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병원가서 약 처방 받아서 먹으면 효과가 좋아요
얼마 전 불면증에 대한 고민상담글을 썼던 적이 있었지요.
그 글에서도 썼었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잠을 잘 자지 못했어요.
다른 건 다 무던한데 유난히 잠자리에 예민하고 깊은 잠을 잘 못자는 편이었다고 해요.
새벽에 눈을 뜨면 매일 보는 내 방 책상도, 장롱도 평소보다 더 크고 무섭게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어둠이 무섭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저는 잠을 잘 자지 못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잠이 잘 오는 방법에 대해서 조언을 많이 해줬죠.
운동을 하라거나, 명상을 해보라거나,
우리나라에는 멜라토닌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외국에 사는 친구는 멜라토닌을 보내주기도 했었고
잠이 잘 온다는 호흡법 배워서 해본 적도 있었어요.
상추를 먹으면 잠이 온다기에 상추도 정말 한 트럭은 먹었던 것 같아요.
약을 먹는 것을 제외하고 잠이 잘 온다는 모든 방법은 다 써본 것 같네요.
운이 좋으면 그날은 잠을 좀 잘 수 있는 날이었고 아니면 여전히 못 자는 날이기는 했지만요.
그러다가 정말 이러다가 죽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심각한 불면증을 겪게 된 시기가 있었어요.
정말... 오래간만에 떠올려보는 사건이네요.
제가 결혼을 전제로 만났던 친구와 뜻하지 않은 이별을 경험한 적이 있었거든요.
며칠 간은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밤에 자려고 누우면 제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커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봐줄 수 없는 몰골을 하고 그렇게 한 달 하고도 보름을 거의 잠들지 못했죠.
중간 중간 까무룩 잠든 적이 있을지도 몰라요. 안 그랬다면 아마 저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도 못했을테니까요.
보다 못한 가족들이 저에게 술을 권하기도 했어요.
제가 술을 한잔도 마시지 못하거든요.
술을 조금만 마셔도 피부에 두드러기 같은 것들이 올라오고 심장이 엄청 빨리 뛰어요.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제가 잠을 너무 못자니까 취해서라도 잠을 자보라고 엄마가 술을 사오셨더라고요.
워낙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조금만 마셔도 금방 취했고
그렇게 잠이 들 수 있었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어요.
30분에서 1시간 정도가 지나면 금방 잠이 깨더라고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결국 저는 신경정신과를 찾았어요.
정말, 정말, 자고 싶었어요.
잠이 들면 이 모든 괴로움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저는 잠이 드는 것에도, 수면 유지에도 어려움이 컸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스틸녹스 서방정을 처방해주셨어요.
불면증이 심해 보이지만 처음 약을 복용하는 것이니 점차 용량을 올리는 것이 안전하다며
가장 낮은 용량부터 시작해보자고 하시며 1주일치를 먼저 처방해주셨어요.
약을 복용하고 첫 날은 꽤나 성공적이었어요.
굉장히 오래간만에 6시간 정도 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한낮이 될 때까지 약기운이 떨어지지를 않더라고요.
정신이 몽롱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 몸 자체에 슬로우 모션이 걸려버린 느낌이었어요.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말을 하다가 혀를 씹기도 할 정도로요.
그래도 잠이 잘 오니 남은 약을 더 복용해보기로 했죠.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정신이 몽롱한 부작용은 계속 되더라고요.
4일째인가 5일째에는 약을 먹고 가족들보다 일찍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부모님이 말씀하시기로는 제가 밤 11시쯤 방에서 나와서
TV를 보고 있던 가족들에게 횡설수설하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더래요.
저는 기억이 전혀 나질 않고요.
결국 남은 약은 복용을 포기하고 다시 병원을 찾았어요.
스틸녹스가 효과는 좋지만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약이라고 설명해주시고
다른 약으로 조절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알프람과 트라조돈으로 처방을 바꿔주셨어요.
항우울제지만 수면을 돕는 기능이 있어서
졸피뎀 계열의 약에 부작용이 심한 분들에게 사용하는 약이라는 설명도 해주셨고요.
약을 바꾸고도 한동안은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 많이 불안했어요.
하지만 강제로 잠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스틸녹스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럽게 잠이 들 수 있었어요. 그 점은 좋았던 것 같아요.
물론 약을 바꿨다고 모든 것이 한번에 해결된 것은 아니었어요.
약을 복용하고도 잠들지 못하는 날도 있었고
여전히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는 날도 있었죠.
솔직히 약을 복용하면서도 아주 만족스러운 효과를 본 것은 아니었어요.
특히 약을 복용하고도 잠을 자지 못한 날은 다음 날 데미지가 상당했거든요.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고 멍하고 어지러웠죠.
하지만 며칠 간을 뜬 눈으로 밤을 세우던 시절과 비교하면 이 정도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성이 생길 수 있다고 하셔서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서서히 감량하기도 하고 쉬어보기도 했어요.
꽤 오랜 기간 병원을 다니며 처방을 받았지만
사실 1년 정도 지나고 난 뒤부터는 거의 약을 복용하지 않았어요.
다시 수면 패턴이 깨질 때를 대비해서 예비용으로 처방을 받은거죠.
최종적으로는 선생님과 상의 하에 완전히 약을 끊었고요.
참 오래 전의 일입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저는 잠을 썩 잘 자지는 못합니다.
어쩌면 잠을 못 자는 것에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사람일지도 몰라요.
솔직히 약을 복용했다고 해서 제가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보지는 못했어요.
저는 약을 복용하고 나면 한번도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하고
아침이면 늘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었거든요.
하지만 약을 복용하고도 잘 자지 못한 날도 있었고
머리가 맑지 않은 날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때 병원을 찾아간 것은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의 저는 혼자서는 버티기 어려울 만큼 지쳐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저의 고민을 전문가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듣는 것 만으로도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오면서 무조건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저처럼 밤이 두렵고 잠드는 것이 힘든 분이 계시다면
너무 오래 방치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