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김미아 코치

KAC(KoreaAssociateCoach)

숨은 가능성을 깨우고, 변화와 성과로 연결합니다.

스튜디오미아는 '당신 안의 잠재력을 깨우다'를 미션으로, 클라이언트가 답을 발견하고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함께합니다. 서울대 졸업(경제·사회학), 법학·심리학·뷰티학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했습니다. 한국코치협회 자격 휘득 후 ICF 자격을 위해 SCPC(Senior Certified Professional Coach)까지 수료완료 하였습니다.

활동 분야

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관계·소통 가족·부부 연애·이별 직장·커리어 아동·청소년 트라우마·상실 자기이해·성장 일상관리·마음습관

활동 내역

활동 기간

116일

전체 답변 수

392개

채택된 답변 수

45개

답변 채택률

11%

이번 달

상위 100%

이번 주

상위 100%

코치 정보

본인 입력 정보

경력

  • 스튜디오미아 상담사 3년
  • Seouler Coach 코치 1년
  • 스튜디오미아 코치 1년

학력/자격

  • 한국코치협회 KAC(KoreaAssociateCoach) 인증 완료
  • Certified Professional Coach - CTA CPC
  • Senior Certified Professional Coach - CTA SCPC

공식 활동 소식

Google Meet 기반 (실시간) 60분 온라인 그룹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스킨케어와 자기돌봄을 매개로 참가자들이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균형과 웰에이징의 의미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강의가 아닌 질문과 성찰 중심의 접근을 통해, 타인을 돌보느라 미처 살피지 못했던 자신의 필요와 감정을 발견하고 일상 속 작은 자기돌봄 실천으로 연결해 나갑니다.

그룹코칭에서는 10패이지 전후 분량의 PPT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갑니다.

나를 돌보는 뷰티 슬로우에이징 그룹 코칭

Google Meet 기반 (실시간) 60분 온라인 그룹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스킨케어와 자기돌봄을 매개로 참가자들이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균형과 웰에이징의 의미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강의가 아닌 질문과 성찰 중심의 접근을 통해, 타인을 돌보느라 미처 살피지 못했던 자신의 필요와 감정을 발견하고 일상 속 작은 자기돌봄 실천으로 연결해 나갑니다. 그룹코칭에서는 10패이지 전후 분량의 PPT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갑니다.

작성한 전문가 칼럼 4

받은 감사 후기45
작성한 답변392
💬 코치에게 묻기

Q. 타인과 나를 자꾸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습관을 고치고 싶습니다

A. 안녕하세요. 김미아 코치입니다. 💌 먼저 제가 코치칼럼 게시판에 작성한 <“나만 빼고 다 부자?” — FOMO가 우리 마음을 흔드는 방식>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trost.co.kr/community/mentalhealth_column/132987862) 그리고 질문하신 것부터 답해볼게요.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비교한 뒤 나를 공격하지 않는 연습부터 해보셨으면 합니다. 이미 “남들은 화려한 모습만 보여주는 거야”, “사람마다 자기 속도가 있는 거야”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계시잖아요. 그런데도 마음은 흔들립니다. 그렇다면 비교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하나 더 배우는 것보다, 비교가 시작된 뒤 내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예전에는 나랑 비슷하거나 오히려 부족해 보였던 주변 사람이 크게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질투심과 좌절감이 튀어나온다”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에서 한번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잘됐다는 사실이 왜 내가 잘못 살았다는 증거가 되는 걸까요?” 그 사람이 좋은 집으로 이사한 것은 사실입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간 것도 사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쟤도 저만큼 갔는데 나는 뭐 했지?”, “나는 뒤처졌다”, “나는 실패했다”는 그 사실을 본 뒤 내가 나에게 내린 판정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나와 비슷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일수록 더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도 한번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혹시 마음속 어딘가에 “적어도 저 사람보다는 내가 앞에 있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순서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 순서가 뒤집혔다고 느껴지는 순간, 상대의 성공이 단순한 좋은 소식이 아니라 내 위치가 내려갔다는 소식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에는 실제 순위표가 없습니다. 누군가 한 칸 올라갔다고 해서 내가 한 칸 내려오는 구조도 아니고요. 그래서 질투가 올라오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치사하지?”라고 자신을 또 공격하면 비교 때문에 한 번 힘들고, 그런 마음을 가진 자신을 미워하면서 두 번 힘들어지니까요. 오히려 질투가 올라왔을 때 “나는 저 사람의 무엇이 부러운 걸까?”라고 물어보세요. 집이라면 안정감일 수도 있고, 여행이라면 여유일 수도 있고, 커리어라면 인정이나 성취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그것을 나도 정말 원하는가?”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정말 원한다면 비교를 자책의 재료가 아니라 내 욕구를 발견하는 자료로 사용해보세요.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에서 끝내지 않고 “아, 나는 요즘 내 삶에 성취감을 조금 더 느끼고 싶은가 보다”까지 가보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걸 내 방식으로 조금 더 만들기 위해 이번 달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라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니 딱히 원하지 않는다면 남의 목표를 굳이 내 인생에 가져올 필요도 없습니다. SNS를 보다가 비교가 시작될 때도 바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지 말고, 잠깐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 세 가지만 적어보세요. 저 사람에게서 내가 부러웠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나도 정말 원하는가. 원한다면 내 삶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만들고 싶은가. 비교를 완전히 멈추려는 것이 아니라, 비교의 방향을 남에게서 다시 나에게 돌려놓는 연습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남겨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도 내 삶을 볼 수 없고,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없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요?” 좋은 집도, 좋은 차도, 여행도, 커리어도 여전히 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조금 더 ‘나의 목표’에 가까울 겁니다. 그런데 답이 달라진다면, 그동안 좇았던 것 중 일부는 내가 원했던 삶이라기보다 남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았던 삶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비교가 올라와도 그 사람의 삶을 내 삶의 성적표로 사용하지 않고, “그래서 나는 무엇을 원하는데?”라고 다시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남의 삶은 내가 부족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때로는 내가 원하는 방향을 발견하는 참고자료 정도로만 사용해보세요.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쪽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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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는 성격 때문에 제 감정만 계속 쌓이네요

A. 안녕하세요. 김미아 코치입니다. 💌 사연 속에 이미 중요한 답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불편한 걸 바로 이야기했으면 작은 문제로 끝났을 텐데 계속 참다 보니까 나중에는 그 사람 자체가 싫어집니다.” 저는 오히려 이 부분에서 시작해보셨으면 합니다. 모든 불편함을 그때그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참을 수 있는 것과 참아도 괜찮은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한 번 늦은 친구를 웃으며 넘겼고 정말 아무렇지 않다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뒤 몇 시간 동안 생각이 나고, 다음 약속에서도 신경이 쓰이고, 그 사람에 대한 감정까지 달라지기 시작한다면 이미 ‘그냥 넘어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준을 이렇게 잡아보셨으면 합니다. “이 일을 말하지 않고 넘어가도 내 마음에 정말 남지 않을까?” YES라면 넘어가도 됩니다. NO라면 감정이 더 커지기 전에 작게 이야기해보세요. 중요한 것은 감정이 8이나 9가 되었을 때 처음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오늘 20분 늦어서 서운해”가 아니라 “넌 맨날 그래.” “예전에도 그랬잖아.” “나를 우습게 보는 거야?” 처럼 그동안 쌓인 일까지 한꺼번에 나오기 쉽습니다. 오히려 감정이 2나 3일 때 말하는 편이 관계에는 덜 공격적입니다. “오늘 조금 오래 기다렸어. 다음에는 늦을 것 같으면 미리 알려줘.”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탁을 받았을 때 바로 “네”라고 대답하는 것부터 멈춰보세요. “제 일정 확인해보고 말씀드릴게요.” 라고 시간을 벌어도 됩니다. 그리고 정말 어렵다면, “지금 제 업무 마감이 있어서 오늘은 맡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도와드릴 수 있는데 다음부터는 미리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걸 맡으면 제 업무 일정이 밀리는데, 어떤 일을 우선해야 할지 먼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처럼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고 내 상황과 가능한 범위만 말하면 됩니다. 거절은 상대방에게 “당신이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여기까지 가능합니다.” 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워하시는 부분이 있죠. 거절했을 때 상대방의 표정이 굳거나 실망하는 것. 여기서는 한 가지를 구분해보셨으면 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과 상대방이 실망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같은 일일까요? 정중하게 말하고, 약속한 것은 지키고,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 것까지는 내가 책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아쉬워하는 것, 잠깐 기분이 상하는 것까지 모두 없애주는 것은 내 몫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까지 목표로 삼으면, 사실상 경계를 세우기는 매우 어려워집니다. 누군가 부탁을 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도 내가 거절할 가능성을 감수할 몫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질문도 한번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상대방이 나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는 걸까요?”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꽤 다릅니다. 배려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감정까지 관리하려고 하면 결국 내 감정을 계속 뒤로 미루게 됩니다. 특히 사연에 나온 “이것까지 꼭 말해야 아나?” 라는 서운함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사람마다 ‘당연한 것’의 기준은 생각보다 많이 다릅니다. 상대방은 정말 내가 괜찮은 줄 알 수도 있습니다. 몇 번 부탁했는데 계속 흔쾌히 받아줬다면 “이 정도 부탁은 괜찮은가 보다”라고 배웠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표현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따지는 일만은 아닙니다. ‘나를 대할 때 알아두었으면 하는 사용설명서를 조금씩 알려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싫은 소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작은 불편함 하나부터 그 자리에서 한 문장으로 표현해보세요. 그리고 상대방이 잠깐 불편해하더라도 바로 말을 취소하거나 과도하게 설명하지 않는 연습을 해보세요. “미안해, 내가 괜히 말했나 봐.” “아니야, 그냥 해줄게.” 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상대방이 조금 실망한 채로 있어도 잠시 그대로 두는 것. 어쩌면 필요한 연습은 거절을 잘하는 기술보다 누군가의 작은 실망을 견디는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관계는 한 사람이 계속 참아서 유지되는 관계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불편한 것을 말해도 관계가 계속될 수 있고, 상대가 서운해도 다시 이야기할 수 있고, 서로의 ‘안 된다’를 알면서도 함께 지낼 수 있는 관계도 좋은 관계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음번에 또 “그냥 내가 참지 뭐”라는 생각이 들 때 한번 물어보셨으면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의 어색함을 피하는 대가로, 나는 나중에 어떤 감정을 떠안게 될까?” 지금까지는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불편함을 대신 가져가셨다면, 앞으로는 상대방과 조금씩 나누어 가져보셔도 됩니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쪽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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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쉬는 날인데 아무것도 안 하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건 왜일까요?

A. 안녕하세요. 김미아 코치입니다. 💌 질문하신 것부터 먼저 답해볼게요. 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휴식도 어느 정도 계획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10시 운동, 12시 독서, 3시 청소”처럼 쉬는 날마저 생산적으로 만들라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오늘은 무엇을 해야 잘 보낸 하루인가’가 아니라 ‘어느 정도 회복되면 잘 쉰 하루인가’를 미리 정해보셨으면 합니다. 사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평일에는 분명 쉬고 싶었는데, 막상 쉬는 날이 되면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오늘 하루 이렇게 보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몸은 쉬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오늘 하루를 채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운동했으면 잘 보낸 하루. 책을 읽었으면 의미 있는 하루. 청소했으면 알찬 하루.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봤으면 낭비한 하루. 이런 기준이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편안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한번 드리고 싶습니다. “쉬는 날까지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면, 나는 언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될까요?” 휴식도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야 허락되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휴대폰을 보면서 버티듯 누워 있는 것이 반드시 좋은 휴식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여기서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회복하는 것’을 조금 구분해보셨으면 합니다. 몇 시간 동안 휴대폰을 보고 난 뒤 더 피곤하고 찝찝하다면, 그건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내가 원했던 휴식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쉬는 날 아침에는 할 일 목록 대신 이렇게 한번 물어보세요. “오늘 저녁의 내가 어떤 상태였으면 좋겠지?” 조금 덜 피곤했으면 좋겠다. 머리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재미있는 것을 하나 했으면 좋겠다. 아무에게도 쫓기지 않고 느긋했으면 좋겠다. 그날의 휴식은 그 방향으로 선택하면 됩니다. 잠이 부족했다면 늦잠을 자고, 몸이 답답하다면 산책을 하고, 사람에게 지쳤다면 혼자 있고, 무료하다면 재미있는 것을 하고,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휴식에도 매번 같은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주말에 운동하고 여행하고 자기계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해진다고 하셨는데요. 그럴 때는 이런 질문도 한번 해보세요. “저 사람의 주말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을 낭비했다고 생각했을까?” SNS에서 보이는 다른 사람의 주말이 내 휴일의 채점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짜 잘 쉬는 사람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냐고 물으셨는데,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쉬다가 불안한 생각이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뭐라도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 명령을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청소라도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 “청소가 정말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쉬고 있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뭔가 하나 해내고 싶은 걸까?” 한번 물어보세요. 후자라면 오늘은 하지 않는 것도 연습입니다. 처음에는 휴식에도 작은 기준을 만들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반드시 해야 할 일 1개. 하면 좋은 일 1개. 그리고 나머지는 자유. 그리고 저녁에는 “오늘 뭘 했지?” 대신 “아침보다 지금 조금이라도 회복됐나?” 라고 물어보세요. 쉬는 날의 성적표까지 평일과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일하는 날의 기준이 ‘무엇을 해냈는가’라면, 쉬는 날의 기준은 ‘얼마나 다시 나로 돌아왔는가’여도 괜찮습니다. 어쩌면 제대로 쉬는 연습의 시작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도 휴식을 중단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쪽지 주세요.

연애 / 관계

Q.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하면 외롭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A. 안녕하세요. 김미아 코치입니다. 💌 “하루 종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다 보면 잠깐이라도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어쩌면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잠시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그냥 나로 있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장에서는 직장인으로, 집에서는 배우자로, 부모로 살아가다 보면 혼자 있는 시간만큼은 누구에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결정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래서 배우자의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반드시 “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다”로 번역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의 시간을 보낸 뒤 서로에게 더 부드러워진다면, 그 혼자 있는 시간이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잘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여백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라고 물어보셨는데요. 저도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코치라는 직업 자체가 사람을 가까이 만나고, 한 사람의 이야기에 깊이 집중하는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성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와 잘 연결되기 위해 때로는 나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는 시간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좋은 부부의 기준도 꼭 ‘얼마나 많은 것을 함께하는가’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함께 있을 때 편안한 것만큼, 떨어져 있을 때도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 그것도 꽤 단단한 친밀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겨주신 질문을 조금 바꾸어 다시 드려보고 싶습니다. “우리 부부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시간일까요, 아니면 각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만나는 시간일까요?” 이미 두 분은 그 답을 조금씩 찾아가고 계신 것 같습니다. 😊

자존감

Q. 자존감이 자꾸 낮아지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마음이 너무 힘들고 흔들려요

A. 안녕하세요. 김미아 코치입니다. 💌 혹, 자존감을 ‘올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너무 열심히 노력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장점을 적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긍정적인 말을 반복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보상도 해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누군가의 작은 반응이나 비판을 마주치면 다시 무너진다고 하셨고요.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좋은 말을 더 많이 해주는 것보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곧바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로 연결하지 않는 연습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수를 했을 때 “내가 이 부분을 실수했다.”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역시 나는 부족하다.” “나한테 문제가 있다.” 라는 문장이 붙습니다. 이 두 번째 문장은 사실이라기보다 내가 나에게 내린 해석입니다. 누군가의 표정이 좋지 않았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이 내 말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관찰이라면, “내가 이상한 말을 했나 봐.” “나를 싫어하나 봐.” “역시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해.” 그다음부터는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책이 시작될 때 흐름을 억지로 끊으려고 하기보다 딱 두 문장으로 나눠보세요. “실제로 일어난 일은 무엇이지?” 그리고 “나는 그 일을 가지고 지금 나에 대해 무슨 결론을 내리고 있지?”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비교가 시작될 때도 “비교하지 말아야지”라고 자신을 또 통제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비교가 올라오면 오히려 한번 물어보세요. “저 사람에게 있는 무엇이 지금 나를 흔들고 있지?” 외모인지, 능력인지, 인정인지, 관계인지, 경제적인 안정인지요. 비교는 때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정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보고 ‘그러므로 나는 부족하다’는 결론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신 ‘건강한 자존감의 첫걸음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것보다 먼저, 자신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연습부터 해보세요. 오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있어도 나라는 사람 전체를 싫어하지 않는 것. 실수했어도 나를 모욕하지 않는 것. 누군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 모르는 것이 있어도 “나는 왜 이것도 모르지?” 대신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 자존감은 매일 거울을 보며 “나는 최고야”라고 말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에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경험이 쌓이면서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요. 처음부터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그것보다 눈치가 보여도 내 의견을 아주 조금 말해보는 연습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저는 이쪽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오늘은 어려울 것 같아요.” 이 정도의 작은 표현부터 시작해보세요. 그리고 상대방의 반응을 확인해보세요. 내 의견을 말했다고 정말 관계가 나빠졌는지, 상대방이 정말 나를 싫어했는지, 아니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별일이 없었는지요. 자신감이 생긴 다음에 나답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행동해도 괜찮았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려고 계속 나를 고치고 있을까요?” 둘은 꽤 다른 방향입니다. 완벽해진 다음에 자신을 인정해주려고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부족한 점도 있고, 실수도 하고, 때로는 남의 말에 흔들리는 오늘의 나에게도 최소한 내 편이 되어주는 것. 어쩌면 건강한 자존감은 거기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 가는 사람이라면, 자존감도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자라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쪽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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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친구들 단톡방에서 자식 자랑이 계속되니 들어가기가 싫어져요

A. 안녕하세요. 김미아 코치입니다. 💌 먼저 제가 코치칼럼 게시판에 작성한 <“나만 빼고 다 부자?” — FOMO가 우리 마음을 흔드는 방식>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trost.co.kr/community/mentalhealth_column/132987862) 제목은 ‘부자’ 이야기지만, 꼭 돈에 관한 내용만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소식을 접한 순간 내 삶까지 갑자기 부족하게 느껴지는 비교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 느끼시는 불편함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신 것부터 먼저 답해볼게요. 저라면 친구들과 거리를 두기보다, 불편한 대화에서만 조금 거리를 두겠습니다. 사연을 보면 친구들이 싫어진 것은 아니니까요. 일상 이야기에는 여전히 한마디 보태고 싶고, 오래된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단톡방을 계속 적극적으로 본다 vs 친구들과 멀어진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식 이야기가 한참 이어지는 동안에는 읽지 않아도 됩니다. 나중에 들어가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됐을 때 다시 참여해도 되고요. 누군가의 자녀에게 좋은 일이 있었다면 정말 축하하고 싶은 경우에만 “좋은 소식이네. 축하해.” 정도만 남겨도 충분합니다. 다른 친구들이 “부럽다”, “자식 잘 키웠다”고 계속 이야기한다고 해서 나까지 같은 온도로 대화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모든 대화에 참여하는 것은 다른 일이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는 꼭 구분해보셨으면 합니다. 자식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불편한 이유가 정말 친구들이 자랑해서일까요? 아니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자녀와 친구들의 자녀를 비교하는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일까요? 이 차이는 꽤 중요합니다. 후자라면 단톡방을 나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자리에서 들을 때마다 마음이 다시 불편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럴 때 저는 이런 질문을 한번 드리고 싶습니다. “친구 자녀가 잘됐다는 사실이 우리 아이의 삶에 실제로 무엇을 빼앗아갔을까요?” 아무것도 빼앗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친구 자녀의 좋은 소식이 어느새 내 자녀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표가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누구는 좋은 회사에 갔고, 누구는 결혼을 잘했고, 누구는 부모에게 좋은 선물을 해줬고. 그 기준표를 보고 있으면 우리 아이가 자기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어도 갑자기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들의 자랑을 들을 때 마음속에서 한번 선을 그어보셨으면 합니다. “저 집의 기쁜 일은 저 집의 이야기이고, 우리 아이의 인생은 우리 아이의 이야기다.” 그리고 조금 더 중요한 질문도 있습니다. “나는 친구들의 자녀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들을 통해 내가 부모로서 잘 살아왔는지를 평가하고 있는 걸까?” 만약 후자라면 자녀의 직장, 결혼, 경제력, 부모에게 해주는 선물이 어느 순간 부모의 성적표처럼 느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의 삶은 부모의 성적표가 아닙니다. 잘 풀리는 시기도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릅니다. 무엇보다 사연에서 이미 답을 하나 알고 계신 것 같아요.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잘 살아가면 그걸로 된 건데.” 저는 이 문장을 다른 친구들의 자녀에게만 적용하지 말고 내 자녀에게도 똑같이 적용해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단톡방은 조금 편하게 이용하세요. 알림을 꺼도 되고, 나중에 몰아서 읽어도 되고, 자식 이야기가 길어지면 잠깐 닫아도 됩니다. 그건 친구들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속이 좁은 것도 아닙니다. 내가 어떤 대화에는 참여하고 어떤 대화에는 참여하지 않을지 선택하는 것뿐입니다. 오히려 자식 이야기가 끝났을 때 먼저 다른 이야기를 꺼내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너희 요즘 뭐가 제일 재밌어?” “우리도 이제 애들 얘기 말고 우리 얘기 좀 하자. 요즘 뭐 하고 지내?” 어쩌면 다른 친구들 중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다음번에 자식 자랑이 이어지면서 마음이 불편해질 때는 자신에게 짜증부터 내지 말고 한번 물어보세요. “지금 내가 불편한 것은 친구의 자랑 때문일까, 아니면 그 이야기를 들은 뒤 시작된 내 머릿속의 비교 때문일까?” 전자라면 잠시 대화에서 나오면 됩니다. 후자라면 비교의 기준표에서 내 자녀를 내려놓아주세요. 친구의 자녀가 잘 살아가는 것과 내 자녀가 잘 살아가는 것은 서로 경쟁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쪽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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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 자신을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싶어요

A. 안녕하세요. 김미아 코치입니다. 💌 주변에서는 “조금 내려놓아라”, “너무 몰아붙이지 마라”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굳이 대충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계획하고, 미리 준비하고, 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싶어 하는 것은 지금까지 삶을 잘 이끌어온 중요한 힘이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이제는 한 가지를 추가해보셨으면 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까지 계획에 넣는 겁니다. 계획을 세울 때 우리는 보통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 정합니다. 그런데 실제 삶에는 내가 미리 알 수 없었던 정보도 있고, 다른 사람의 변수도 있고,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일도 있고, 단순히 내가 실수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왜 이것까지 예상하지 못했지?” 라고 자신을 탓한다면, 사실상 스스로에게 미래를 미리 알아야 한다는 기준을 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계획을 세우면서 이것도 함께 정해보세요. “이 계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까지 하면 오늘은 충분히 잘한 것으로 볼 것인가?” “계획이 틀어졌을 때의 Plan B는 무엇인가?”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즉석에서 자신을 심판하지 말고, 미리 정해놓은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일이 틀어졌을 때는 ‘책임’과 ‘자책’을 구분해보셨으면 합니다. “내가 이 부분을 확인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체크리스트에 넣자.” 여기까지는 책임입니다. 하지만 “왜 이것도 제대로 못했지?” “나는 왜 항상 이럴까?” “진작 알아봤어야 했는데.” 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끝난 사건으로 자신을 벌주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지금 이 생각에서 새롭게 얻고 있는 정보가 있나?” 있다면 적어두고 다음번에 반영하세요. 없다면 이미 복기는 끝난 겁니다. 그 이후에 같은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반복 재생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씀도 한번 살펴보고 싶습니다. 혹시 쉬는 시간에도 “이 시간에 뭔가 했어야 하는데.” “오늘 하루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렇다면 이런 질문도 한번 드려보고 싶습니다. “내 삶에서 의미 있는 시간으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무언가를 해내야 하나요?” 휴식도 다음 일을 잘하기 위한 도구여야만 허락되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즐거웠던 시간도 ‘잘 보낸 시간’에 포함되는지요. 처음부터 하루를 대충 보내려고 하지 마세요. 오히려 계획표에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넣어보셔도 좋습니다. 계획적인 분이라면 내려놓는 것조차 계획적으로 연습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 날에는 하루를 평가할 때 결과만 묻지 말고 세 가지로 나눠보세요. 내가 통제할 수 있었던 것. 내가 통제할 수 없었던 것. 다음번에 바꿀 것 하나. 세 번째까지 답했다면 그 일에 대한 오늘의 복기는 끝입니다. 다시 생각이 올라오면 새로운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이렇게 한번 말해보세요. “이건 이미 검토한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자신을 몰아붙여 살아왔다면 하루아침에 “괜찮아, 대충 살자”라고 생각한다고 편해지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성격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자신을 대하는 규칙을 조금 바꿔보셨으면 합니다. 완벽하게 준비하는 사람에서 대충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잘 준비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겨도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사람. 그 정도의 변화부터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남겨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몰아붙이는 힘 덕분에 얻은 것도 많았을 텐데, 이제 그 힘 때문에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답을 한번 찾아보세요. 없애야 할 것은 계획적인 성격이 아니라, 어쩌면 계획에서 벗어난 나에게 벌을 주는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쪽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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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별일 없는데 자꾸 마음이 급하고 초조해집니다

A. 안녕하세요. 김미아 코치입니다. 💌 먼저 제가 코치칼럼 게시판에 작성한 <“나만 빼고 다 부자?” — FOMO가 우리 마음을 흔드는 방식>도 함께 읽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https://trost.co.kr/community/mentalhealth_column/132987862) FOMO는 꼭 무언가를 ‘놓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집, 커리어, 새로운 도전을 보면서 갑자기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나도 뭔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마음이 드는 것도 FOMO와 맞닿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하신 것부터 먼저 답해볼게요. 지금 당장 새로운 목표를 만들 필요도 없고, 억지로 현재에 만족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전에 이 조급함이 무언가를 정말 하고 싶어서 생긴 마음인지, 남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생긴 마음인지부터 구분해보셨으면 합니다. 둘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필요한 행동은 꽤 다릅니다. 누군가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급해졌다면, “나는 정말 집을 갖고 싶은 걸까, 아니면 저 사람은 앞으로 가고 있는데 나는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누군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부럽다면, “나도 그 일을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나에게도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는 걸까?” 직장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사람이 신경 쓰인다면, “나는 정말 더 높은 자리를 원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증거가 필요한 걸까?” 이렇게 하나씩 물어보세요. 의외로 답이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사연에는 재미있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그런데 ‘제대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집이 있어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직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야 하는 것인지,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 것인지, 가족과 평범하게 잘 지내는 것도 제대로 사는 것인지요. 기준이 없는 시험을 보고 있으니 계속 합격 여부를 확인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조급해질 때마다 새로운 목표부터 하나 더 만들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남의 집 이야기를 듣고 재테크를 시작하고, 누군가 이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격증을 알아보고, 누군가 새로운 도전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무언가 시작한다면,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계속 뒤처지는 기분이 들 수 있습니다. 목표는 많아지는데 정작 ‘내가 원하는 방향’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비교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비교를 조금 다르게 사용해보세요. 누군가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면 바로 행동하지 말고 이렇게 적어보는 겁니다. “저 사람의 무엇이 부러웠지?” 그리고 한 번 더 묻습니다. “그것을 나도 정말 원하는가?” 정말 원한다면 조급함 속에서 욕구 하나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때는 작은 목표를 만들어보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딱히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남의 목표를 내 인생에 가져올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야 할까, 지금에 만족해야 할까?’라는 질문도 이렇게 한번 바꿔보셨으면 합니다. “지금 내 삶에는 성장이 부족한 걸까, 만족이 부족한 걸까?”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남는다면 작은 변화를 만들어보세요. 반대로 이미 원하는 삶을 어느 정도 살고 있는데 남을 볼 때만 갑자기 내 삶이 부족해진다면, 무언가를 더 채우는 것보다 이미 있는 것을 충분히 살아보는 연습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삶에 감사하면서 새로운 것을 원해도 됩니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한다고 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한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을 원한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삶이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다음번에 누군가의 좋은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해진다면 바로 “나도 뭘 해야겠다”고 결론 내리지 마세요. 잠깐 멈추고 딱 이것만 물어보세요. “저 사람의 삶을 보고 나니, 나는 내 삶에 무엇을 조금 더 넣고 싶어진 걸까?” 답이 있다면 그쪽으로 조금 움직여보세요. 답이 없다면 오늘은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남의 다음 장면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서둘러 결정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쪽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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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람들에게 제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게 어렵습니다

A. 안녕하세요. 김미아 코치입니다. 💌 “괜찮지 않은 날에도 괜찮은 척하면서, 속으로는 누가 먼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마음이라기보다, 어쩌면 ‘내가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누군가 어렵게 문을 두드려 “요즘 무슨 걱정 있어?” 라고 물었는데, “별일 없어.” 라고 대답하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정보는 정말로 ‘별일 없다’입니다. 마음속으로는 한 번만 더 물어봐주었으면 좋겠지만, 상대방은 오히려 더 묻지 않는 것이 나를 존중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모든 속마음을 털어놓는 연습보다 먼저 ‘괜찮다’라는 자동응답부터 조금 바꿔보셨으면 합니다. 다음에 누군가 “요즘 어때?”라고 물으면 굳이 모든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 있긴 해.” “요즘 생각이 좀 많아.” “사실 완전히 괜찮지는 않은데 아직 정리가 잘 안 됐어.” 여기까지만 말해도 충분합니다. 속마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만큼만 문을 열어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상대방의 반응을 한번 보세요. 내 말을 끊지 않는지, 쉽게 판단하거나 해결하려 들지 않는지, 내 이야기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지,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 사람인지요. 먼저 완전히 믿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이야기해보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말한다/말하지 않는다’의 두 가지 선택밖에 없던 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신 ‘혼자 해결하는 것이 편한 성격’과 ‘감정을 지나치게 감추는 습관’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대해서는 저는 이렇게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혼자 해결한 뒤 정말 괜찮아진다면 그것은 나에게 잘 맞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해결하고 있으면서도 누군가 알아줬으면 좋겠고, 말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혼자라는 느낌이 들고, 가까운 사람과도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지 못하는 것이 서운하다면, 그때는 ‘혼자가 편하다’기보다 ‘혼자인 방식에 익숙하다’는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혼자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요, 아니면 누군가에게 기대었다가 실망하는 것보다 혼자 해결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걸까요?” 둘은 꽤 다른 이야기입니다. 또 힘든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반드시 해결의 책임까지 넘기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해결해달라는 건 아니고 그냥 내 얘기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 “아직 나도 정리가 안 돼서 조언보다는 그냥 들어주면 좋겠어.”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것도 관계에서 필요한 의사표현입니다. 그리고 어렵게 이야기했는데 상대가 기대만큼 잘 받아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역시 내 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구나’라는 결론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받아줄 능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나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한 관계가 아니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열 필요는 없습니다.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누군가 “요즘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순간이 다시 온다면, 바로 “괜찮아”라고 문을 닫기 전에 딱 3초만 멈춰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정말 말하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면 말하고 싶은데 무서운 걸까?”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후자라면 그날은 100%가 아니라 10%만 이야기해보세요. “사실 요즘 조금 힘든 일이 있어.” 어쩌면 관계가 깊어진다는 것은 내 마음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이런 한 문장을 건네보고 상대가 어떻게 받아주는지를 조금씩 확인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쪽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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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하고 싶은 일과 안정적인 현실 사이에서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A. 안녕하세요. 김미아 코치입니다. 💌 먼저 제가 코치칼럼 게시판에 작성한 <“퇴사는 하고 싶은데,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어요” — 커리어 방향을 찾는 첫걸음>을 한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https://trost.co.kr/community/mentalhealth_column/132495705) 다만 사연을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는데 그것을 선택했을 때 잃게 될 것이 두려운 상태에 조금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질문하신 것부터 바로 답해볼게요. 네. 안정적인 현실을 지키면서 원하는 일에 도전해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지금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도전할지, 안정적인 직장을 지키고 포기할지 결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대신 이렇게 해보셨으면 해요. 퇴사하기 전에 그 직업을 한번 미리 살아보세요. 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그 분야의 공부를 시작해보고, 가능하다면 작은 프로젝트나 부업, 주말 활동, 자격과정, 관련 사람들과의 만남 등 실제 업무와 가장 가까운 경험을 만들어보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관심 분야를 공부해본다’에서 끝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일을 실제 직업으로 삼았을 때 하게 될 일을 최대한 작게라도 직접 해보세요. 예를 들어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면 퇴사 후 작가가 되는 상상만 하지 말고 지금 실제로 글을 쓰고 공개해보는 겁니다. 강의를 하고 싶다면 강사 자격부터 고민하기보다 작은 강의를 한번 만들어 진행해볼 수 있고요. 새로운 전문직을 생각한다면 필요한 공부뿐 아니라 실제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 업무와 수입구조, 진입과정을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머릿속의 ‘하고 싶은 일’과 실제로 해봤을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재의 안정적인 직장은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실험비용을 대주는 안전망이 될 수 있습니다. 월급을 받으면서 시험해보고, 생각보다 맞지 않으면 돌아오고, 잘 맞는다면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고, 가능성이 보이면 그때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이직·전환을 검토하는 식으로요. 안정을 버려야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안정이 있기 때문에 더 안전하게 도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두려운 것은 정말 ‘실패’일까요, 아니면 한 번 선택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일까요? 사연에는 “실패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것마저 다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까 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전을 0 아니면 100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퇴사해서 모든 것을 걸어야만 도전인 것은 아닙니다. 5만큼 해보고, 괜찮으면 10으로 늘리고, 더 확신이 생기면 30까지 가보고, 그 과정에서 계속 현실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용기를 내야 할까?’보다 먼저 도전의 크기를 줄여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3개월 정도 기간을 정해 실제로 시험해보세요. 그 기간 동안 세 가지를 관찰해보는 겁니다. “나는 이 일을 실제로 할 때도 재미를 느끼는가?” “잘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계속 투자하고 싶은가?” “이 일이 언젠가 내 생활을 지탱할 정도의 현실적인 가능성이 있는가?” 세 질문에 대한 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 다음 단계를 결정하면 됩니다. 반대로 직접 해봤더니 생각과 다르다면 그것도 실패가 아닙니다. 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작은 비용으로 중요한 정보를 얻은 것이니까요. 주변에서 “무난하게 다니는 게 최고다”라고 하는 것도 그분들의 기준에서는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원하는 삶과 내가 원하는 삶이 같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뛰어들라’는 말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도 존중하고, 현실적인 두려움도 존중하세요. 둘 중 하나를 없애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정은 지키고, 가능성은 시험해보는 기간을 가져보세요.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지금 직장을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면, 이번 달에 내가 원하는 삶을 10%만 먼저 살아보기 위해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요?” 그것부터 해보세요. 커리어의 방향은 책상 앞에서 오래 고민한다고 반드시 선명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경험을 먼저 만들어봐야 그다음 방향이 보입니다. 지금 당장 인생을 걸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한번 살아보고, 그다음 결정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쪽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