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가족인데 참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묻습니다. 물론 가족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계속 억누르고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반드시 건강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경계를 세우는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시댁과의 관계에서는 내 의사를 표현했다가 "예의가 없다", "며느리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중요한 가족 행사나 상견례와 같은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가족의 일원으로 충분히 존중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걱정 때문에 많은 분들이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뒤로한 채 계속 참는 선택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를 계속 희생하는 방식은 결국 더 큰 지침과 거리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경계(Boundary)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경계란 상대를 밀어내거나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스스로 정하고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건강한 경계는 관계를 포기하기 위한 선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면서도 관계를 오래 이어가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계는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요?
건강한 경계는 큰 결심으로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첫째,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아도 됩니다. 결혼 계획이나 자녀 계획, 경제적인 이야기처럼 불편한 질문에는 "아직은 계획이 없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말씀드릴게요."처럼 짧고 정중하게 대화를 마무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둘째, 모든 가족 행사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은 벗어나 보세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면 참석 시간을 조절하거나, 상황에 따라 한 번쯤은 쉬어가는 선택도 가능합니다. 건강한 관계는 억지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셋째, 배우자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댁과의 문제를 혼자 감당하기보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힘들고 무엇을 부담스럽게 느끼는지 차분히 공유해 보세요. 배우자는 내 편을 들어 시댁과 싸워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건강한 관계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동반자입니다.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경계란 상대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입니다. 상대가 당장 변하지 않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분명히 하는 것만으로도 관계에서 느끼는 부담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배우자는 가장 가까운 중재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댁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의외로 배우자입니다. 많은 분들이 배우자가 내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배우자의 역할은 무조건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자는 부모와 배우자 사이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정한 기준과 경계를 지켜주는 가장 가까운 동반자입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가 부모님께 그 이야기는 부담스러워하니 다음에는 하지 말아 주세요, 이번 명절은 하루만 함께하고 돌아가겠습니다.처럼 부부의 입장을 차분하게 전달해 준다면 배우자 혼자 말하는 것보다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모든 부담을 배우자에게 말하지 못한 채 혼자 참기만 한다면, 배우자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댁과의 관계에서 힘든 점이 있다면 비난하거나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많이 위축되고 힘들어."처럼 자신의 감정을 중심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시댁과의 건강한 경계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부부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기준을 세워갈 때, 가족과의 관계도 조금씩 더 건강한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혼자 버텨온 마음에도 분명 회복의 길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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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상담사님의 전문가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