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친구 극복, 40년 지기 인연의 끈을 놓으며..
우리 나이 육십이 넘어가고 머리에 희끗희끗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주변에 남은 인연 하나하나가 참 애틋하고 소중해집니다.
그래서 저 역시 여고 시절부터 40년을 가까이 알고 지낸 그 친구를 제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습니다.
젊은 시절 아이들 키우며 아등바등 살 때도 남편 속앓이로 밤잠을 설칠 때도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마음을 나누던 사이였으니까요.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제 가슴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가던 원인 모를 답답함과 상처의 원인이 바로 그 친구의 지독한 자기애성 성향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친구는 어딜 가나 자신이 돋보이고 주인공이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동창 모임에 나가면 늘 대화의 주도권을 쥐어야 했고 다른 친구가 좋은 일이 생겨 축하를 받는 분위기가 되면 은근슬쩍 화제를 돌려 자기 자식 자랑이나 남편이 사준 물건 자랑으로 끝을 맺곤 했습니다.
젊은 시절 남편의 사업이 잠시 기울어 제가 부업을 하며 고생할 때도 그 친구는 위로를 가장한 얄팍한 동정으로 제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자기는 팔자가 좋아서 고생을 모른다며 웃어넘기는 그 입술을 보면서도 저는 그저 그 친구가 원래 솔직하고 악의가 없는 성격이라 그렇다며 스스로의 눈과 귀를 가린 채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해 왔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남의 아픔에 대한 철저한 무공감과 끔찍할 정도의 이기심이었습니다. 제가 몇 년 전 관절이 안 좋아져서 큰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조차 그 친구는 병문안을 와서 제 몸 상태를 걱정하기는커녕 자기 집 인테리어 공사가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한 시간 내내 떠들다 돌아갔습니다.
제가 몸도 아프고 마음도 지쳐서 남편에게 기대어 조금 눈물을 보이자 며칠 뒤 다른 친구들에게 제가 나이 먹고 남편 앞에서 청승을 떤다며 비웃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제 안에서 인내심을 지탱하던 낡은 동아줄이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 40년의 우정이 철저하게 껍데기뿐이었다는 뼈아픈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라는 생소한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건 우연히 보게 된 텔레비전 심리 상담 프로그램 덕분이었습니다. 타인을 교묘하게 통제하고 감정을 착취하면서도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듣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평생을 저를 휘둘러온 그 친구의 얼굴이 선명하게 겹쳐졌습니다.
그동안 제가 겪은 묘한 불쾌감이 내 옹졸함 때문이 아니라 그 친구의 정서적 폭력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자 억울함에 밤새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무조건 참고 이해해 주며 져주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저는 오랜 세월 저를 옭아매던 보이지 않는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진 말로 다투고 연락을 끊는 대신 저는 서서히 만남의 횟수를 줄이고 그 친구의 감정적인 호소나 신세 한탄에 더 이상 동조해 주지 않는 방식으로 조용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더 이상 자신을 떠받들어주지 않고 영혼 없는 반응만 보이자 그 친구는 예상대로 펄쩍 뛰며 주변 지인들에게 저를 천하의 배신자이자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나이 먹고 변했다느니 오해가 있다느니 온갖 거짓 소문으로 저를 깎아내리며 자신은 상처받은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꼴이 참으로 우스웠습니다. 처음에는 억장이 무너지고 일일이 찾아가 해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제는 그런 행동조차 상대를 조종하려는 그들만의 뻔한 패턴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묵묵히 침묵하며 제 일상을 지켜냈습니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40년 지기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분명 가슴 한쪽이 시린 일입니다. 가끔은 꽃구경을 가고 찜질방에서 수다를 떨던 젊은 날의 화사한 추억이 떠올라 마음이 속절없이 울적해지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머리처럼 제 에너지를 빨아먹던 관계를 정리하고 나니 지금 제 곁에는 저를 깎아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진짜 인연들만 남게 되었고 무엇보다 제 마음이 이토록 평온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