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표류기 명작 이였죠 잘 보고 갑니다
저는 2026년을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달력에 까만 날은 출근을 하고, 필요하면 빨간 날에도 출근을 하지요.
우리 회사는 바쁘게 돌아가는 곳입니다.
동료들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죽더라도 영혼으로라도
출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요.
피로감은 연차의 곱절로 쌓이는 기분이고 요즘은 번아웃까지 온 것 같습니다.
신입 때의 열정과 패기는 사라진지 오래고
요즘 회사에서의 저는 어딘가 조난 당한 사람 같습니다.
끊임없이 소통하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게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으면서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죠.
매일 성실하게 출근을 하고 처리해야 할 일정을 확인하고
주어진 업무를 하고는 있지만 세상에서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기분이겠지요?
마치 한강 밤섬과 자신의 방 안에서 표류하고 있는 두 명의 김씨처럼요.
영화 <김씨 표류기>는 세상에 너무 일찍 나온, 홍보팀이 망친 명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재와 영상미, 배우들의 연기, 음악까지 모든 면에서 완성도가 높은데
저예산 코미디 영화처럼 홍보가 되었고
B급 영화 느낌이 물씬 나는 포스터까지 한몫하여 흥행에 실패했죠.
오늘 주제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살짝 해볼께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의외로 영화<김씨 표류기>에는 공들인 CG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어서
손익분기점이 200만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봉 당시 실제 관람객은 725,031명으로 손익분기점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었죠.
그리고 725,031명 중 한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사실 이것을 말하고 싶었답니다ㅋㅋㅋ).
영화가 개봉했던 2009년은
제가 개봉하는 영화는 모조리 다 보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 이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볼까말까를 한참 망설였던 기억이 납니다.
<웰컴 투 동막골>과 <나의 결혼원정기>에서 정재영 배우님의 연기가 좋았기 때문에
솔직히 '돈 버리는 셈 치고 한번 보자' 하는 생각으로 봤는데
돈 버릴 줄 알았던 영화가 저의 인생 영화 중 하나가 되었네요.
세월이 지나 최근에 다시 재평가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제 기분이 괜히 흐뭇해지는 영화입니다.
2억이 넘는 빚을 지고, 애인에게 차이기까지 한 남자 김씨, 김성근.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그는 한강 다리에서 투신 자살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가 눈을 뜬 곳은 저승이 아니라 한강 다리 밑 밤섬이었죠.
눈 앞에 서울의 빌딩 숲이 보이고
유람선이 유유히 자신의 앞을 지나가지만
수영을 하지 못하는 그에게 밤섬은 감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햇빛에 젖은 핸드폰을 말려서 겨우 구조 요청을 하지만 장난 전화 취급을 당하고
지나가는 유람선에 미친듯이 손을 흔들어 보지만
그가 인사를 하는 것으로 생각한 승객 아저씨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넬 뿐이었죠.
다시 절망에 빠진 그는 죽으려고 시도를 하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자
죽는 것을 잠시 미루고 밤섬에서의 삶을 시작해보기로 결심합니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에는
3년 째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 상처받은 여자 김씨, 김정연이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섬'과 같은 자신의 방 안에 철저하게 가둔 채 살아가고 있지요.
그녀는 가족과의 관계조차 거부한 채 살아가지만
다른 사람의 사진을 도용해서 온라인 미니홈피를 꾸미고
취미로 밤 하늘에 달 사진을 찍습니다.
어느 날 카메라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녀는
밤섬에 갇힌 남자 김씨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김씨를 관찰하기 시작하지요.
"죽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습니다."
- 남자 김씨 -
밤섬 탈출에 실패한 남자 김씨는 이 곳에서 죽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나무에 목을 매려는 찰나
참을 수 없는 변의를 느낀 그는 급히 풀숲으로 들어갑니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던 중 그는 눈 앞에 가득 피어있는 붉은 사루비아 꽃을 보게 됩니다.
꽃 하나를 따서 꽃 대롱을 혀 끝에 대어보니 달콤한 맛이 혀 끝에 퍼집니다.
그 달콤함에 남자 김씨는 오열합니다.
그리고 그는 죽는 것을 잠시 미루고 조금 더 살아보기로 결심합니다.
남자 김씨의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빚은 그대로이고 애인이 돌아온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은 밤섬에 갇혀 있지요.
하지만 혀 끝에 맺힌 그 단맛 하나가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 회사에서 저는 남자 김씨처럼 어딘가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듭니다.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다들 각자의 섬에 갇혀 있는 것 같고
출입구는 도처에 존재하지만 나갈 수가 없지요.
그저 업무라는 쓰나미에 휩싸인 채 하루하루를 버텨냅니다.
그럴 때면 저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나에게도 사루비아 꽃 한 송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요.
드라마처럼 사표를 누군가의 면상에 멋지게 집어던질 수도 없고
기적처럼 연금 복권 1등에 당첨되어 회사를 취미로 다니지는 못하더라도
퇴근 후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일 하다가 문득 바라본 창 밖 풍경,
누군가와 마음을 담아 나누는 짧지만 진짜인 대화처럼
그 작디 작은 단맛이 "오늘도 조금만 더 힘내보자" 하고 말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전에
만보기의 남은 숫자를 채웁니다.
건강을 위한 건 아닙니다.
만 번을 채우고 나면
하루를 열심히 산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죠.
너무도 건전한 현실도피입니다."
- 여자 김씨 -
3년 째 방안에 틀어박혀 사는 여자 김씨에게도 하루의 루틴이 존재합니다.
아빠가 출근을 한 아침 8시에 눈을 뜨고 아침은 옥수수 캔 하나를 먹습니다.
그리고 만보기에 3천보를 채우죠.
9시가 되면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와 모니터를 청소한 뒤 출근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 출근은 다름 아닌 미니홈피 관리입니다.
점심으로는 생라면 하나를 부숴 먹고
방 안에서 제자리 걷기를 하며 만보기에 숫자를 올립니다.
저녁이 되면 취미인 달 사진 찍기를 한 뒤
만보기에 남은 숫자를 채우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여자 김씨의 하루는 저의 하루와 비슷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눈을 뜨고 아침을 먹은 뒤 출근을 합니다.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 저는
안전하고, 성실하게, 문제 없이 하루를 보냅니다.
너무 소극적이지도, 적극적이지도 않게 직장인에 어울리는 적절한 텐션을 유지하고
동료들과도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죠.
오늘도 늘 똑같지만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제서야 안도감이 듭니다.
여자 김씨에게 "만 보"라는 숫자가 오늘을 살아내었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처럼요.
여자 김씨는 자신의 만 보를
너무도 건전한 현실 도피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여자 김씨에게 만 보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을 최소한의 안전장치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모니터 옆에 붙여둔 To do list에 목록이 하나씩 지워지는 것이
저만의 너무도 성실한 생존 방식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목록이 하나씩 지워질 때마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멋지게 살아낸 하루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별 문제 없이 오늘 하루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저는 저만의 만 보를 채웁니다.
언젠가는 꼭 만 보를 다 채우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요.
그 날이 올 때까지 저는 계속 걸을 겁니다.
회사라는 이 섬 안에서요.
"달을 찍는 이유는
달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으면 외롭지 않으니까요."
- 여자 김씨 -
여자 김씨의 취미는
달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며 달 사진을 찍지요.
그런데 여자 김씨의 역설적인 저 말은 참 슬프게 들립니다.
사람이 없어서 외롭지 않다니.
우리는 보통 사람이 없으면 외롭다고 표현하지 않던가요.
하지만 가끔은 여자 김씨의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더 외로울 때가 있지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하고
웃고는 있지만 마음이 텅 빈 것 같을 때.
그럴 바에는 기대도 실망도 없는 공간이 더 편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으니까요.
여자 김씨에게 달은 그런 곳인 것 같습니다.
아무도 없으니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할 필요도 없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상처를 줄 사람도 없지요.
어쩌면 우리는 홀로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도 느껴지는 외로움이 더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달을 찍나 봅니다.
회사에 있다 보면 하루 종일 사람들 사이에 있게 됩니다.
회의를 하고, 메일을 주고 받고, 함께 식사도 하지요.
누군가와 늘 함께 있는 것 같지만
정작 마음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차라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고 싶어집니다.
튀지 않으면 비난 받을 일이 줄어들고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지요.
아무도 없는 달처럼
어떠한 실망도 기대도 하지 않은 채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질 때가 많지요.
하지만 여자 김씨가 자신을 방 안에 가두어 두면서도
카메라 렌즈로 바깥 세상을 응시하는 것처럼
솔직하게 말하면
저 또한 혼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다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언젠가는 카메라 렌즈가 아닌 나의 눈으로
누군가를 온전하게 마주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HELP가 HELLO가 되었습니다."
- 여자 김씨 -
남자 김씨는 서서히 밤섬에서의 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여자 김씨는 여전히 그를 매일 관찰합니다.
남자 김씨는 떠내려온 오리배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이제는 사냥에도, 나무를 타는 것에도 익숙해져 가지요.
밤섬 탈출에 실패한 뒤 흙바닥에 써놓은 조난 신호 HELP는
어느 새 HELLO로 바뀌어 있습니다.
구조 요청이 어느샌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인사로 바뀐 것이지요.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저 역시 "HELP"를 외치고 싶어질 때가 많습니다.
업무는 터져 나가고 스케줄은 꼬이고
말 안 듣는 후배, 징징대는 동기,
성격 맞추기 어려운 상사까지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저 또한 누군가에게 나 좀 구해 달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회사에서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징징이로 보일까 봐
마음 속에는 대문짝만하게 HELP라고 써두었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요.
저는 원래 벽이라는 것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사회 생활이 길어질수록 내 주변에 점점 더 높은 담을 쌓아올리며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저에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죠.
"괜찮아? 좀 도와줄까?" 하고요.
하지만 저는 늘 "아니요, 괜찮아요." 하고 말합니다.
사회인이 되면 우리는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연차가 쌓인 직장인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괜찮은 척, 감당할 수 있는 척하며 나의 버거움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지요.
하지만 힘듦과 고민을 표현하는 것은
결코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이자
함께 하자는 신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자 김씨의 HELP가 HELLO로 바뀌었을 때
그는 더 이상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사람이었죠.
남자 김씨처럼 저에게도 언젠가는
HELP가 HELLO로 바뀌는 순간이 오겠지요?
"마이 네임 이즈 김정연.
후아유."
- 여자 김씨 -
남자 김씨는 자신이 직접 기른 옥수수로 면을 만들어
짜장라면 먹방까지 성공하며 평화로운 밤섬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갑니다.
이제는 유람선을 보면 몸을 숨길 정도로 이 곳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했지요.
하지만 밤섬 정화 작업을 나온 공무원들에게 거처가 노출되고
남자 김씨는 밤섬에서 쫓겨납니다.
절망한 남자 김씨는 다시 죽기 위해
63빌딩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릅니다.
이를 방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자 김씨는 그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지요.
보호막인 헬맷 없이는 창문 밖도 바라보지도 않았던 그녀는
헬맷을 쓰는 것도 잊은 채 정신없이 문 밖으로 내달립니다.
하지만 달리기로 버스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죠.
그 때 1년에 두 번 있는 민방위 훈련 사이렌이 울립니다.
10분 간 세상에 모든 것이 멈추고 남자 김씨가 타고 있던 버스도 멈춥니다.
여자 김씨가 남자 김씨를 처음 본 날도 민방위 훈련 날이었습니다.
낮에는 창문 밖을 바라보지 않는 여자 김씨가 유일하게 한 낮에 밖을 바라보는 날.
세상에 모든 것이 딱 10분 동안만 멈추는 민방위 훈련 날이었죠.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뛰어가 버스를 붙잡은 뒤
마침내 그녀는 그의 앞에 섭니다.
그리고 이 말을 꺼냅니다.
"마이 네임 이즈 김정연. 후아유"
이 한 마디의 문장으로 두 사람의 고립은 끝이 나고
서로를 마주하며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이름보다 역할로 불릴 때가 많습니다.
어느 팀의 과장, 어느 파트의 대리.
직급이 붙으면
해야 할 일과 책임은 분명해지지만
정작 나 자신은 점점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저는 가끔 내가 사람이 아니라 기능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스케줄을 조율하는 사람.
공지를 하는 사람으로요.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하고요.
여자 김씨가 버스 안에서 처음 꺼낸 그 말은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위한 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다시금 확인하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는 이럼 사람을 가진 사람이에요.
나는 지금 여기, 당신 앞에 서 있어요, 하고요.
회사에서도 가끔은 이런 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와 지표가 아니라
조금 더 인간적인 얼굴로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말해보는 순간이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속도를 늦추면
내 이름이 무엇인지, 당신이 누구인지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이 네임 이즈 김정연. 후아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