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다가 작고하신 외할머니를 떠나보낸 뒤, 우리 집에는 늘 가라앉은 무겁고 침울한 공기가 머물렀어요.
할머니를 곁에서 지키며 마지막까지 마음을 쏟았던 친정엄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부쩍 말수가 줄어들고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버리셨어요.
처음에는 큰 슬픔을 겪었으니 당연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우울증 증세는 점점 더 뚜렷해지고 깊어졌어요.
하지만 엄마는 점점 외출도 마다한 채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셨고, 주방 일을 하다가도 멍하니 멈춰 서 있는 날이 늘어갔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내가 살아 뭐 하나 싶다", "엄마 보고 싶다" 같은 말씀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셨고,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거나 새벽녘에 겨우 잠들었다가 이른 아침에 눈을 뜨는 수면 장애까지 겹쳐서 기력이 크게 쇠하셨어요.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며칠 새 체중이 눈에 띄게 빠지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혹시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던 우울증 초기 증상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거 같은데….에이 아니겠지? 아니.. 우울증 맞는거 아닐까 하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더는 미루지 않고 엄마를 모시고 병원 방문을 결심하게 되었죠.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해 상담을 받고 척도 검사를 진행한 결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초기 우울증 진단을 내리셨어요. 오랜 간병 생활 끝에 찾아온 상실감과 슬픔이 만성화되면서 뇌에서 감정과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진 상태라고 하셨어요.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우울증 초기 환자에게 가장 흔하게 처방되는 대표적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계열 항우울제인 렉사프로정 5mg을 처방받아 복용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의사선생님께 렉사프로는 뇌 속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농도를 적정하게 유지해 주어 감정의 기복을 줄이고 불안감과 무기력함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1차 치료제라고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어요.
렉사프로정을 처음 복용하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약간의 부작용을 겪으셨어요. 이는 흔히 겪는 부작용이라고들 하는데요, 복용 초기 일주일 동안은 유독 속이 울렁거리고 가벼운 메스꺼움을 호소하셨고, 낮에도 졸음이 쏟아져 기운이 없다고 하셨어요. 몸이 처지니 엄마는 "약이 독해서 그런가 보다, 그냥 약 끊을까 보다"라며 약 복용을 부담스러워하셨어요.
그래서 담당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 초기 적응 기간에는 용량을 최소한인 5mg으로 유지하고, 위장 장애를 줄이기 위해 식후에 바로 복용하도록 주의를 기울였어요. 보호자인 제가 옆에서 식사 시간과 복용 시간을 꼼꼼히 챙겨드리며 일주일 정도 지나니 다행히 울렁거림과 나른함 같은 초기 부작용은 서서히 사라지고 몸이 렉사프로정에 적응해 나갔어요.
렉사프로정을 꾸준히 복용한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눈에 띄는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극심하게 마음을 짓누르던 불안감과 무기력함의 농도가 조금씩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하셨어요.
예전에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워하셨는데, 약을 복용하고 나서는 아침에 가볍게 거실을 돌아다니시거나 실내 자전거도 타시고 가벼운 집안일을 시작할 정도로 일상의 에너지가 조금씩 돌아왔어요.
곧 애들을 봐주시기도 하면서 일상을 회복해가셨어요. 불규칙하던 수면 패턴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 밤에 깊이 잠드는 날이 늘어났어요. 슬픈 생각이 밀려올 때 예전처럼 바닥으로 끝없이 내려앉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추스릴 힘이 생겼다는 점이 가장 다행이었어요.
약물 치료와 더불어 엄마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의사선생님의 강권으로 시작한 규칙적인 햇볕 쬐기와 가벼운 산책이었어요. 오전 시간대에 집 근처 공원을 30분씩 걷고 돌아오는 습관을 들였는데, 몸을 움직이고 햇빛을 받으니 밤에 잠도 더 깊이 잘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가족을 떠나보낸 상실감으로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둔 분들이 있다면, 마음의 병을 혼자만의 의지로 이겨내려고 하기보다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어요.
약을 먹는다고 해서 슬픔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힘과 균형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엄마가 본인의 엄마인 할머니를 잃은 슬픔이 너무 크듯이, 나도 내 엄마를 잃게 되면 상실감이 말로 다 못할 만큼 클 거라는 걸 울엄마가 알아줬으면 해요.
그러니 건강하게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줬으면 해요.
혹시 지금 비슷한 무기력함이나 우울감으로 검색을 하다가 이 글을 보게 되었다면, 혼자서 마음을 닫아두지 마시고 꼭 전문가의 진료와 도움을 받아보셨으면 좋겠어요.
적절한 치료와 주변의 작은 관심만으로도 일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충분히 찾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