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상사 대처법 — 지옥 같았던 2년 극복기

직장에 나타난 나르시시스트

 

최근 유튜브나 커뮤니티에서 나르시시스트에 관한 글을 볼 때마다 제 심장은 여전히 철렁 내려앉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제 일상을 완전히 무너뜨렸던, 그리고 제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여기게 만들었던 직장 상사와의 2년이 고스란히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저와 같은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끔찍했던 시간과 제가 어떻게 그곳에서 빠져나왔는지 상세히 적어보려 합니다.

처음 부서에 배치받고 그 팀장님을 만났을 때만 해도 저는 제 회사 생활에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 줄 알았습니다. 업무 능력은 물론이고 겉으로 보여지는 언변이 굉장히 화려했으며 무엇보다 갓 부서에 들어온 저를 유독 살뜰히 챙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업무적인 조언을 넘어 개인적인 고민까지 들어주며 밥과 술을 사주던 그 모습은 완벽한 멘토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과잉 친절은 저라는 사람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한 교묘한 사전 작업에 불과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기소 0.36%에 불과…'괴롭힘 방치법' 될라-사회ㅣ한국일보

관계의 양상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것은 제가 부서 업무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제 목소리를 조금씩 내기 시작할 무렵부터였습니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교묘한 가스라이팅과 기억 조작이었습니다. 분명히 구두로 A라는 방향으로 기획안을 수정하라고 지시를 내려놓고 막상 결과물을 가져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자신이 지시한 적 없는 내용을 왜 마음대로 적어오냐며 팀원들이 다 듣는 자리에서 저의 이해력과 지능을 깎아내리는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처음 몇 번은 정말 제가 회의 시간에 집중을 못해서 잘못 들은 것이라고 뼈저리게 자책하며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무한 반복되면서 저는 점점 제 판단력과 기억력을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메일이나 메신저로 명확하게 남은 증거를 들이밀어도 상사는 교묘한 말장난으로 본질을 흐리며 결국 제 잘못으로 귀결시켰습니다. 문맥을 파악하지 못한다거나 융통성이 없다는 식의 인신공격이 이어졌고 나중에는 제가 의견을 꺼내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명백한 업무적 실수는 어떻게든 부하 직원들의 탓으로 교묘하게 포장해 전가하면서도 팀의 모든 성과와 타 부서의 칭찬은 오롯이 자신만의 공로로 가로채는 뻔뻔함을 보였습니다.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점은 부서 내의 사람들을 철저하게 이간질하며 저를 심리적으로 고립시킨 것입니다. 저를 따로 회의실로 불러내어 다른 동기나 선배들의 험담을 은밀하게 늘어놓았고 저에게만 특별히 알려주는 비밀인 것처럼 포장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상사가 다른 팀원들에게 가서는 저에 대한 치명적인 뒷담화를 퍼뜨리며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팀원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소통을 단절하게 되었고 오직 그 팀장 한 사람만을 통해서만 정보가 흐르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구조가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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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옥 같은 환경에서 1년 넘게 시달리다 보니 제 몸과 마음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습니다. 일요일 오후만 되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숨이 턱턱 막히는 공황 증세가 찾아왔습니다. 평소에 좋아하던 취미 생활은 모두 의미를 잃었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불도 켜지 않은 채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는 날들이 허다했습니다. 원래 매사에 긍정적이고 자신감 있던 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내일 상사의 기분이 나쁘지 않기만을 바라는 눈치 보는 기계로 전락해버린 제 모습이 너무나도 비참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 같다는 위기감에 저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습니다. 여러 차례의 긴 상담 끝에 선생님께서는 제 상사의 행동 양식이 전형적인 악성 자기애성 성향, 즉 나르시시스트의 표본이라는 것을 짚어주셨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타인의 감정을 착취하고 통제하며 자신의 부풀려진 자아를 유지하는지 그 매커니즘을 이해하게 된 순간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무능해서 겪은 일련의 고통들이 사실은 제 잘못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폭력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제 극복의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레이락(Gray Rock) -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하는 방법, 회색돌 기법 | 강남심리상담센터 해맑음 : 네이버 블로그

사진 출처: 강남심리상담센터

 

그날 이후 저는 상사를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감정적인 동요를 일절 보이지 않는 이른바 회색 돌기법을 철저하게 실행에 옮겼습니다. 상사가 무리한 트집을 잡거나 인신공격을 할 때 예전처럼 억울해하며 해명하거나 울먹이는 대신 영혼 없는 표정으로 네 알겠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라고 짧고 건조하게만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받고 억울해하는 감정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철저하게 그 먹잇감을 차단해 버린 것이더라고요.

 

이와 동시에 저는 생존을 위한 철저한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지시 사항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반드시 사내 메신저나 이메일을 통해 다시 한번 텍스트로 확인받는 절차를 거쳤습니다. 통화나 대면 보고 시에는 예외 없이 녹음 앱을 켜두었고 날짜와 시간 그리고 그날의 상황을 육하원칙에 따라 제 개인 파일에 빼곡하게 기록해 나갔습니다. 상사가 또다시 말을 바꾸거나 책임을 전가하려 할 때마다 저는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예전에 남겨둔 기록과 캡처본을 조용히 첨부하여 대응했습니다. 자신의 거짓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명백한 물증 앞에 직면하자 상사는 서서히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저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부서 전체의 성과가 걸린 큰 프로젝트에서 상사가 또다시 치명적인 실수를 저에게 덮어씌우려 했을 때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녹취록과 이메일 기록 그리고 업무 지시 타임라인을 모두 정리하여 상위 부서장과 인사팀에 정식으로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감정을 덜어내고 오직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만을 바탕으로 그간의 부당한 업무 지시와 책임 전가 사례를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빼도 박도 못하는 명백한 증거들 앞에서 상사는 변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결국 사건은 공론화되어 저는 즉각적인 타 부서 이동 발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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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를 옮기고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게 된 지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부서 사람들도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방어적으로 대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제 페이스를 되찾고 일상의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더 이상 가슴이 조여오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감사합니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그들의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상식선에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원인을 내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직장이나 혹은 가까운 관계에서 원인 모를 우울감과 억울함에 시달리며 매일 밤 숨죽여 우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 같다면 당장 상대방이 나르시시스트가 아닌지 객관적으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말을 가장 힘주어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깎아내리는 것처럼 무능하거나 부족한 사람이 절대 아니며 지금 겪고 있는 그 지옥 같은 상황은 결단코 여러분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자신을 잃지 마시고 철저하게 감정을 분리하여 냉정하게 대처하시기를, 그리고 하루빨리 그 병든 관계에서 무사히 탈출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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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 익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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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좋은 멘토처럼 보였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통제와 조종을 시작했다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 익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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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동안 나르시시스트 상사의 가스라이팅과 책임 전가를 견디며 얼마나 스스로를 의심하게 됐을지 마음이 무거워요. 회색 돌기법과 기록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 결국 안전한 곳으로 옮긴 과정이 비슷한 상황의 분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