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극복후기 - 현생으로 안전하게 돌아온 나만의 방법
새벽이면 스마트폰의 아침 기상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가슴 한구석이 철렁하듯 내려앉으며 눈이 떠지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침대 머리맡에 쭈그려 앉아 얕은 한숨을 내쉬고 씻고 현관문을 열고 나서기 까지의 그 짧은 순간마저 숨이 가빠 왔고, 주차장에 세워둔 내 차의 문을 열고 시동을 켜는 순간부터 이미 온몸의 기력이 바닥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사무실 도착해서 책상에 앉아 모니터 화면을 마주하면 멍하니 깜빡이는 커서처럼 내 머릿속도 하얗게 멈춰 버려 간단한 보고서 한 장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눈앞의 업무를 당장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무기력증이 온 몸을 지배했고, 이대로 다 때려치우게 싶다는 생각도 스쳐 지나가며 스스로를 놀라게 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찾아온 근본적인 원인은 직장이라는 공간에 깊게 뿌리내린 답답하고 소모적인 관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매사에 트집을 잡고 사사로운 일로 팀원들의 기를 죽이는 상사와 호흡을 맞추어야 했습니다. 내가 낸 아이디어나 공들여 진행한 업무 성과를 은근히 깎아내리면서도, 업무에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부하직원에게 떠넘기는 그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은 하루하루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았습니다. 상사의 날 선 지적이나 차가운 음성 앞에서는 어김없이 심장이 빠르게 뛰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고, 거래처에 발송할 메일 한 통을 몇 번이나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과연 이 직장에서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애초에 사회적 역량이 부족한 무능력한 인간인지 매 순간 자문하며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습니다.
업무 시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시달리다 보면, 오전이 지나기도 전에 이미 영혼이 탈탈 털린 듯한 극심한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동료들과 가볍게 나누는 농담이나 일상적인 대화조차 괴롭게 느껴져 사내 식당 구석에 혼자 가쁜 숨을 몰래 삼켜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내가 왜 이토록 좁은 사무실 안에서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버텨야 하는지 끊임없이 회의감이 밀려왔고, 모니터 화면에 비친 지쳐 퀭한 내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남모를 서글픔이 치솟아 화장실 칸에 숨어 눈물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상사의 질책에 대한 만성적인 두려움이 맞물려, 매 순간 목구멍까지 숨이 차오르는 듯한 질식감을 안고 살았습니다. 주말이 되면 살기 위해 잠을 자지만, 눈을 떠도 피로가 전혀 풀리지 않은 채 월요일을 맞이해야 하는 현실이 지독한 악몽처럼 느껴졌습니다.
퇴근길이 되면 이 모든 피로감과 억눌린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회사 건물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 내 차에 올라타는 그 짧은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은 채 문을 닫고 한참 동안 시동을 켜지 못하고 운전대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낮 시간 동안 상사에게 들었던 모욕적인 언행이나 풀리지 않은 업무의 압박이 차 안이라는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고,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와 핸들에 이마를 기댄 채 한참을 울컥해 하곤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밤공기를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생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특히 꽉 막힌 퇴근길 도로 위에서 앞차량들의 빨간 브레이크등 불빛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면, 내 인생 역시 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멈춰 서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처량한 신세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상쾌한 음악조차 이미 쓰라린 속을 더욱 메쓰껍게 만들어 곧바로 전원을 꺼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바로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핸들을 붙잡은 채 한참 동안 어둠 속에서 한숨을 쉬며 또 다른 내일 아침이 오는 것을 지독하게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밤마다 점점 악화된 불면증 때문에 침대에 누워 뒤척이며 애써 눈을 감아보았지만, 머릿속은 온통 회사 일과 상사의 얼굴로 가득 차 단 1시간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고통이 내 멘탈이 약하고 일 처리를 미숙하게 한 탓이라고만 생각하며 스스로를 매몰차게 채찍질했습니다. 남들은 다 버텨내는 회사 생활을 나만 유독 유난스럽게 힘들어한다는 바보같은 생각이 날로 커져 갔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야근과 주말까지 침범하는 업무적 걱정 속에서 몸과 마음의 체력은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방전되어 있었습니다. 주변의 기대치를 완벽하게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주말이 되고 온종일 침대에 누워 시체처럼 잠을 자도 월요일 아침만 되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몸을 일으키느라 진땀을 흘렸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조차도 에너지 방전으로 인해 모두 거절하며 스스로를 세상과 완전히 단절시켰습니다.
이대로는 정말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일상을 지켜내기 위한 나름의 방어막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번아웃 극복을 위해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퇴근길 자가용 안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나만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주차장 차단기를 통과하는 순간, 그날 하루 동안 겪었던 부당한 일들과 상사의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다짐했습니다. 차 안에서는 뉴스와 같이 업무 관련 생각을 연상하게 하는 것들 대신 잔잔하고 편안한 연주곡을 틀어놓거나, 창문을 살짝 내려 밤바람을 맞으며 머릿속을 선선하게 환기했습니다. 다른 누군가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그 편안한 공간은, 번아웃에 무너진 나를 조금이나마 다시 붙잡아주는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더불어 물리적인 공간을 벗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퇴근 후의 습관을 완전히 새롭게 설계했습니다. 집으로 곧장 들어가기 아쉬운 날에는 근처 조용한 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잠시나마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단절의 시간이 하루 동안 헝클어진 마음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주는 기분 좋은 해방구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살았던 나 자신을 되찾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귀가한 이후에는 직장에서 있었던 스트레스를 밤새 곱씹지 않으려 좋아하는 무협지를 읽거나 집 근처 산책길을 걸었습니다. 스마크폰은 멀리 두고 누워 명상을 시도하기도 했고, 항상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하루 동안 굳어있던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었습니다. 트로스트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답답한 심정을 여러번 적어 내려가며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글에 공감하기도 했고, 타인의 무례한 태도에 내 소중한 감정을 더 이상 소모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정신건강의학과 문을 두드려 상담을 받고 일시적인 수면 보조 치료를 병행하며, 무너졌던 신체 리듬을 서서히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러한 소소한 일상 회복의 과정 속에서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마음들이 점차 굳은 확신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치 않은 변화일지 몰라도, 매일 저녁 나를 위한 작은 위로와 휴식을 선물하는 행위 자체가 무너진 자존감을 되찾아주는 가장 강력한 해결책 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일방적인 비난에 휘둘리던 과거의 나를 떠나보내고, 온전히 내 패턴에 맞춰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친 것에 집중하고 만족하는 태도를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의 평가가 곧 나의 존재 가치를 결정할 수 없으며, 나는 직장이라는 조직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단단한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혹독했던 그 시간은 내 삶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꼭 거쳐야 했던 개인정비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상사의 작은 눈빛 하나에도 며칠 동안 마음고생을 하며 전전긍긍했겠지만, 이제는 퇴근 후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회사에서의 일들은 온전히 그곳에 두고 오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퇴근 후의 내 삶을 지켜내는 것이 결과적으로 다음 날 다시 출근해 당당하게 버텨낼 수 있는 진짜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사의 불합리한 태도에 무리하게 대적하기보다 내 마음의 에너지를 뺏기지 않는 방어벽을 세우는 것이 훨씬 현명한 대처였다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은 모를 번아웃과 싸우며 하루를 버텨내고 계신 분들께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느끼는 지독한 무기력함과 공허함은 결코 본인이 부족하거나 나약해서 겪는 일이 아닙니다. 그동안 누구보다 성실하게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마음의 연료가 다 닳아 없어진 것뿐이니, 너무 자신을 채찍질하거나 다그치지 마십시오. 오늘 하루도 그 무거운 자리를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버텨내며 살아남은 자신을 세상 누구보다 먼저 따뜻하게 토닥여주신다면, 번아웃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다시 눈부신 빛을 마주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회사의 성과나 타인의 평가로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훨씬 크고 소중하며, 언젠가 이 시기를 지나며 우리는 한층 더 깊고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