니다.

 

가출 청소년 발견 시 즉시 신고하지 않고 보호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집에서 쫓겨난 뒤 친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잠시 친구 집에 머물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저조차도 가출 신고가 접수되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친구 집으로 들이닥쳤고, 친구 부모님에게 관련 법 내용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저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조차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집에서 쫓겨나더라도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습니다. 또 가출 신고를 했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결국 저는 도움을 받을 곳 하나 없이, 길거리의 위험을 그대로 감수해야 했습니다.

 

엄마의 통제는 점점 심해져, 하루하루 검열된 삶을 살았습니다. 제 휴대폰에 설치된 감시 어플은 제 일상을 범죄자처럼 만들었습니다. 그 어플에는 위치 추적 기능이 있었습니다. 인스타그램처럼 단순히 위치만 공유하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등록해둔 장소에서 떨어지면 즉시 엄마 휴대폰으로 알림이 갔습니다. 학교, 집, 학원이 아닌 다른 장소에 있으면 바로 부재중 전화가 쏟아졌습니다. 그 날은 집에 들어가면 몇 시간은 맞았어요.

 

뿐만 아니라 인터넷 검색 기록, 유튜브 시청 내역, 카카오톡과 문자 내용, 전화 내역까지 모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와 카카오톡을 하면 “얘는 누구니?” 하고 물어봅니다. 언제는 유튜브에서 청소년 마약 문제 관련 뉴스를 보다가 처음 듣는 마약 이름이 나와 인터넷에 검색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엄마의 날 선 목소리가 귀에 꽂혔습니다.

“너 이제는 마약도 하게?”
“미쳤구나.”

 

제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엄마는 또 저를 때렸고, 휴대폰을 던지고 목을 조르기도 했습니다. 어플을 삭제해도 즉시 알림이 갔기 때문에, 저는 늘 감시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제가 겪은 그 어플의 통제는 자녀 안심 보호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범죄자에게 채워지는 전자발찌에 가까웠습니다.

 

저에게 안전한 공간이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런 나날을 보내던 저는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 폐쇄 병동에 강제 입원을 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제가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은 아마도,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엄마가 너무나 상반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인지부조화라는 단어가 어울리겠어요. 저는 어렸을 때 엄마밖에 모르던 그런 아이였습니다. 유치원에 갈 때면 엄마와 떨어지는 게 싫어서 울고, 초등학생 때는 매일 엄마와 단 둘이 산책하고,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도 저를 매우 아껴주었습니다. 정말 완벽한 모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입니다. 저를 사랑하고 예뻐해주던 엄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다 나 때문인 거라고 매일 자책합니다. 맞아요 엄마 내가 다 망쳤어요.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예전처럼 나를 예뻐해주면 안될까요? 아직도 어린 시절의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요.

 

다시는 사랑받을 수 없는 걸 알기에 이렇게나 힘든 거겠죠.

 

 

 

 

 

 

폐쇄병동에는 총 두 차례에 걸쳐 입원했습니다. 마지막 입원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엄마 말대로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다는 생각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합니다. 운이 좋으면 영원한 잠에 들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불행하게도 깨어나게 됩니다. 자살시도를 한 날로부터 3일이 지나서요.

 

눈을 떠보니 응급실 비슷한 중환자실이였습니다. 그곳에서 산소 고압 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위 세척도 했다고 합니다. 머리에는 붕대가 감아져 있었습니다. 연탄을 침대 옆에 두고 약을 먹었는데, 의식불명 상태에서 침대 밖으로 굴러 떨어진 것 같습니다. 제가 떨어진 곳 머리맡에 연탄이 놓여져 있었고 결국 관자놀이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아직도 흉터는 그대로 있습니다. 약효가 대단하더라고요. 그 뜨거운 연탄 불이 제 살을 파고들어 녹이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길거리에서 연탄 고기구이집 냄새만 맡아도 힘듭니다.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장본인, 엄마의 차가운 눈빛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딸이 깨어나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나, 왜 그런 선택을 했냐는 슬픔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집에서 쫓겨나기 직전에 볼 수 있는 얼굴이였어요. 엄마는 말 없이 폐쇄병동 입원 서류를 내밀었습니다. 제가 죽던가 말던가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병원 측에서 자살 고위험군으로 입원을 권유한다며 어서 서명하라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정말, 그게 다였습니다. 이 말은 아직까지도 최악의 기억 속에서도 가장 최악의 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잘못했으면 엄마가 이렇게까지 변했을까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자살을 실패한 것도, 폐쇄병동에 또 간 것도, 화상 치료가 고통스러운 것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한 말은 너무나 아파요. 아직도 너무 아파 미칠 것 같아요.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설원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엄마는 그냥 죽으라고 한 게 아니라 정말 제가 죽어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과 표정,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깊게 다친 부분은 3도 화상이 아니라 제 마음이였습니다.

저는 이 기억을 끌어안고 남은 한 평생을 외로움에 사무치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 따뜻했던 엄마가 진짜였다면, 왜 나를 이렇게 대했을까요.

지금의 엄마가 진짜라면, 그 시절의 사랑은 뭐였을까요.

이 의문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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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익명1
    참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글에서 느껴지는 힘듦이 마음이 아픕니다. 더이상 외로움을 느끼지않기를 기도합니다.
  • 익명2
    가장 마음 아팠을 기억을 꺼내어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익명3
    마음이 아프네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아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