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았어요

육아를 하면서 어린 시절 생각을 자주 해요. 아이를 재우느라 같이 누워 멍하니 있는 시간이면 왠지 슬퍼져요.

 

제가 유치원에 다닐 쯤 부터 부모님과는 떨어져 살게 됐어요. 할머니가 저희 남매를 키우셨고요. 할머니는 책임감 있고 좋은 분이시지만 돌볼사람도 많았고 의지 할 곳 없는 마음에 항상 날이 서 있는 편이셨어요. 방학때만 부모님과 함께 지낼 수 있었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내내 저는 아빠 엄마가 돌아와서 같이 살 날만 손 꼽아 기다렸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부모님이 하시던 일이 잘 안 되면서 소식이 뜸해지기 시작했어요.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집안 형편도 더 안 좋아져서 늘 강해보이던 할머니가 우시는 걸 봤어요.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전화를 마친 할머니가 두 분이 이혼하셨다는 말을 툭 던지듯 하셨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중학교때부터는 제 방이 생겼는데 매일 틀어박혀 게임하고 채팅하고 인터넷만 하며 지내고 학교에서는 잠만 자곤 했어요. 어릴때부터 공부도 곧잘 하고 똑똑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이때부터 손 놓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 없이 보낸게 아직도 한심하고 아쉽게 느껴져요. 

 

그리고 초등학교때부터 학교가 어쩐지 정글처럼 느껴졌어요. 아주 못된 친구들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친구들과 관계 맺는게 쉽지 않고 잘 보이고만 싶었던 것 같아요. 늘 제 기준 잘 보이고 싶은 친구와 만만한 친구만 있겄던 것 같고 저의 인간관계 맺는 법에 뭔가 잘못된게 있었던 것 같아요. 자라면서는 그런걸 티내지 않으려고 조심하지만 그런 마음이 늘 느껴져서 왜 이러는건지 답답하고 속상합니다. 점점 더 열등감 아니면 우월감을 느끼는 방식으로만 향하는 것 같아요. 좀 더 단순하게 인간관계를 맺고싶은데 잘 안 되니 이제는 사람 사귀기가 꺼려져요. 

 

결혼하면서 하던 일을 관두게 됐는데 그 이후로 왠지 모를 우울감이 더 짙어져요. 그 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일하고 사람들 만나고 왁자지껄 지낼때는 잘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또 결혼 후 외국에서 살면서 만나서 수다 떨 친구들도 없고 거의 집에서만 지내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일을 하려니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하는데 뭘 할지도 모르겠고 자신도 없고, 남편과 갈등도 많았고요. 다행히 아이를 낳은 뒤로는 행복감이 자주 들어요. 

 

저는 아주 어릴때부터 육아에 대한 욕심 같은게 있었어요. 거창한건 아니고 내 아이가 생긴다면 항상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줘야지. 이야기 할 곳이, 돌아갈 곳이 되어줘야지. 했던 것 같아요. 내가 받고 싶었던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치유받는 걸 느낍니다. 

 

고등락교 졸업하던 쯤 아빠가 돌아오셨고, 엄마와도 따로 교류하기 시작했어요. 대학 졸업하고서 엄마와 새아빠와 잠깐 같이 살았던 적이 있어요. 십여년만에 같이 살게된 모녀는 수도 없이 싸웠던 것 같습니다. 어느날 다같이 술 마시는 자리에서 엄마가 저를 가리키며 얘랑 나는 정이 없다는 말에 제가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냥 너무 슬펐어요. 구직 중이던 저에게 새아빠 보기 부끄럽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따로 나와서 살며 아예 연락을 끊었었습니다. 몇년 뒤 다시 연락하면서는 엄마도 조심했고 떨어져 살며 크게 싸울일 없이 지냈어요. 그러다 제가 사정이 생겨 엄마와 다시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저를 간섭하고 말실수에 선넘는 행동들을 하는 통에 스트레스 받다가 결혼하며 나오게 됐는데요. 

 

그런 시간들을 거쳐서인지 엄마가 너무 밉습니다. 어릴적부터 쌓인 보상심리인지 엄마가 분명 저에게 잘 해 준 것들도 있는데 자꾸 원망하는 마음이 들어요. 아이 키우면서 더 그래요. 엄마도 그러고싶어서 그런건 아니겠지만 왜 그리 무지했는지 어떻게 지금까지도 자기만 생각하는지. 혼자 생각하다가 화가 날 때가 많습니다. 외모 코멘트 한 것도 있어서 한동안은 거울볼때마다 생각나서 매일 울화가 치밀기도 했어요. 그나마 아이 보느라 바쁠때는 그런 생각들이 안 나서 아이에게 감사합니다. 엄마에게 이야기 꺼내고싶지도 않아요. 얘기 꺼내서 사과 받거나 제대로 된 응답을 들은적이 없어서요. 말 섞고 싶지도 않고.. 아빠에게도 솔직히 한심한 마음만 들고.. 할머니는 불쌍하고 그렇네요. 제가 가족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이렇다는것도 슬프고요. 

 

이런 마음들이 나중에 육아하다가 아이와의 관계에 걸림돌이 될까 걱정이 됩니다. 지금 이렇게 혼자 스트레스 받고 우울해지는것도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돼요. 다 내려놓고 평온한 마음으로 육아하고 싶은데 마음이 너무 어지러워서 어딘가에 얘기하고 털어내고 싶었네요. 어릴때부터 오랫동안 꼬여있던 것들이 많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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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 익명3
    어린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며 기다리고 가족의 어려움까지 감당해야 했던 기억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떠오르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엄마가 밉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복잡한 감정도 괜찮아요. 
    상처받은 기억과 고마운 기억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내 상처가 아이에게 이어지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는 마음 자체가 아이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 같아요. 
    완벽한 엄마가 될 필요는 없어요. 
    힘든 날이 있더라도 다시 안아주고 관계를 회복해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너무 많은 걸 혼자 견뎌오신 것 같아요. 
    이제는 내가 왜 이러지?보다 그동안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하고 자신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 익명2
    어릴 적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며 간절히 재회를 바랐지만 이혼 소식을 들어야 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어머니로부터 정이 없다거나 부끄럽다는 모진 말로 깊은 상처를 받으셨으니 엄마가 미운 건 너무나도 당연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받고 싶었던 방식대로 아이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며 치유를 경험하고 계신다니 정말 다행이고 대단하셔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결핍 때문에 내가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글쓴이님은 이미 내 상처를 인지하고 아이에게는 다른 환경을 주려고 노력하고 계시기 때문에, 부모의 무지했던 육아 방식이 그대로 대물림될 가능성은 낮아보이네요. 과거의 부모와 지금의 나를 분리하는 연습이 도움이 된답니다.
    
    오랫동안 꼬여있던 마음의 실타래를 한 번에 다 내려놓으려고 조급해하지 않으셔요 돼요. 이미 아이에게 돌아갈 곳이 되어주고 싶다고 다짐하신 것만으로도 글쓴이님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엄마이니까요!
  • 익명1
    아이를 키우면서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상처가 다시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당시의 자신을 지금의 기준으로 한심하다고 평가하기보다, 그때의 내가 버티기 위해 할 수 있었던 방식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사람을 열등감이나 우월감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도 어린 시절의 관계 경험에서 생긴 방어적인 방식일 수 있고 지금부터는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하기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관계 한두 개부터 천천히 만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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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니엄마
    얼마나 오랜 시간 마음속에 많은 감정을 품고 살아오셨을지 글만으로도 느껴져 마음이 먹먹합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아이를 키우며 다시 떠오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아이에게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미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것 같아요. 모든 감정을 한꺼번에 내려놓으려 하지 마시고, 필요하다면 상담을 통해 천천히 마음을 돌보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