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엄마, 잘못을 말해도 결국 내가 나쁜 딸이 되더라고요
저희 엄마는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정말 객관적으로 봐도 엄마의 실수이거나 잘못인 상황인데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제가 잘못한 사람이 되어 있어요. 엄마는 상처받은 사람이 되고, 저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딸이 되어버리는 식이에요.
이런 관계가 힘든 이유는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비슷한 경험이 계속 쌓여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동생과 차별받는다고 느끼며 자란 기억이 많아요. 예쁜 옷이나 맛있는 간식은 동생에게만 챙겨주고, 학원에서 늦게 끝나는 날에도 저는 기다려주지 않았지만 동생은 올 때까지 기다려줬어요.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었을 때도 동생은 데리러 가면서 저는 데리러 오지 않았고요.
어릴 때는 그냥 내가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계속 쌓이니까 마음속에 서운함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은 용기를 내서 엄마에게 그동안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제가 정말 듣고 싶었던 건 “그때 네가 많이 서운했겠구나” 같은 말이었는데, 돌아온 건 전혀 다른 반응이었어요.
엄마는 “내가 언제 그랬냐”고 했고, 제가 엄마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를 냈어요. 심지어 집을 나가겠다고까지 하면서 상황을 크게 만들었어요.
결국 처음에 제가 이야기했던 건 동생과의 차별에 대한 서운함이었는데, 마지막에는 제가 엄마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한 딸이 되어 있었어요. 엄마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제가 엄마에게 상처를 줬다는 분위기가 되어버렸고요.
그때 정말 답답했던 건 내가 왜 힘들었는지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정작 내 이야기는 사라져버렸다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비슷한 일이 반복돼요.
제가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예민하다고 하고, 징징거리지 말라고 해요. 몸이 아파서 힘들다고 이야기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가 많은데, 정작 엄마가 힘든 일이나 몸이 아픈 이야기는 저에게 계속 이야기해요.
특히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아빠가 없는 자리에서 아빠에 대한 불만을 계속 이야기하면서 은근히 제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것처럼 말하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는 엄마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니까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그랬더니 엄마는 “딸이 돼서 엄마도 이해 못하냐”, “너는 아빠 편이지?”라고 했어요.
저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닌데 말이에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엄마 표정이 좋지 않으면 괜히 제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고, 엄마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면 저까지 덩달아 기분이 안 좋아졌어요.
엄마는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이라 집안 분위기가 엄마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고, 저도 모르게 그 분위기를 맞추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엄마가 화를 내거나 서운해하면 정말 제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고 있어요.
엄마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그 잘못까지 떠안을 필요는 없다는 것. 엄마가 힘들어한다고 해서 제가 그 감정을 전부 받아줘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서운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엄마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일은 아니라는 것도요.
그래서 요즘은 예전처럼 무조건 엄마의 기분부터 살피려고 하지 않아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듣지 않겠다고 말하고, 제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까지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려고 해요.
물론 아직 쉽지는 않아요. 오랫동안 눈치를 보며 살아왔기 때문에 엄마와 거리를 두거나 제 의견을 말하고 나면 괜히 마음이 불편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예전과 다른 점은 그 죄책감이 든다고 해서 내가 정말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걸 조금씩 구분하게 됐다는 것이에요.
혹시 저처럼 부모의 기분을 살피느라 늘 눈치를 보고, 내 감정보다 부모의 감정을 먼저 챙기고 있는 분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어요.
부모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부모의 감정을 책임지는 것은 다른 것 같아요. 부모님이 힘들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그 감정을 받아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화를 낸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니까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처음에는 선을 긋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고 죄책감도 들 거예요. 저도 아직 그 과정에 있고요. 그래도 작은 것부터 내 마음을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듣기 힘든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되고,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내 마음을 계속 희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를 지키는 것이 이기적인 게 아니라, 나 역시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