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책도둑 소개 잘 보고 가요 저도 나중에 봐야겠네요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2005년에 출간된 마커스 주삭의 소설 <책도둑>을 원작으로 한 영화,
<책도둑, The Book Thief>입니다.
저도 원작을 읽었었는데 그 당시 책 표지가 동화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책을 읽었던 비슷한 시기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개봉했었는데
저는 이 소설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아동 소설인 줄 알았어요.
책 표지에 있던 검은 형태가 죽음이었을 줄이야!!
책을 읽어보니 저의 예상과는 달리
꽤나 심오한 이야기라 당황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소설이 흡입력이 좋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지요.
책이 출간된 뒤 10여년이 지나서 영화 개봉 소식이 들렸을 때 엄청 설렜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결국 국내 개봉은 무산되어서 나중에 DVD로 찾아서 보았어요.)
나치가 기승을 부리던 1938년 독일.
부모님의 정치적 이념으로 인해 고향에서 추방 당하고
입양을 가기 위해 열차에 오른 어린 소녀 리젤 메밍거는 열차 안에서 남동생의 죽음을 겪게 됩니다.
낯선 들판에 동생을 묻고 돌아서는 길에
리젤은 장례 인부가 떨어뜨린 책 한 권을 품 안에 숨기지요.
그것이 리젤이 훔친 첫 번째 책입니다.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 - 키케로"
그 책은 <묘지 관리인을 위한 지침서>라는 묘지 관리 메뉴얼이었습니다.
어린 소녀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책이었지요.
글자를 읽을 줄 몰랐던 리젤은 그 책이 무슨 책인지도 몰랐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소중하게 그 책을 품습니다.
이 장면을 볼 때면 저는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저는 책을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서점과 도서관을 자주 다녔죠.
독서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저는
초여름 날 엄마와 함께 배를 깔고 누워서 봤던 동화책이나
영화 <러브레터>에서 어린 여학생 후지이가 남학생 후지이를 도서관에서 만나는 이미지가 떠올라요.
뭔가 나른하면서도 평화롭고 신비로운 느낌이죠.
어쩌면 제가 책을 좋아한 이유는
책의 의미를 깊게 이해했다기보다는
책이 가득한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거든요.
리젤이 읽지도 못하는 책을 품었던 것은
현실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책 안에서 찾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살아보는 것이다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리젤은 한스와 로사 부부에게 입양됩니다.
동생의 죽음, 어머니와의 이별로 상처를 받은 리젤은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합니다.
글자를 몰랐던 리젤은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해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요.
어느 날 <묘지 관리인을 위한 지침서>를 품 안에 숨기고 있는 리젤을 본 양아버지 한스는
리젤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하실에 리젤이 글을 익힐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줍니다.
한스에게 글을 배우고 함께 책을 읽어나가며 리젤은 점차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자신만의 세상을 넓혀 나가지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위대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 르네 데카르트"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생이라는 이유 만으로 심한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따돌림이 징계 사유이지만
제가 어릴 때는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이 반에 한 두명씩은 있었어요.
촌지도 만연했던 시절이라 가해자 부모가 학교에 촌지를 주면
나쁜 행동도 무마 되었던 시절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고작 9살 밖에 안된 나이에 처음으로 겪은
주변의 냉담한 반응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긴 했는데
내 편이 아무도 없던 그 시기에 저에게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 준 것이 바로 책이었습니다.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 뿐인데
책 속의 인물들은 저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고, 위로를 건네기도 했지요.
때로는 제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리젤이 한스에게 지하실에서 글을 배워가며
함께 책을 읽는 장면이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9살의 나에게도 책은 참 많은 위로를 건네주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세상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일,
그것이 바로 책이 주는 따뜻한 힘 아닐까요.
어느 날 마을 광장에서는 불온 서적 소각 집회가 열립니다.
나치 당원들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책을 태우는 이유에 대해서
"지식의 유치함에서 자유를 얻고자 함"이라고 연설을 하지요.
리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불길 속으로 책을 던지지만
다 타들어간 책더미 안에서 미처 타지 못한 책 한 권을 몰래 숨겨옵니다.
바로 허벌트 조지 웰스의 <투명인간> 이라는 책이었지요.
이 책이 리젤이 두 번째로 훔친 책입니다.
역사적으로 책을 태우는 '분서 사건'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기원전 진시황 시절의 분서갱유나
현대 중국에서 벌어진 문화 대혁명,
영화에서 소개된 나치의 베를린 분서 사건이 대표적이죠.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박세당의 '사변록'을 태우라는 왕명이 있었고
현대에 와서도 책을 태우는 행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불온 서적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서적 읽는 것을 금지했던 일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분서 사건은 특정 사상이나 지식, 문화를 통제하기 위한 행위로
영화 <책도둑>에서도 '비독일인들의 영혼을 정화시킨다'는 명목 하에 책을 태우는 행위가 벌어졌지요.
"책은 위험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금지하려 한다 - 레이 브래드버리"
사실 저는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하던 시절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예전보다는 훨씬 자유롭지요.
하지만 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지금이
어쩌면 사람들의 생각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 시대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서 정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뉴스가 더 많이 보이고, 어떤 이야기가 더 널리 퍼지는지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미 정해지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책을 고를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편입니다.
재미없는 책을 읽는 것만큼 억울한 일이 없거든요.
수많은 책들 중에서 한 권을 고른다는 것은 단순히 읽을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내 세계 안으로 들여올지 결정하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책은 저의 생각을 조금 더 넓혀 주기도 하고
어떤 책은 제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요.
그래서 결국 내가 어떤 책을 선택했는지에 따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볼 때마다 저는 리젤이 훔쳐온 책이 왜 하필 <투명인간>이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사실 감독이 <투명인간>을 선택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히틀러는 반인륜적인 정책을 펼쳤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의 광기를 잘 몰랐다고 합니다.
마치 소설 <투명인간> 속 주인공인 그리핀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범죄를 서슴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의 존재를 몰랐던 것처럼요.
저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의도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리젤은 전쟁 속에서 가족을 잃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죠.
이때의 리젤은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 즉 투명한 사람 같은 상태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야 하는 막스도 마찬가지고요.
<투명인간>은 리젤과 막스의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리젤의 양어머니 로사는 마을 사람들의 빨래를 대신 해주며 근근이 살아갑니다.
리젤은 심부름으로 시장의 집에 세탁물을 배달해주는 일을 하죠.
책을 불태우던 밤, 리젤이 책 한 권을 품 안에 넣는 모습을 보았던 시장 부인은
리젤에게 책으로 가득 찬 서재를 보여주며 책을 읽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와도 좋다고 하고
그때부터 리젤은 세탁물 배달을 갈 때마다 책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어느 날 리젤은 시장 부인의 아들이자 이 서재의 주인인 요한이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시신이라도 돌아왔으면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아직까지도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시장 부인의 말을 듣고 리젤은 생각에 잠깁니다.
"책은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변함없는 친구이다 - 찰스 윌리엄 엘리엇"
서재에 가득 꽂혀 있는 책들은
어쩌면 누군가의 시간을 함께 견뎌주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시장 부인은 서재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요.
책장을 넘기며 보내는 그 시간은
막연한 기다림을 버텨내게 해주는 작은 위로가 아니었을까요?
'이 책을 다 읽으면 아들이 돌아오지 않을까.'
영화에는 직접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아들을 기다리는 시장 부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E성향을 가졌지만 마음이 복잡할 때면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금 멀어져서 조용히 책 한 권을 펼쳐 듭니다.
책 속의 이야기에 잠시 들어가 있다 보면
현실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지고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거든요.
감정이 극한으로 올라왔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지지만
마음을 차갑게 식히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상황을 바라보면
의외로 별 일이 아닌 경우도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리젤과 시장 부인이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단순히 두 사람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두 사람이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각자의 상처를 나누고 슬픔을 견디며
치유 받는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어느 날 세계 1차 대전 때 한스의 목숨을 구해준 유대인의 아들인 막스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정책을 피해 한스의 집에 숨어듭니다.
막스는 지하실에 몸을 숨긴 채 세상과 고립되어 살아가지요.
어느 날 막스는 리젤에게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을 리젤만의 언어로 말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리젤은 구름 낀 날씨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든 게 구름이 가려져서 답답해요.
그리고 태양이 태양처럼 보이지 않아요.
마치..은색 굴처럼 보인다고 할까요?"
막스는 웃으며 대답합니다.
"고마워. 나한테도 보였어."
"이야기는 세상을 이해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 필립 풀먼"
이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보았는지 모릅니다.
나에게도 구름에 가린 태양이 보였다며 웃고 있는 막스의 얼굴이
슬프게도 느껴지고, 기쁘게도 느껴지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거든요.
지하실에 숨어 지내는 막스에게 세상은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하지만 리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는 마음의 눈으로 하늘을 볼 수 있었지요.
리젤의 언어로 말한 "은색 굴처럼 보이는 태양"은
지하실에 갇혀 있는 막스에게는 바깥 세상을 보여주는 창문 같은 말일 것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해 본 적 없는 일들도
실제로 경험해 본 것처럼 머릿속으로 또렷하게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이런 책이 주는 상상력 때문에 우리는 독서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힘 있는 문장 몇 줄 만으로도 눈 앞에 그 장면이 펼쳐지는 경험을 할 때면
우리는 언어와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리젤이 집을 드나들며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장은
더 이상 리젤을 집에 오지 못하게 하고 빨랫감 일자리마저 끊기게 됩니다.
막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시장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책을 훔치게 되고
매일 막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죠.
병과 굶주림으로 나날이 쇠약해져 가던 막스는 결국 의식을 잃지만
리젤은 포기하지 않고 그에게 매일 책을 읽어줍니다.
리젤의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인지 막스는 드디어 의식을 되찾고
웃으며 리젤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네가 책 읽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더라구.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들었어."
"책은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주는 휴대용 마법이다 - 스티븐 킹"
지하실에 숨어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던 막스에게
리젤이 읽어 주는 책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은 아직 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증거였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책을 읽을 때면
누군가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위로를 받을 때가 있어요.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생각을 읽고
만나 본 적도 없는 누군가가 쓴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제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어린 시절, 잠들기 전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줄 때처럼
할머니가 이야기해주신 옛날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이죠.
그래서 저는 책을 읽는 시간이 혼자 있는 시간인 동시에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리젤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눈을 뜬 막스를 보면서
어쩌면 책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하루를 더 견디는 힘을 주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전쟁의 상흔은 나날이 깊어져 가고
리젤이 사는 "힘멜(천국이라는 뜻) 스트리트"에도 공습이 이어집니다.
방공호에 몸을 숨기고 공포에 떠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리젤은 자신이 읽었던 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여전히 바깥은 포탄 소리와 경보음으로 요란하지만
사람들은 리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죽음의 공포를 조금씩 잊어갑니다.
"문학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 준다 - C.S.루이스-
리젤의 이야기는 공습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마음을 공포감에서 조금은 멀어지게 만들 수는 있었습니다.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다보면
지금 내가 있는 자리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잠시 떠나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정신없이 책에 빠져 있다 보면
주변의 소음도,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들도 멀어지는 경험을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모두들 경험해보셨을거예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방공호에서 사람들이 리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은 세상을 바꿀 정도의 힘은 아니더라도
잠시라도 두려움과 괴로움을 잊게 만들어주기에는
충분한 힘을 가지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현실의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유대인 색출 작전이 점점 더 심해지고 하루하루 포위망이 좁혀 오자
한스 가족의 안전을 위해 막스는 리젤의 집을 떠나기로 합니다.
막스는 자신의 책에 풀을 발라 공책을 만들어 리젤에게 선물을 한 적이 있는데요.
집을 떠나며 한스는 슬퍼하는 리젤에게 계속 글을 쓰라고 당부하며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너를 떠나는 게 아냐.
너의 글 속에서 언제나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거기서 내가 살고 있을게.
글을 써, 단어는 생명이야 리젤.
그 백지들을 네 단어로 가득 채워봐."
"말은 사라지지만 글은 남는다 - 키케로"
글은 사람을 붙잡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떠나고 시간도 흘러가지만 글로 남겨진 이야기들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무르니까요.
가끔 오래 전에 읽었던 책 속의 문장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문장이 완벽하게 맞는지, 어떤 페이지에 그 문장이 나오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 문장을 읽었던 때의 감정만은 또렷하게 떠오르는 문장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는 J.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입니다.
지금은 어릴 때 읽었던 책이 아니라 그때와 번역이 조금 달라진 책을 가지고 있는데요.
전체적인 내용은 기존 책과 동일하지만 문장이 조금 달라진 점이 참 아쉬워요.
제가 어릴 때 마음이 꽂혔던 문장 중에 하나가
뽀르뚜까가 죽은 것이 쇼크를 받은 제제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 있을 때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마치 뽀르뚜까의 면도 소리 같다는 문장이에요.
"스윽-스윽" 이라는 별것도 아닌 단어 하나가 저를 참 많이 울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책에도 이 구절이 있긴 하지만 그 시절에 책처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긴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그 시절의 느낌이 나지 않더라고요.
지금도 중고서점에 가면 제가 어릴 때 보았던 그 책이 있는지 유심히 찾아보곤 합니다.
어린 시절 제 마음을 울렸던 그 문장을,
에어컨이 흔하지 않던 시절
더운 여름 밤, 거실에 대나무 돗자리를 깔고 온 가족이 누워 잠을 청할 때
배를 깔고 누워 몇 번이고 읽었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그 때 그 시절의 기분을 다시 한번 꼭 보고 싶거든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 어떤 생각과 감정을 남겨두는 일 같습니다.
막스가 리젤에게 남긴 공책 역시
누군가의 기억과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라는 부탁이었을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는
사라질 것 같은 순간들을
조금 더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전쟁이 이어지던 어느 날
또 다시 심한 새벽 폭격으로 인해 힘멜 스트리트는 결국 폐허가 됩니다.
책을 쓰다가 지하실에서 잠든 리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지만
양부모님과 친구 루디는 목숨을 잃게 되지요.
폐허 속에서 리젤은 자신의 책을 찾아내고
자신을 아껴주던 시장 부인에 의해 다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뒤 루디 아버지의 양장점에서 일하던 리젤은
마침내 막스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됩니다.
"책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여러 번 살 수 있게 해준다 - 움베르토 에코"
리젤에게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그녀를 구해준 것은 신기하게도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여러 번 살 수 있게 해준다"는 명언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여러 번 살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은
실제로 목숨을 구해준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책을 읽다 보면 지금 나의 삶과는 전혀 다른 시간과 장소를 경험하게 해준다는 의미에 가까울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책은 리젤에게 정말로 여러 번의 생명을 준 것 같습니다.
처음 글자를 읽게 해준 것도 책이었고
시장 부인을 만나게 된 계기도 책이었죠.
막스를 지켜준 것도,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서 지켜준 것도 결국 책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리젤이 폐허가 된 건물 더미 안에서 책을 찾아낸 것은
아직 리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쟁은 많은 것을 무너뜨렸지만
리젤이 사랑했던 단어들과 이야기까지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리젤은 한 권의 책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결코 놓지 않았으니까요.
영화 <책도둑>을 보고 나면 책이 가진 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책은 세상을 바꿀 수도, 전쟁을 끝낼 수도 없지만
어떤 사람의 하루를 조금 더 견디게 해주고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분명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리젤이 품에 숨겼던 것은
몇 권의 책이 아니라
세상을 다시 살아가기 위한 희망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