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이 드라마 좋았어요
세상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이별이 있지요.
연인과의 이별도 있고, 친구와의 이별도 있고요.
그 중에서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이별은 바로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바로 가족과의 이별을 다룬 작품입니다.
1996년 처음 드라마로 방송되었고,
2011년 영화로,
2017년에 다시 드라마로 리메이크가 된 노희경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이지요.
2010년부터는 연극 무대에서도 공연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무뚝뚝한 남편,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두 남매와 살고 있는 엄마 인희는 언제나 가족을 챙기느라 바쁩니다.
의사인 남편은 무슨 말을 걸어도 대답도 잘 하지 않고
중증 치매인 시어머니는 갑자기 밥상을 뒤엎고 홍시를 집 여기저기에 던지기도 하고
갑자기 며느리의 머리카락을 쥐고 흔들기도 하죠.
똑 부러지지만 차가운 큰 딸 연수는 독립을 선언하고 집을 나가 버리고
삼수생인 막내 아들은 여전히 철이 없습니다.
게다가 남동생 근덕이 도박에 빠져 친 사고를 수습하는 것도 언제나 인희의 몫입니다.
매일 눈 코 뜰 새 없는 인희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가평에 짓고 있는 전원주택에서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로 인희의 꿈이죠.
집 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고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인희의 꿈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희의 배가 조금씩 불편합니다.
의사인 남편은 자신이 큰 병원에서 일하는데도 동네 병원에서 약을 타다 먹으라는 무심한 대답만 하죠.
불편함이 계속되자 인희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남편 후배 윤박사에게 진료를 받고
윤박사는 인희가 말기암이라는 인희의 남편 정철에게 전합니다.
의사들은 모두 인희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병을 알게 된 정철의 고집으로 인희는 결국 수술을 받고 항암을 하지만
이미 인희의 병은 손을 쓸 수 상태가 아니었죠.
결국 인희와 가족들을 이별을 준비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받은 건 태산인데
하나도 돌려드리지 못하는
내가 너무 미워서 눈물이 나더라고.
너는 그러지마, 네가 받은 것의
만 분의 일이라도 돌려드려.
할 수 있는거 다 해.
네가 어른이라는 걸 알려드려.
네 걱정 때문에
가는 발걸음 무겁게 하지마"
엄마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딸 연수는
이모처럼 따르던 윤박사를 찾아갑니다.
슬픔에 빠진 연수를 위로하며 윤박사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난 부모님이 차 사고로 한 순간에 돌아가셨어.
장례 치를 땐 모르겠더니 집에 오니까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그게 꼬박 1년을 넘게 갔어.
그게 아무데서나 눈물이 나는거야.
받은 건 태산인데 하나도 돌려드리지 못하는 내가 너무 미워서 눈물이 나더라고.
너는 그러지마, 네가 받은 만큼, 받은 것의 만 분의 일이라도 돌려드려.
할 수 있는거 다 해.
네가 어른이라는 걸 알려드려.
네 걱정 때문에 가는 발걸음 무겁게 하지마."
인희와 가족들은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을 살아가야 하지요.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할머니를 챙기고, 병원에 다녀오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지만
그 평범한 시간 사이에 '이별'이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은 더 슬프고 잔인합니다.
우리는 나중에 하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2011년 영화에서는 아들 정수에게 인희가 컴퓨터를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데
정수는 계속 나중에, 나중에라는 말만 합니다.
인희가 "엄마 죽은 다음에 가르쳐 줄거야?" 라고 하자
정수는 웃으며 "에이, 엄마는 안죽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은 바쁘니까, 아직은 괜찮은 것 같으니까, 조금 더 있다가 해도 될 것 같으니까.
하지만 이별 앞에 서면 그 말들은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심코 흘려보냈던 그 시간들을 후회하면서요.
그러니 지금 하세요.
미뤄두었던 말들,
괜히 쑥스러워서 하지 않았던 행동들
'나중에' 라는 말로 덮어두었던 마음이 나중에 후회로 돌아오지 않도록요.
"사람은 한번은 다 죽는데
우리 엄마가 죽게 될 줄은
나 정말 몰랐었나봐.
자식들은 다 이기적이라는데
나도 그런가?
지금 이 순간도
엄마가 얼마나 아플가보다
엄마가 없으면
나는 어쩌나, 그 생각 밖에 안나.
엄마가 없는데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까, 그 생각 밖에 안 들어."
윤박사 앞에서 연수는 눈물을 쏟으며 이런 말을 합니다.
아픈 엄마에 대한 걱정보다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할 자신이 더 먼저 떠오른다고요.
이 장면을 보면서 저도 펑펑 울었습니다.
엄마를 걱정하면서도
엄마 없는 내 모습을 더 먼저 떠올리는 것이 너무 솔직해서,
그래서 더 아프게 들려서요.
만일 저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아마 저도 연수와 같은 마음일 것 같아요.
어쩌면 사람들은 이별 앞에서 다 비슷해지지 않을까요?
연수는 어쩌면 엄마가 없는 시간을 먼저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걸 보면 이별이란게 꼭 누군가가 떠난 뒤에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 곁에 있지만 현재를 보지 못하고
아직 오지 않은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며 두려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
이것이 이별의 가장 힘든 지점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별은 준비한다고 덜 아프고 덜 슬픈 것은 아닐거에요.
하지만 이별이 오기 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기억이
이별 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지를 결정하겠죠.
그러니 피하지도 말고, 도망가지도 말아야겠습니다.
이별은 피할 수 없을지라도 남은 사람들은 소중한 기억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요.
"정수야.. 너 다 잊어버려도.
엄마 웃음도,
엄마 얼굴도 다 잊어버려도.
네가 이 엄마 뱃속에서 나온 건
잊으면 안돼"
가족들과 마지막이 될 여행을 마치고
인희는 아들 정수와 둘 만의 시간을 보냅니다.
인희는 정수에게 당부하죠.
엄마에 대한 모든 것을 잊어도, 네가 엄마의 아들이라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라고요.
아마도 인희는 정수에게
'잊혀져도 괜찮고, 생각나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도 너는 분명 엄마를 통해 이 세상에 나왔으니까.
우리는 단단한 끈으로 엮여 있으니까.'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별은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절절하게 사랑했더라도 시간이라는 강력한 힘 앞에서는
목소리도, 얼굴도, 함께 했던 기억도 흐려질 수 있죠.
하지만 함께한 시간이 희미해질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이 나라는 존재의 시작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끝내 사라질 수 없는 이별도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그렇죠.
언젠가 부모님와 이별을 하게 되고, 시간이 오래 지나 기억이 희미해진다 해도
내가 이 세상에 오기까지 지나온 자리가 부모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어떤 이별은 모든 것이 사라지더라도
지울 수 없는 처음을 남기고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수야, 연수야,
그냥 자꾸
우리 딸 이름이 부르고 싶다.
연수야,
난 연수, 니가 정말 좋다."
저희 집은 저만 왕 F고 다른 가족들은 극강의 T들이거든요.
어릴 때, 엄마가 제 이름을 부르면 저는 눈물이 찔끔 났어요.
엄마는 우는 절 보며 항상 어리둥절해하셨는데, 저는 아직도 기억나요.
제 이름을 불러주던 엄마의 음성이 너무 다정하고 따뜻해서 눈물이 났다는걸요.
엄마가 알려준 대로 쌀뜨물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인희는 조용히 연수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연수야,
응?
연수야.
왜?
그냥 자꾸 우리 딸 이름이 부르고 싶다.
연수야.
난 연수, 니가 정말 좋다.
연수야, 하고 부르는 건 대답을 기다려서가 아니라
그냥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라는 것을
이 장면은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별을 생각할 때 사라지는 것을 생각합니다.
더 이상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을요.
하지만 이 장면을 보면서 이별이 남기는 것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바로 '엄마에게 다정하게 불렸던 나' 처럼 말이에요.
인희는 연수에게 엄마가 없는 시간이 와도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다정하게 불러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 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엄마는 사라질 수 있지만
'엄마에게 다정하게 불렸던 나'는 사라지지 않죠.
이름을 불러주던 사람은 떠나도,
그 이름에 담긴 따뜻함과 기억은 연수의 삶 어딘가에 남아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요?
"술 먹을 때, 술 깰 때,
잠자리 볼 때, 잘 때, 잠 깰 때,
잔소리 듣고 싶을 때,
어머니 망령 부릴 때,
연수 시집갈 때,
정수 대학 갈 때, 졸업할 때,
설날 부침 할 때,
추석 송편 빚을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가족들과 여행을 마치고 인희와 정철은 가평 집에서 둘 만의 마지막 시간을 보냅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인희는 정철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요.
내가 보고 싶을 거는 같냐고요.
정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인희가 언제 자신이 보고 싶을 것 같냐고 묻자, 잠시 망설이던 정철은 힘들게 한 마디를 꺼냅니다.
".....다."
그리고 말을 이어가죠.
"아침에 출근하려고 넥타이 맬 때."
"맛없는 된장국을 먹을 때."
"맛있는 된장국을 먹을 때."
"술 먹을 때, 술 깰 때, 잠자리 볼 때, 잘 때, 잠 깰 때, 잔소리 듣고 싶을 때,
어머니 망령 부릴 때,
연수 시집갈 때,
정수 대학 갈 때, 졸업할 때,
설날 부침 할 때, 추석 송편 빚을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자신이 언제 보고 싶을 것 같냐는 인희의 질문에 정철은
삶의 모든 순간에 그녀가 보고 싶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좋은 순간에만 생각나는 것도,
힘든 순간에만 생각나는 것도 아니라 그냥 사는 내내요.
그래서 맛있는 된장국을 먹을 때만 보고 싶을 것 같다고 하는 게 아니라
맛없는 된장국을 먹는 순간에도 보고 싶을 것 같다고 말한 것이겠지요.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함께 나눈 추억이 많은 만큼,
그 사람은 나의 삶의 구석구석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과 저녁, 시작과 끝,
특별한 하루와 평범한 하루 사이 어디에도 빠지지 않고요.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을 하더라도
그것이 끝은 아닐 것입니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테니까요.
그래서 더 아프고,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인지를 꽤 오래 생각해보았어요.
이 작품에서 말하는 이별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지만
함께 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그 사람이 불러주었던 다정한 이름은 남아있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아프고 슬프더라도
그 안에 다시 하루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내게 해주는 것.
그래서 이 작품의 이별은
아름답다고 불릴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대본집 제일 앞 표지에 있는
노희경 작가님이 남기신 당부의 한 마디를 남기며 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
자식이 철들 때까지만
부디 건강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