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존 A. 셰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어렵게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앞으로의 인생이 어느 정도 정해진 것 같았다. 안정적인 월급과 좋은 복지,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모습, 주변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회사를 다닌 지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한편에는 계속 지워지지 않는 꿈이 남아 있었다. 언젠가는 꼭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가서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내 시야를 넓혀보고 싶다는 꿈이었다. 문제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을 스스로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퇴사와 워킹홀리데이 생각뿐이었다. 점심시간에는 호주 생활 영상을 찾아보고, 퇴근 후에는 비자와 생활비를 검색하다가 순간, 채용 사이트를 보며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면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빠지곤 했다. 퇴사를 하면 안정적인 월급도 사라지고, 그동안 쌓아 온 경력도 끊길 수 있다는 생각이 계속 마음을 짓눌렀다. 특히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어렵게 대기업에 들어간 내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간다고 하면 얼마나 걱정하실지 뻔히 알았기 때문이다.
주변의 반응도 나를 더 망설이게 만들었다.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둬?, 그런 선택은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워킹홀리데이가 뭔데 거기에 목숨을 거냐? 다녀오면 다시 대기업 들어가기 쉽지 않을 텐데,, 등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처음에는 내가 정말 잘못된 선택을 하려는 건지 내 스스로 의심이 들었다. 사직서를 작성해 놓고도 제출하지 못한 채 몇달을 고민했고, 출퇴근을 하면서 회사를 안정적이게 다니는 미래와 호주로 떠나는 미래를 수없이 상상했다.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면 후회는 없을까,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다가 실패하면 그 후회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어느 쪽을 선택해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남친이 편지를 적어줬는데 명언 한 구절도 적어줬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남친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의도를 몰랐는데 계속 명언을 읽다보니, 이상할 정도로 마음 속 깊이 들어왔다. 대기업은 나에게 가장 안전한 항구였다. 계속 다니면 큰 위험 없이 안정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 두려워했던 것은 퇴사 자체가 아니라, 평생 한 번뿐일 수도 있는 도전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었을 때 그때 호주에 한 번 가볼걸이라는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모습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명언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놨다.
그전까지는 실패하지 않는 선택이 좋은 선택이라고 믿었다면, 그 이후에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더 가치 있는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전한 길만 걷는 것이 정답은 아니고, 때로는 두려움을 안고 한 걸음 내딛는 경험이 인생을 더 크게 성장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는 실패하면 어떡하지보다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고, 그 질문의 답은 점점 분명해졌다.
남친과 그 명언 덕분에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순간까지도 긴장되고 떨렸지만, 이상하게 후회는 없었다. 호주에서는 언어도, 문화도, 생활 방식도 모두 낯설었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도 많았고, 모든 일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은 회사 안에서만 일했다면 절대 얻을 수 없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때의 선택 덕분에 단순히 호주를 다녀온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꿈을 미루지 않는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되었고, 이 명언은 내 인생의 가장 큰 갈림길에서 망설이던 등을 조용히 밀어 주었던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