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울증이라고 하면 하루 종일 울거나 이유 없이 슬픈 감정이 계속되는 모습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제게 우울증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슬픔보다 무기력증이었습니다.
원래도 불면증이 있어 잠을 깊이 자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출근은 했고,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해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잠을 못 자서 피곤한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도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웠고, 출근 준비를 하는 것조차 너무 버거웠습니다. 해야 할 일은 머릿속으로 다 알고 있는데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퇴근하면 씻지도 못한 채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보다 하루가 끝나는 날이 많았습니다. 주말에는 알람이 울려도 끄고 다시 누웠고, 정신을 차려보면 오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쉬는 날이면 카페도 가고 산책도 했는데, 그마저도 귀찮았습니다. 그때는 ’내가 왜 이렇게 게을러졌지?’라며 스스로를 탓하기만 했습니다.
무기력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식욕까지 사라졌습니다. 평소에는 달달한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데, 어느 날부터는 바닐라라떼 한 잔도 마시고 싶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느낌도 잘 들지 않았고, 하루 한 끼만 겨우 먹는 날이 계속됐습니다. 억지로 밥을 먹으려 해도 몇 숟갈 먹으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 갔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습니다.
상담을 받으며 지금까지의 증상을 이야기했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 상태를 설명해 주신 뒤 웰부트린 XL을 처방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항우울제를 먹는다는 것이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괜히 약에 의존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혼자 버티는 것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자는 마음으로 복용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효과가 없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복용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이 예전만큼 힘들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도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다시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저를 회복하게 만든 것은 약만이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햇빛을 보며 10분이라도 걷는 습관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산책이라는 말만 들어도 귀찮았습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것조차 큰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표를 아주 작게 잡았습니다. ‘집 앞을 딱 10분만 걷고 오자.’ 그것뿐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정말 10분만 걷고 바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래 걷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햇빛을 보며 짧게 걷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신기하게도 집에만 있을 때보다 몸이 조금씩 가벼워졌습니다. 그 작은 변화가 다음 날 다시 밖으로 나갈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억지로라도 하루 한 끼는 제대로 먹는 것이었습니다.
무기력증이 심할 때는 배가 고프다는 느낌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 기운이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이 먹어야지.“가 아니라 ‘하루 한 끼만큼은 밥과 반찬을 제대로 먹자.’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신기하게도 몸에 에너지가 조금씩 생기니 의욕도 함께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귀찮아서 물만 마시던 제가 어느 날은 “오늘은 따뜻한 국이 먹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좋아하던 달달한 커피도 다시 맛있게 마실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저에게는 ’내가 다시 살아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해준 소중한 변화였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맞는 치료 방법은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웰부트린 XL이 다시 움직일 힘을 만들어 주었고, 햇빛을 보며 걷는 습관과 하루 한 끼를 제대로 먹는 습관이 그 힘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지금도 힘든 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하루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날에는 스스로에게 “10분만 걸어보자.”, “밥 한 끼만 먹어보자.“라고 말합니다. 신기하게도 그 작은 행동 하나가 하루를 바꾸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혹시 이 글을 검색해서 들어오신 분 중에 저처럼 무기력증과 식욕부진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면, 혼자만 버티려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병원을 찾는 것은 결코 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회복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웰부트린 XL 치료와 함께, 햇빛을 보며 10분 걷기, 하루 한 끼 제대로 먹기라는 아주 작은 실천이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작은 변화는 분명 쌓이고 결국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