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평소에 트로스트 커뮤니티에서 다른 분들이 올려주시는 이야기나 코치님들이 적어주시는 글들을 읽으며 지친 마음을 다스리곤 하던 사람이에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 마음이나 정신 건강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깊게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어요. 전에 친정엄마가 외할머니를 떠나보내신 뒤에 심한 상실감과 우울증 증세를 보이셔서 직접 모시고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녀왔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엄마가 선생님께 진단을 받고 SSRI 계열 항우울제인 렉사프로정 5mg을 처방받아 복용하시는 전 과정을 제일 가까운 보호자로서 옆에서 하나하나 챙겨드렸었어요. 처음 약을 드시기 시작했던 일주일 동안은 엄마가 유독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껍다거나, 낮에 자꾸 졸음이 쏟아져서 몸을 주체하기 힘들다고 호소하셨어요. 몸이 더 처지니까 약이 너무 독해서 그런 것 같다며 그냥 복용을 중단하겠다고 부담스러워하셨던 순간도 있었죠. 그때 제가 옆에서 식사 직후에 약을 바로 챙겨드리고, 담당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서 용량을 5mg으로 유지하며 적응 기간을 잘 넘기실 수 있도록 곁을 지켰어요. 다행히 일주일 정도 지나니 메스꺼움이나 나른함 같은 초기 부작용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몸이 약에 잘 적응해 나갔구요. 그렇게 한 달 넘게 꾸준히 약을 드시면서 엄마는 아침에 눈을 떠서 실내 자전거도 타시고, 집 근처 공원 산책도 다니시며 조금씩 일상의 밝은 기운을 회복해 나가셨어요. 그 과정을 전부 곁에서 지켜보면서 “마음의 병이라는 것도 혼자만의 의지로 버티려고 애쓰기보다는, 전문의 상담을 받고 적절한 약물 치료와 관리법을 병행하면 얼마든지 일상을 다시 되찾을 수 있구나” 하는 점을 배웠던 거 같아요.
그렇게 엄마의 치료 과정을 잘 마치고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와 매일을 살아가고 있었는데요, 정작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있던 피로감과 고독감은 까맣게 잊고 지냈더라구요ㅠ 엄마를 돌보는 동안 내 안에서 들리는 신호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했던 거겠죠?
제 일상 자체는 남들이 겉에서 보기에 아주 멀쩡하고 평탄해 보였을 거예요.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씻고, 아이 옷을 챙겨 입혀 등원 준비를 시키고, 서둘러 출근길에 올라요. 회사에 도착해서는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적당히 농담도 주고받으며 웃기도 하구요. 업무 시간에 특별한 마찰 없이 제 할 일을 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차려 먹고 아이를 챙기다 누워 잠드는, 아주 전형적이고 성실한 30대 직장인이자 엄마의 삶이에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굴러가는 일상의 작은 틈새마다 알 수 없는 쓸쓸함과 무기력함이 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분위기에 맞춰 괜찮은 척 웃고 대화하지만, 정작 집으로 돌아와 혼자 남겨지는 순간이 되면 억지로 밝은 모습을 연기했던 나 자신이 너무 지치고 공허하게 느껴졌어요. 밖에서 쓴 에너지가 충전되기는커녕, 껍데기만 남아 털썩 주저앉는 기분이었죠.
“남들도 다 이렇게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거겠지?”, "내가 편안한 일상에 취해서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하나?“ 싶어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려 애써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아......또 길고 긴 하루를 버텨내야 하는구나“ 하는 무게감이 가슴을 턱턱 숨 막히게 했어요. 무기력함이 늪처럼 저를 아래로 계속 끌어내리는 것 같았고,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곤 했어요.
몸도 조금씩 신호를 보내오더라구요.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거나 심장이 두근거릴 때가 있었어요. 업무를 할 때도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예전만큼 집중이 잘 안 돼서, 방금 읽은 문장을 몇 번씩 다시 읽어야 겨우 이해가 되기도 했고요. 주방 일을 하거나 길을 걷다가도 멍하니 멈춰 서서 생각에 잠기는 날이 늘어갔어요.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길을 잃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휴대폰으로 ”30대 여성 무기력증“,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릴 때“, ”우울증 초기 증상“ 같은 단어들을 계속 검색해보곤 했어요.
그렇게 밤마다 검색창을 헤매던 중에, 며칠 전 트로스트 앱 내에 우울증 자가점검 기능이 있는 걸 발견했어요. 제대로 마음을 먹었다기보다는 그냥 지금 내 상태가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일지 가벼운 마음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서 문항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갔어요. 고민을 오래 하기보다는 요즘 내가 느끼는 기분과 몸의 변화 그대로 솔직하게 체크를 해나갔죠.
검사를 마치고 화면에 떠오른 결과지를 확인했을 때, 생각보다 높은 숫자와 문구를 보고 순간 한동안 머엉~해졌어요. 내 점수는 30점에 심한 우울 상태가 나왔어요ㅠ.ㅠ 전체 참여자(1,656,878명) 중 상위 37% 구간이구요 30대 여성 평균 25점 대비 5점 높았어요ㅋ 세부 유형으로 동굴 속 휴식이 나왔구요, 사회,역할기능만 4점 이상, 사회적 에너지가 떨어져 사람과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은 상태라는 진단이 붙었어요. 또 다음 검사에서는 심한 우울 상태라는 붉은색 글씨와 30점이라는 숫자가 나왔는데요, 이걸 가만히 보고 있으니, 머릿속이 멍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내가 그동안 진짜 많이 지쳐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남들에게는 늘 괜찮은 척, 똑 부러지는 척 연기하며 살아가느라 정작 내 마음이 삐걱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모른 척해왔던 거였어요.
친정엄마의 치료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우울함이라는 게 결코 개인의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무너지면 아무리 마음을 강하게 먹으려고 해도 몸과 마음이 따로 놀 수밖에 없다고 말씀해 주셨던 게 계속 기억에 남았거든요.
하지만 막상 제 자신의 자가점검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까, 내가 정말 당장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정식 진단을 받아야 하는 건지 생각이 복잡해지더라구요. “내가 정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일까”, “그냥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잠시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건 아닐까?”하는 고민들이 계속 이어졌어요.
한편으로는 약물 치료를 시작하게 될까 봐 지레 겁이 나기도 했어요. 엄마가 초기에 렉사프로정 5mg을 드시면서 겪으셨던 속 울렁거림이나 나른함, 졸음 같은 부작용들을 옆에서 직접 다 챙겼다 보니, “내가 직장 생활을 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저런 부작용들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걱정이 앞서더라구요ㅠㅠ 그래서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기보다는, 우선 내 현재 상태가 “사회적 에너지가 바닥나서 잠시 사람들과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 동굴 속 휴식 단계”라는 점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꼭 당장 정식 진단을 받거나 약을 먹지 않더라도,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돌보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번에 자가점검 결과를 확인한 이후로는 무작정 “더 열심히 살아야지”, “남들처럼 밝게 지내야지” 하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일을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대신, 일상 속에서 작지만 실천할 수 있는 변화들을 하나씩 시도해보려고 해요.
첫 번째로, 내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 거절하는 연습을 조금씩 하려고 해요. 에너지가 이미 바닥난 상태에서 사람들을 만나 억지로 웃고 오면, 집에 돌아왔을 때 밀려오는 쓸쓸함과 피로가 배로 커지더라구요. 그래서 퇴근 후나 주말에 불필요한 사적 모임은 가급적 줄이고, 혼자 잔잔하게 마음을 정리하며 쉴 수 있는 시간을 꼭 확보하려고 해요.
두 번째로, 엄마가 우울증 치료를 받으실 때 의사 선생님이 강조하셨던 “햇볕 쬐며 산책하기”를 저도 일상에 완전하게 적용해봐야겠어요. 지금도 이미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를 20분 정도 천천히 걸으며 햇살을 받고 바람을 느끼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데요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복잡한 생각들이 조금은 정돈되는 기분이 들고, 밤에 잠자리에 들 때도 예전보다 한결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어요.
세 번째로, 내 감정을 글로 솔직하게 적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찾아올 때, 다이어리나 폰에 메모장을 켜고 지금 느껴지는 기분이나 신체 증상을 있는 그대로 써야겠어요. 글로 적어두고 나면 내 감정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 같아요.
물론 이런 노력들로 우울한 감정이 하루아침에 싹 사라진 것은 아니겠죠? 하지만 이전처럼 끝없는 늪으로 침몰하지 않고 내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힘이 조금씩 생길 것 같아요. 만약 앞으로 관리를 해나가면서도 가슴 두근거림이나 무기력함이 더 심해진다면, 그때는 주저하지 않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 전문가 상담을 받고 필요한 치료를 시작할 생각이에요. 엄마의 치료 과정을 통해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요.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서도, 이유 없이 마음이 헛헛하고 혼자 세상에 뚝 떨어진 것 같은 고독감에 힘들면서도 “다들 이렇게 사는데 내가 예민한 거겠지...”하며 참아내고 계신 분이 계신가요? 완전한 극복을 위한 집중 치료를 바로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처럼 아직 확정된 진단명이 없더라도, 내가 지금 얼마나 지쳐 있는지 정확하게 점검해보고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작은 혈이 뚫리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자가점검은 나에게 어떤 확정된 병명을 붙이기 위한 검사가 아니라, 그동안 숨 쉴 틈 없이 달리느라 고생한 내게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확인해 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혼자서 속으로만 고민을 안고 헤매지 마시구요, 가벼운 마음으로 자가점검부터 꼭 한번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내 마음이 보내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어 주는 것, 그 사소한 시작이 나를 찾아가는 진짜 회복의 출발점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