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아오면서 청춘의 한가운데서 취업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공포였고,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 때문에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곤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이것이 단순히 예민한 취업준비생의 유난스러움이나 지나가는 슬럼프라고 가볍게 치부했습니다.
저는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요, 당시에 가끔 영화관에 가서 일부러 한가운데 좌석에 앉아 스크린을 몰입해서 보다가도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이 심하게 가빠지는 증상이 찾아왔습니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 카페인 중독인가 생각 했었습니다.
그리고 편한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조차 점차 하나 둘 피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좁은 방 안에 밀어 넣기 시작했습니다. 밤마다 포털 야후, 네이버 검색창에 살고 싶지 않다는 극단적인 문장을 타자치며 날을 지새우던 그때의 시간은, 지금 돌아보면 명백한 우울증의 터널속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거나 병원을 찾아갈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방구석에 홀로 웅크린채 엎드려 스스로 마음의 병을 키웠습니다.
특히 당시에 취업 면접에서 연달아 낙방 통보를 받던 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력서를 몇십 군데나 넣고 합격 발표일만 기다리며 밤낮으로 새로고침을 누르던 그 지독한 긴장감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불합격 글자조차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가는 길마저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피해망상에 시달려 모자챙을 푹 눌러쓰고 고개를 숙인 채 걸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부모님께는 합격 발표가 아직 안 났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방 문을 걸어 잠근 채 몰래 방안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담배나 꿈뻑거리며 끝없이 침전하던 그 비참했던 날들,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 건물 화장실 거울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심장을 부여잡으며 울렁증에 올라오는 구토를 참아내야 했던 기억들은 지금도 제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친한 친구들이 저마다 좋은 자리에 취업 소식을 전할 때마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는커녕 연락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창문 커튼을 굳게 닫은 채 며칠 동안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지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도와줄 사람도 없었고 청년의 우울함을 사회적으로 보듬어주지 않던 시절이라, 그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혼자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은 합격 연락을 기대하며 손을 떨며 피씨방 모니터로 결과를 확인했던 기억도 납니다. 당시 집에 일시적으로 인터넷이 되지않던 때였는데, 중요한 면접 결과를 받기 위해 동네 피씨방에 가서 초조하게 발표시각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또 한 번의 불합격 통지였습니다.
남들은 게임하느라 시끄러운 피씨방 한가운데 의자에 푹 꺼져 앉아 오지도 않는 버스 막차를 기다리듯 하염없이 울음을 삼켰던 그 쓸쓸함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습니다. 또한 도서관 자습실 구석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다가도, 주변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나 볼펜이나 연필심이 종이에 닿는 소리조차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서 숨이 막혀 밖으로 도망치듯 뛰쳐나왔던 일도 허다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커녕 당장 한달뒤의 계획도 세울수 없고 아예 내일 아침이 오는 것 자체가 무섭게 느껴져 암막 커튼을 쳐둔 방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누워 지내기도 했습니다.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 어찌저찌 괜찮은 회사로 취업에 성공했고, 한 명의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해내며 오랜 시간 성실하게 버텨왔습니다. 직장 생활을 한 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일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고, 주변의 신뢰도 얻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직장에서 잘 안 맞는 상사를 만나면서 평화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업무 방식이 깐깐한 사람일 뿐이라고 넘기려 했으나, 점차 제 판단력을 깎아내리고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사사로운 트집과 비난 앞에 서면 또다시 과거 취업 준비 시절처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머릿속이 하얗게 굳어버렸던 몸의 습관이 되살아났습니다. 거래처에 보내는 간단한 이메일 하나를 쓰는 데도 수십 번을 고치느라 업무 효율이 떨어졌고, 주말 오후만 되면 다음 날 출근 스트레스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타인의 공격에 자존감은 점차 깎여나가고 의욕은 사라졌으며, 고작 대인관계 문제 때문에 이토록 초라해진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우울증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내 상태가 반응성 우울증으로 번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여러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심리적 압박이 극에 달해 불면증으로 번졌지요. 불면증은 지금은 다행히 약물치료를 통해 좋아졌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번에 트로스트에서 우울증 자가점검을 실시해 보았습니다. 검사 결과는 위와 같이 총점 11점으로 가벼운 우울 상태라는 수치가 나왔으며, 최근 누적된 스트레스와 피로로 인해 우울감의 초기 신호가 감지되는 구간이라는 분석을 마주했습니다.
전체 참여자 1,656,641명 중 상위 85퍼센트에 해당하는 위치였으며, 40대 남성 평균과 비교하면 11점 낮은 수치였습니다. 이와 함께 진행한 마음 환기 상태 점검에서는 특정 부문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에너지와 기력이 고르게 소진된 마음 환기 필요의 상태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2,100명의 참여자 중 상위 30퍼센트 구간에 속하며, 40대 남성 집단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유형이라는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앞서 말한 바 있듯이, 저는 극심한 수면 장애로 인해 한때 병원 진료를 받기도 했으나, 그때는 당장의 불면증을 잠재우기 위한 수면제 처방에 그쳤고 본격적인 우울증 약물 치료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주치의 역시 제 상태를 우울증으로 진입할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완전한 중증 우울증으로 진단하지는 않았기에 그랬습니다.
결국 저는 그 고통의 원인이 내 탓이 아니라 외부 요인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지하는 데서 회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약물의 힘을 빌리는 대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어벽을 세웠습니다. 퇴근길에는 회사 안에서의 일과 퇴근 후의 나를 엄격하게 분리하려고 애썼습니다. 집에 돌아와 직장에서 겪은 부당한 일들을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대신,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복잡한 머리를 식혔습니다. 날이 흐리든 맑든 저녁 식사 후에는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와 동네 공원을 걸으며 머리를 식혔습니다.
최근에는 이 곳 트로스트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고 다른 이들의 글을 읽으며 내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타인의 무례한 언행에 내 감정을 통째로 저당 잡히지 않도록 마음의 방어벽을 쌓는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그런 지옥 같던 날들과 비교하면 지금의 저는 눈부시게 많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상사의 날 선 말 한마디에 온종일 멘탈이 흔들리고 밤잠을 설쳤겠지만, 이제는 저녁 시간이 되면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그곳의 일들은 제 인격과 완전히 무관하다는 선을 확실하게 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공격성에 내가 닳아 없어지게 만들지 않는 방어력이 생겼고, 나를 회사에서의 평가보다 온전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내 가치를 더 무겁게 두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살아남으려 애쓰다 보이지 않는 폭력이나 압박 속에서 남모를 우울감을 삭이고 있을 분들에게 담담하게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지금 느끼는 극심한 무기력과 답답함은 자신이 나약하거나 모자라서 겪는 형벌이 아닙니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다가 잠시 마음의 체력이 바닥난 것뿐입니다. 누구나 삶의 고비마다 감당하기 어렵고 버거운 무게추를 떠안고 휘청거릴 때가 있으며, 주저앉고 싶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것은 인생의 낙오가 아니라 잠시 멈추어 숨쉬어가라는 신호가 아닐까요?
시간이 많이 지나 뒤돌아보면 그 괴로운 시기는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때가 아니라, 단지 스쳐 지나가는 어두운 터널속의 한 구간에 불과합니다. 당장 눈앞이 캄캄해서 빠져나갈 구멍이 한치도 안 보여도 그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매일 미세하지만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며 너무 다그치지 마십시오. 타인이 어떻게 평가하든 오늘 하루도 그 버거운 자리를 지지 않고 버텨내며 살아남은 자신을, 세상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가 알아주고 토닥여주어야 합니다. 제가 직접 바닥을 치며 눈물을 콸콸 쏟으며 겪어보았기에 감히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자가점검에서 저랑 비슷하게 가벼운 우울이나 마음 환기 필요 같은 결과표를 받는다고 해서 겁을 먹거나 과도하게 불안해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안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내 마음의 현주소를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하고 잠시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전진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질기고 굳센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곧 깨닫게 될 것이며, 우울함의 터널 끝에서 눈부시게 환한 빛을 다시 마주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세차게 부는 우울함의 폭풍에 잠시 흔들릴더라도 결코 견고한 뿌리까지는 뽑히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