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퇴근 후 매일 울던 제가 휴직과 취미로 회복한 경험
처음에는 제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아직 직책이 높은 편은 아닌데,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가 생기면 팀장님이 제 이름을 먼저 말씀하셨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잘하는 편이다 보니 문서 작성은 물론이고 프로젝트 진행, 회의, 임원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까지 제가 주도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그거 승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니야?”라고 했어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프로젝트를 맡아보니 생각보다 너무 버거웠어요. 아직 경험도 부족한데 중요한 일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고, 제가 주도한다고 해서 주변 팀원들이 같이 이끌어주는 것도 아니었어요. 제가 일을 잘하니까 알아서 하겠지 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 프로젝트의 많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제 몫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특별히 성과금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저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맡은 일을 대충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정말 잘해야 하는데…’
‘임원들 앞에서 발표까지 하는데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계속 몰아붙였어요.
결국 밤을 새워서 일하고 주말에도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저도 성장하고 경험이 쌓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보다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번아웃이 왔어요.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지고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몸은 따라주지 않고 마음만 계속 조급했어요.
특히 프로젝트 작업을 해야 하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도 집중이 잘되지 않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 드는데 일이 진전되지 않으니 점점 초조해지고, 결국 짜증이 나고 울기도 했어요.
퇴근해서 집에 오면 눈물이 나는 날도 많았습니다.
저는 원래 눈물이 별로 없는 편인데 정말 펑펑 울었어요. 어떤 날은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았고, 또 어떤 날은 예민함이 극도로 심해져서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몸에도 변화가 생겼어요.
너무 피곤한데 잠은 깊게 자지 못하고 새벽에 몇 번씩 깼고,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돼 입맛도 떨어졌습니다. 살도 많이 빠졌어요.
처음에는 주말 하루 정도 푹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쉬고 나서도 몸이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몸이 축 처지고 우울감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았어요.
결국 보다 못한 부모님이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실 정도가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회사를 그만둘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열심히 해온 것도 아깝고, 이걸 포기하면 제가 너무 약한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게 됐습니다. 병원에서는 제가 심한 번아웃 상태라고 했어요. 번아웃 자체를 치료하는 특정 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나타나는 증상에 도움을 주기 위해 낮은 용량의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함께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약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상담 후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면서 상담치료도 같이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받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상담 선생님께서 제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주셨고, 그동안 누구에게도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던 감정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그리고 일과 내 삶을 분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퇴근 후와 주말에는 일 생각을 내려놓고,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제가 예전부터 좋아했던 것을 시작해봤습니다. 저는 원래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예전부터 가죽 공방에 관심이 있었지만 일이 너무 바빠서 한 번도 시작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해보기로 했습니다.
주말마다 가죽 공방에 가서 부드러운 가죽을 만지고, 제가 좋아하는 색을 고르고, 키링이나 카드지갑, 다이어리 케이스 같은 작은 소품들을 하나씩 만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했습니다. 가죽 공방에서 작업하는 동안에는 일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어요. 내가 좋아하는 색의 가죽을 고르고, 내 손으로 하나씩 만들어서 완성하는 과정이 너무 좋았습니다. 작은 소품 하나를 완성했을 뿐인데도 스스로 뿌듯했고, 일하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과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어요.
‘아, 내가 원래 이런 걸 좋아했지.’
잊고 지냈던 제 모습을 다시 찾는 기분이었습니다.
운동도 시작했어요.
예전부터 유튜브에서 주짓수를 보고 재미있어 보여서 관심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체험권을 끊어봤습니다. 생각보다 정말 힘들었지만 땀을 흘리면서 몸을 움직이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회사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상담을 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가죽 공방과 운동을 하면서 제 마음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출근만 하면 다시 힘들어지는 거예요.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할 때부터 마음이 무거웠고, 출근길에는 불안했습니다. 회사에 도착하면 다시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어요.
퇴근 후에는 조금 괜찮아지는데 출근할 생각만 하면 다시 힘들어지는 걸 보면서, 그때서야 제가 단순히 지친 게 아니라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한 채 너무 오랫동안 나를 몰아붙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결국 휴직계를 냈습니다.
그제야 팀장님이 저를 따로 불러 왜 휴직을 신청했는지 물어보셨어요. 그동안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팀장님은 제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있는 줄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제가 일을 잘해서 여러 프로젝트를 맡겼던 것이고, 앞으로 승진이나 인사고과에도 긍정적으로 반영할 생각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힘들다면 휴직해도 괜찮고, 다시 돌아왔을 때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부서 이동도 도와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동안 저는 ‘왜 나한테만 이렇게 많은 일을 맡기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정받고 싶어서 계속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휴직을 하고 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쉬는 것조차 불안했어요. 그동안 너무 치열하게 일만 해왔으니 갑자기 멈추는 게 오히려 낯설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이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느꼈던 불안, 출근길의 답답함, 회사에 도착했을 때의 무기력함을 겪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훨씬 편해졌어요. 무기력, 불안, 불면, 소화불량 같은 증상들도 전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잘하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제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너무 오래 무시했던 것 같아요. 잘하는 것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였고, 열심히 하는 것과 나를 혹사시키는 것도 전혀 다른 일이더라고요.
지금은 휴직이 끝난 뒤 퇴사를 하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예전처럼 무조건 참고 버티기보다는 이제는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저처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쉬지 못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너무 늦기 전에 한 번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조금 더 일찍 멈췄다면 여기까지 무너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번아웃이 왔다는 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나 자신을 뒤로 미뤄두었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처럼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도 잠시라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요즘 가죽을 만지고 운동을 하면서, 아주 조금씩 다시 저를 찾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