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잠에 예민한 사람이었어요.
낮에는 순둥이가 따로 없었지만 밤만 되면 잠을 안자서 엄마를 엄청 괴롭혔다고 해요.
조금 더 컸을 때도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잠을 설치곤 했어요.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저는 초1일 때도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이 되면 학교 갈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늘 잠을 못잤어요.
밤새도록 집안을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엄마한테 엄청 혼났던 기억이 생생해요.
저에게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상황이라 그때의 저는 불면증을 딱히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성인이 된 뒤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 정도로 제 인생을 크게 뒤흔들었던 사건을 겪은 적이 있어요.
그 일을 겪은 뒤로 저의 수면 패턴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피곤해서 머리가 아프고 눈이 뽑힐 것 같은데도 잠은 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정신이 맑은 것도 아니에요.
머리는 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매일 기운이 없어서 토할 지경이었죠.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잠이 잘 온다는 민간요법은 다 해봤어요.
3초 이내로 잠든다는 호흡법, 명상하기, 운동하기, 햇빛 쪼이기 등등..
상추는 한 트럭은 먹었을거예요.
모두 다 아무 소용도 없었지만요.
한 두 어달을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로 지내다 보니 사람이 정신이 나가더라구요.
그 즈음에 정신과를 처음으로 찾게 되었어요.
사실 불면증에 대해서 공부를 하거나 어떤 정신과가 좋은지 검색을 해본 적은 없어요.
그럴 정신도 없었거든요.
정신과를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찾아간 것도 아니에요.
그냥 길을 걷다가 근처 정신과에 홀린 듯이 들어간거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저의 무의식이
정신과로 발걸음을 돌리게 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홀린 듯이 방문했어요.
오래 전의 일이라 순서가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데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상담 선생님과 내원 이유와 현재 상태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잠을 못자서 왔다."라고 하니 별다른 검사는 하지 않았고
언제부터 잠을 못잤는지,
하루에 얼마나 잠을 자는지,
입면과 수면 유지 중 어떤 것이 더 어려운지,
최근에 스트레스 상황은 없었는지에 대해서 간략한 초진 면담을 한 것으로 기억해요.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주치의 선생님이 면담 기록지를 보시고는 더 자세하게 질문을 하셨죠.
제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이번에 마음 먹고 과거에 제가 받은 처방들을 샅샅이 살펴보았거든요.
처음 처방 받은지 오랜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최종적으로 정착한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했기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 처방전을 살펴보니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초반에는 약의 변화가 꽤 있었더라구요.
처음으로 제가 처방 받은 약은 스틸녹스 10mg/tab 였어요.
선생님이 5일치만 처방해 줄테니 복용해보고 재내원하라고 하셨어요.
첫 복용 때는 약을 복용하자마자 거의 바로 잠들었던 것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며칠 복용하고 나니 아침에 일어나도 물 먹은 솜처럼 몸이 너무 무겁고
한낮이 될 때까지 잠이 깨지를 않더라구요.
생각한 것과는 다른 말들이 횡설수설 튀어나오기도 하고요.
두통이 심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고,
몇 번 복용하고 나니 잠은 금방 들었지만 수면 유지가 되지 않아서 새벽에 여러 번 깨곤 했어요.
병원을 찾아 상담을 하니 스틸녹스는 서방정으로 12.5mg/tab를 처방해주시고
너무 잠이 오지 않을 때만 복용하라고 하셨어요.
대신에 데파스 1mg/tab를 추가 처방해주셨죠.
제가 약을 복용하고도 새벽에 계속 깨는 것이 불안과 긴장 때문이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에도 두통이 지속되고 새벽 각성은 계속 되었죠.
그 다음에 병원을 찾았을 때는
스틸녹스 서방정을 6.25mg으로 낮추고
데파스 1mg/tab에 트라조돈 25mg/cap를 추가해주셨어요.
그 이후로는 스틸녹스는 완전히 중단하고 데파스와 트라조돈만을 복용하며 컨디션을 보았고
다시 스틸녹스와 트라조돈의 조합으로 갔다가
데파스 대신에 알프람으로 넘어갔다가
최종적으로는 트라조돈 25mg/cap + 데파스 1mg/tab의 조합으로 정착했어요.
한동안 잊고 살았다가 이번에 처방전을 살펴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건데
저는 수면의 시작, 유지 모두에서 문제가 있고 졸피뎀 계열의 약에 대한 부작용도 꽤 심한 편이라
선생님이 졸피뎀 계열과 비 졸피뎀 계열의 약을 여러 번 조정하면서 저에게 가장 적합한 조합을 찾아나가셨던 것 같아요.
최종적으로 정착한 트라조돈과 데파스의 조합은 아주 드라마틱하게 불면증이 호전되지는 않았지만
6시간을 내리 잠드는 날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특별히 부작용도 발생하지 않아서 만족스러운 편이었어요.
여전히 약을 먹고도 중간에 깨는 날도 있었지만
약을 복용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더 이상 잠자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예전에는 잠이 오지 않으면 점점 더 초조해져서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릴 지경이었거든요.
그런데 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뭔가 든든한 방어막을 얻은 기분이었어요.
오늘 못 자면 내일 약 먹고 자면 되지 뭐! 이렇게 편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마음이 편해지니까 약을 먹지 않고도 잠드는 날도 점점 늘어났고요.
드디어 수면 패턴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거죠.
이번에 처방전을 살펴보니까 제가 정신과를 8년을 다녔더라구요.
초반에는 방문 횟수가 잦았지만 약이 안정되면서 방문 텀도 점점 늘어났어요.
수면 패턴이 안정화 된 뒤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며 "나중에 또 불편해지면 아무 때나 오세요."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는데
마지막에 방문한 것이 벌써 4년 전이네요.
마지막으로 약을 복용한 것은 그보다 더 전인데
약이 없으면 불안할까봐 1년 정도는 상비약처럼 가지고만 있었어요.
치료를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수면 자체보다는
수면을 대하는 저의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잠을 생각하면 스트레스부터 받았거든요.
하지만 치료를 시작한 뒤부터는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오늘 못 자면 내일 자면 된다는 생각까지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혹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계신가요?
잠을 못 자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거예요.
몸은 지쳐 있는데 잠은 오지 않고 밤이 길어질수록 불안은 점점 더 커지죠.
결국 휴식이 되어야 할 '잠'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버리죠.
불면증의 고통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만일 저와 같은 문제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자신의 고통을 과소평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약을 드시는 것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상담이라도 꼭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자연스럽게 잠도 잘 자게 되더라구요.
여러분의 밤도 언젠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편안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