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망설여질 만큼, 가슴속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가 참으로 깊고도 아프게 느껴집니다. 😥 국민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그 작은 손으로 남동생들의 실내화까지 빨고, 외할아버지의 무거운 바지를 손빨래하며 칭찬 한마디에 마음을 다잡았던 그 어린 소녀가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 스무 살이 되어서야 마주한 '계모'라는 진실 앞에서도 원망보다는 순응을 선택하며 월급을 고스란히 갖다 바쳤던 그 시간은, 아마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간절한 몸부림이었을 거예요. ✨ 작성자님은 정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 "나 할 만큼 했어"라는 그 짧은 한마디에 담긴 50여 년의 희생과 인내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네요. 🕊️ 아버지 사후에 부쩍 의지하며 쏟아낸 어머니의 푸념을 다 받아내던 중 터져 나온 화는 결코 '대든 것'이 아니라, 평생을 참고 살아온 작성자님의 영혼이 보내는 마지막 비명이자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였을 것입니다. ⭐ 먼저 연락하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서운함을 느끼시겠지만, 동시에 이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여 머리가 많이 아프시겠어요. 🏰 딸아이의 결혼이라는 큰 경사를 앞두고 연락 여부를 고민하시는 건, 작성자님이 여전히 책임감 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 만약 연락을 드린다면 그것은 과거의 상처를 다 용서해서가 아니라, 작성자님 스스로의 마음이 나중에 후회로 남지 않게 하려는 '나를 위한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 반대로 연락하지 않기로 결심하신다 해도, 그 누구도 작성자님께 돌을 던질 수는 없습니다. 이미 충분히 갚았고, 충분히 사랑을 베풀었으며, 충분히 할 만큼 하셨으니까요. 중요한 건 어머니의 반응이 아니라 작성자님의 평온함입니다. 🏰 딸의 결혼식 날, 어떤 선택을 해야 작성자님이 가장 편안하게 웃으며 딸의 앞날을 축복해 줄 수 있을지 그 마음의 소리에만 집중해 보시길 바랍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 될까?
나의 어릴 적 기억은 엄마한테 참 많이 혼났고 매를 맞았고. ᆢ
엄마가 무서워서 거짓말을 많이 했었던 것 같고 그래서 더 많이 혼나고 맞았고 ᆢ
그랬다ᆢ
엄마는 어린 나를 집안일을 시켰다.
여자는 미리 배워놔야지만 나중에 시집가서 살림을 잘한다면서ᆢ
청소부터 시작을 했고 ᆢ
설거지 ᆢ빨래ᆢ 그리고 밥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외출을 하면 집안을 말끔하게 치워놨다
외출해서 돌아오는 엄마는 깔끔해진 집을 보고 칭찬을 해줬다
그 칭찬해 나는 더욱더 열심히 집안일을 했다
주말에는 남동생 2명ㆍ 그리고 내 실내화까지 빨아서 널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때까지ᆢ
어느날ᆢ무슨이유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족은 외가집에 들어가 살게되었다
외할머니는 엄마보다 더했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덩치가 큰 외할아버지 바지를 빨았던 기억이 ᆢ
세탁기가 없었던 시절이였다
아~탈수기가 먼저 나왔던건 기억이난다
손빨래를 하고 탈수는 기계가ᆢ
외할머니는 밥 먹을 때도 남동생과 차별을 두었다
맛있는 반찬은 남동생을 먼저 그리고 많이 주었던기억이ᆢ
몇 년을 같이 살고 우리가족은 아파트로 이사를했다
이사를 하면서 친할머니와 같이 살게되고 20살이 되던해에 알았다
친할머니는 엄마한테 혼나는 나를 보면서 늘 혀를 차곤했던이유를ᆢ
나를 낳아준 엄마가 아니었다.
계모였다
아~ 그래서였구나 ᆢ
많이 방황했었다.
그나마 아빠의 관심과 사랑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아빠도 엄마 눈치 보느라
엄마가 집에 없을 때만 내 대신 아빠가 집안일을 해준다
워낙에 자상한성격이긴 하지만ᆢ
때론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다.
아빠의 실수로 ᆢ잘못으로ᆢ
내가 이렇게 밖에 클수밖에 없음을ᆢ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고 내 월급은 고스란히 엄마한테 쥐어줬고 난 용돈을 받아쓰고
그러면서 엄마는 조금 나에게 부드러워졌다.
나를 낳아준 엄마와의 소식이 닿아
몰래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뒤 ㆍ
난 결혼을 했다
엄마의 관계가 좋아졌다.
결혼하고 나서 정말 친정엄마처럼 잘해줬다
우리 딸도 키워주고ᆢ
지금 내나이 50중반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
부쩍 나한테 의지를 많이 한다.
남동생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들
엄마의 푸념들을 다 들어주면서ᆢ
남동생 때문에 요 몇 년간 큰 일이 있었고ᆢ
그래서 나도 힘들었고 엄마도 힘든상태다
어느 날 나는 그 푸념들이 나한테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화를 냈다.
무슨용기가 났을까ᆢ
감히 엄마한테 대들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다 무서워서ᆢ
나도 나이가 먹었는지
겁이 없었던더같다
그로 인해 지금 엄마랑 연락을 안한다 엄마도 절대로 나한테 먼저 연락을 하는 법이 없다.
내 어릴적 기억이 50 이 넘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음에
힘들 때가 많다.
좋았던 기억보다 나쁜 기억들이 더
자리잡고 있음에ᆢ
내 어릴적 상처가 많이 깊었던 것이다.
그동안에 키워준 거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다 갚았다고 생각이 든다
나 ᆢ 할 만큼 했어.
올해 내 딸내미가 결혼을 한다
엄마한테 연락을 해야 되는지
머리가 너무 아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