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저는 제가 왜 이렇게 무기력해졌는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알고 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출근은 해야 하니까 어떻게든 준비해서 나가는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씻는 것조차 귀찮아서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보다가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주말도 다르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쉬는 날이면 카페도 가고 산책도 하고 나름대로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것도 다 귀찮았습니다. 알람을 끄고 다시 누워 있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나는 날도 있었고요.
처음에는 그냥 제가 게을러진 줄 알았습니다. 원래 불면증이 있어서 잠을 잘 못 자니까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쉬어도 몸이 무거운 느낌이 없어지지 않았고, 점점 식욕까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달달한 커피도 별로 생각나지 않았고, 배가 고픈 느낌도 잘 들지 않았어요. 하루 한 끼를 겨우 먹는 날도 있었습니다.
가장 답답했던 건 머리로는 해야 할 일을 다 알고 있다는 거였어요. ‘씻어야 하는데’, ‘밥 먹어야 하는데’, ‘이것도 해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또 스스로를 탓했어요. 왜 이것 하나 제대로 못하나 싶어서요.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습니다. 약을 처방받기 전에는 종합심리검사도 받아봤는데, 검사 비용이 25만 원이었어요. 상담은 1회 3만 원이었고요.
정신과 진료비가 많이 비쌀 거라고 생각해서 사실 처음에는 비용도 조금 걱정했는데, 제가 다닌 병원 기준으로는 초진 때 진료비와 약값을 합쳐 약 1만 5천 원 정도 나왔고, 재진부터는 2만 원 정도 들었습니다.
상담하면서 그동안 제가 겪었던 무기력이나 수면 문제, 식욕 저하 등에 대해 이야기했고, 선생님과 상의한 뒤 웰부트린 XL 150mg을 하루 한 정씩 6월 4주차부터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확 달라진 건 아니었어요. ‘이게 정말 도움이 되고 있는 걸까?’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복용하다 보니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아주 조금 덜 힘들어졌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도 조금씩 줄어들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씻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오늘은 이것 하나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다시 생겼습니다.
그렇게 치료를 이어가던 중 이번 이벤트에서 우울증 유형 검사를 무료로 해볼 수 있어서 저도 한번 해봤습니다.
결과를 보고 조금 놀랐어요.
사회·역할기능 + 생리·신체활성 + 인지 기능 정지
‘기능 정지 번아웃’
제가 받은 결과는 이 유형이었고, 전체 참여자 2,110명 중 상위 2% 구간에 위치한다고 나왔습니다.
결과 설명을 읽어보는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어요.
몸과 생각, 일상생활이라는 삶의 세 가지 큰 기둥이 동시에 흔들리는 것 같다는 설명부터, 잠과 식욕, 에너지의 리듬이 깨지고 집중하거나 판단하기 어려워지면서 결국 일상생활까지 굴러가지 않는 상태라는 내용까지 읽는데 예전 제 모습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특히 ‘기능 정지’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제가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남들은 출근하고 밥 먹고 집안일도 하는데 나는 왜 이것 하나도 제대로 못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보고 나니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때의 제가 게을렀던 게 아니라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서 정말 아무것도 할 힘이 없었던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때도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가장 먼저 했던 건 햇빛을 보면서 10분이라도 걷는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러워서 ‘집 앞에 10분만 나갔다 오자’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10분만 걷고 들어온 날도 많았어요.
식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입맛이 없다고 아예 굶기보다는 하루 한 끼만큼은 제대로 먹자고 정했습니다. 많이 먹는 것보다 밥과 반찬을 챙겨 먹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런 작은 행동을 하나씩 다시 하다 보니 조금씩 생활의 리듬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힘든 날은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조건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르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오늘 아무것도 못 했다고 생각되는 날에는 밥 한 끼라도 챙겨 먹고, 10분이라도 걸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혹시 저처럼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몸이 움직이지 않고, 예전에는 좋아했던 일까지 귀찮아져서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탓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너무 오래 혼자 버티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가점검이 진단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한번 돌아보는 계기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혼자 참고 버티다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조금씩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가 버거웠는데, 지금은 작은 것 하나라도 다시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습니다.
저처럼 한때 ‘내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탓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어쩌면 의지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