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이 커뮤니티를 알게 되고 다른 분들이 남겨주신 글들을 밤새워 읽으며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만 이렇게 유별나게 아픈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동시에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이 무서운 병과 얼마나 외롭게 싸우고 계실까 하는 안타까움이 교차하더군요. 마침 게시판 메인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 저 역시 그 길고 어두웠던 터널의 한가운데를 지나왔기에 제 경험이 누군가에게 작은 등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긴 글을 시작해 봅니다.
예전의 저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는 참 씩씩하고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를 두고 늘 에너지가 넘치고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여장부 같다고 불렀고 저 스스로도 제 건강과 체력 하나만큼은 자부하며 살아왔습니다. 남들에게 기대기보다는 제가 짊어지고 해결하는 것이 편했고 아프면 하루 푹 자고 일어나면 낫는다는 무식한 믿음으로 평생을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제게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첫 번째 공황 발작이 찾아온 것은 정말이지 평범하고도 화창했던 어느 봄날의 오후였습니다. 동네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고르며 계산대 줄을 서 있었는데 갑자기 발밑의 바닥이 푹 꺼지는 것 같은 지독한 어지럼증이 덮쳐왔습니다. 순식간에 시야가 터널처럼 좁아지면서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더니 심장이 터질 것처럼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헐떡거리는데 이대로 숨이 넘어가서 객사할 수도 있겠다는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마트 직원의 도움으로 일일구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도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그날의 끔찍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도착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심전도를 찍고 피를 뽑으며 온갖 난리를 쳤음에도 돌아온 결과는 너무나도 허무하게도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과로한 것 같으니 푹 쉬라는 말과 함께 신경안정제 주사 한 대를 놔주고는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제 삶은 완전히 백팔십도 뒤집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언제 또 그 끔찍한 숨막힘과 죽음의 공포가 덮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불안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심장에 큰 병이 생겼거나 머리 쪽에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유명하다는 심장내과를 찾아가 이십사시간 동안 심전도 기계를 몸에 달고 다니는 검사도 해보고 런닝머신 위를 달리는 운동부하 검사까지 샅샅이 받아보았습니다. 심지어 머리에 종양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거금을 들여 뇌 정밀 검사까지 받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심리적인 요인인 것 같다는 애매한 대답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동안 제 몸과 마음은 처참하게 망가져 갔습니다. 혼자서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하게 되었고 꽉 막힌 차 안에 갇히는 것이 두려워 대중교통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몸은 당장 죽을 것 같이 아파서 비명을 지르는데 검사 결과는 자꾸만 정상이라고 하니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가족들의 시선에 억울하고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내 증상이 도대체 무슨 병인지 검색하는 것이 유일한 일과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발견하게 되었고 화면에 떠 있는 글쓰기 안내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내용들을 적어야 할지 자세하게 나와 있는 가이드를 찬찬히 살펴보며 저의 지난 끔찍했던 시간들을 조심스럽게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자가점검을 해보라는 안내를 보고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화면에 있는 질문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습니다. 정말이지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과 몸의 고통을 그대로 활자로 옮겨 놓은 것만 같아서 문항들을 읽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습니다.
질문들을 읽는 내내 제 심장을 콕콕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내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지 문항에 체크를 하면서도 두려움과 놀라움이 섞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답변을 마치고 화면에 나타난 제 점수를 확인하는 순간 저는 한참 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제 점수는 무려 이십일점으로 공황 관련 신호가 상당한 수준이라는 붉은색 경고 문구가 선명하게 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전체 참여자 중에서 상위 삼퍼센트에 속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객관적인 수치로 마주하고 나니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 찾아왔습니다. 평생을 강인하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던 제가 사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마침내 인정하게 된 뼈아픈 순간이었습니다.
그 결과를 보고 나서야 저는 제 발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정신과에 기록이 남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고 남들이 미친 사람 취급을 할까 봐 병원 문 앞을 세 번이나 서성이다가 겨우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아 그동안의 억울함과 공포를 쏟아내며 오열했을 때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휴지 한 장과 따뜻한 위로의 말은 제 인생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불균형이 생겨서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가짜 경보기를 마구 울려대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 성격이 유별나서도 아니고 의지가 약해서도 아니며 그저 몸에 생긴 질환일 뿐이라는 그 말씀에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처방받아 매일 정해진 시간에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약을 챙겨 먹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약물 치료의 시작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처음 약을 먹기 시작한 일주일 동안은 속이 심하게 울렁거리고 하루 종일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해서 차라리 약을 끊어버릴까 수십 번도 더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명현현상처럼 초기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절대 자의로 약을 중단하지 말라던 의사 선생님의 당부를 떠올리며 꾹 참고 견뎌냈습니다.
그렇게 이 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정말 기적처럼 몸의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시시때때로 목을 조여오던 답답함이 서서히 옅어지고 이유 없이 쿵쾅거리던 심장이 편안한 제 박동을 되찾아갔습니다. 몸의 증상이 가라앉으니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생각과 예기불안도 함께 줄어들면서 비로소 집 밖으로 나설 수 있는 작은 용기가 생겨났습니다.
약을 먹으면서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완벽주의와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것입니다. 집안일이 조금 쌓여 있어도 모른 척하고 가족들에게도 당당하게 힘들다고 말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내 몸이 아프면 세상의 모든 것이 소용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깨닫게 된 셈입니다.
식습관과 생활 패턴도 완전히 바꾸어 나갔습니다. 평생을 입에 달고 살았던 진한 믹스 커피와 작별하고 대신 따뜻하고 향긋한 카모마일 차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카페인이 공황장애 환자에게는 불을 지피는 땔감과도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나서는 커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저녁 해가 질 무렵이면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동네 하천 길을 따라 한 시간씩 땀이 날 정도로 걷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걷다가 쓰러질까 봐 두려워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나갔지만 이제는 온전히 저 혼자만의 산책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자연의 냄새를 맡고 바람을 느끼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비워지고 나쁜 생각들이 땀과 함께 배출되는 기분이 듭니다.
물론 지금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몸이 피곤한 날에는 어김없이 가슴이 뻐근해지고 숨이 가빠오는 불청객이 찾아오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그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압도당하여 응급실로 달려가는 대신 비상약을 혀 밑에 녹여 먹으며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 불안감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며 곧 지나갈 거대한 파도일 뿐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온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공황장애라는 무서운 병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끔찍한 고난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제 자신을 가장 깊이 들여다보고 사랑하게 만들어준 값진 선물이기도 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챙기지 못했던 제 내면의 상처들을 보듬어주고 이제는 남이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요. 병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제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쥐게 된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가끔은 실소가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끔찍한 신체 증상들로 인해 응급실과 여러 병원들을 전전하며 홀로 절망의 눈물을 흘리고 계실 분들이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신과에 간다는 것이 마치 내 인생의 큰 오점을 남기는 것 같아 두려워서 병원 문 앞을 서성이고만 계신 분들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여러분 그것은 절대 여러분이 유별나서도 나약해서도 아니며 그저 오랜 시간 누적된 마음의 감기가 몸으로 터져 나온 것뿐입니다.
부디 저처럼 먼 길을 돌아가며 고통의 시간을 연장하지 마시고 자가점검을 통해 객관적인 상태를 확인하셨다면 하루라도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혼자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깊고 어두운 늪에서도 누군가 내밀어주는 손을 잡으면 반드시 다시 땅 위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 약물 치료를 두려워하지 마시고 내 몸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그 간절한 비명 소리에 따뜻하게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불안감과 싸우며 하루를 버텨내고 계신 모든 분들께 진심 어린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장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고 영원히 이 터널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이 드시겠지만 견디다 보면 반드시 평온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다시 찾아옵니다. 저의 이 투박하고 긴 이야기가 지금 깊은 어둠 속에서 헤매고 계신 단 한 분에게라도 작은 용기의 씨앗이 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