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유기 선리기연〉을 통해 생각해보는 이별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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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후반, 제가 고등학생 무렵이었을겁니다. 당시에 주성치 주연의 홍콩 코메디 영화가 꽤 인기가 있었는데요, 저도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소년중에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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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서유쌍기중 <월광보합>을 보았을 때는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주성치 특유의 코미디와 무협이 뒤섞인 영화일 것이라 짐작했었고, 웃다가 끝날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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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뽀로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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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보고 나서도 그정도 영화라 생각되더군요. 물론 정말 정신 못차릴 정도로 웃긴 장면도 많았습니다.

 

1부격인 월광보합이 끝나갈때쯤, 2부격인 선리기연 역시 도깨비 비슷한 인물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허무맹랑하고 코믹한 장면과 설정이 계속 이어지겠지 하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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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월광보합의 마지막장면에 자하선사가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이 영화가 제 마음을 평생동안 붙잡고 놓지 않을 이야기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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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서유쌍기의 두번째 장 <선리기연>을 전부 다 보고 나서는 제 생각이 약 179도 정도는 바뀌게 되더군요.

 

선리기연을 본 마음의 여파가, 앞서서 보았던 월광보합에까지 금세 닿으니, 서유쌍기는 제 마음에 있어 커다란 해일로 다가오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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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보합에서 웃음으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점점 사랑과 이별, 공과 사를 가르는 선택의 문제로 옮겨가고, 사랑과 운명, 그리고 떠남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질문들은 의외로 가볍지 않았고, 화면을 통과하여 그들을 바라보는 저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웃음보다 침묵과 사유의 시간이 길어졌고, 거의 후반부에서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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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저는 이 영화를 여러 번 다시 보았습니다. DVD도 사서 가지고 있고, 마음이 복잡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쌓일 때면 꺼내 보곤 합니다. 볼 때마다 같은 장면에서 같은 감정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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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사랑보다 이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유기 선리기연〉에서 지존보는 손오공이 되기 전의 존재입니다. 그는 자하선사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지키는 선택은 하지 못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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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선사는 그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완성하고 싶어 하지만, 지존보는 자신이 선택해야 할 길이 따로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별은 감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각자가 감당해야 할 삶의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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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어울리는 이별에 관한 한 문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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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이 문장은 흔히 사랑을 정의하는 말로 인용되지만, 저는 오히려 이별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접근할때 더 유용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말처럼 두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없게 되는 순간, 사랑은 지속되는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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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보와 자하선사는 분명히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끝내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이별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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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자하선사는 지존보에게 집요하게 묻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신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요. 그러나 지존보는 대답을 미룹니다. 그 미루는 시간 속에는 비겁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무게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선택이 곧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을 보며 저는 헤르만 헤세의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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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운명이다.그것이 아무리 짧을지라도.”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따라온다. 하지만 모든 이별이 끝은 아니다.”

- 헤르만 헤세

 

헤세의 이 문장들은 사랑이 반드시 오래 지속되어야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지존보와 자하선사의 사랑은 끝이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조차 두 사람에게는 분명한 운명이었고, 그 운명은 이별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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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흔히 실패로 해석됩니다.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서유기 선리기연〉은 이별을 실패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택의 결과이자, 각자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제시합니다. 

 

지존보가 완전한 손오공이 되기 위해서는 자하선사를 놓아야 하고, 자하선사 또한 자신의 운명을 완성하기 위해 지존보를 놓아야 합니다.

 

이 장면과 맞닿아 있는 문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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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삶에 들어와 흔적을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 안나 퀸들런, 『한 가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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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처럼 자하선사는 죽어 곁을 떠나지만, 지존보의 삶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녀는 지존보가 손오공이 되는 과정의 일부로 남고, 그 선택의 근거로 남습니다. 이별은 관계의 종료이지만, 완전한 소멸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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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에서 손오공은 더 이상 세속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그는 웃지 않고, 망설이지 않으며, 정해진 길을 걷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장면을 두고 손오공이 사랑을 버린것이 아닌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는 사랑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포함한 채로 앞으로 나아간다고 느꼈습니다.

 

 

이 대목에서 릴케의 문장이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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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두 고독이 서로를 지켜보고, 경계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릴케가 말한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중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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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보가 자하선사를 떠나는 선택은 자신과 그녀 양쪽 모두에게 잔인해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얼핏 그녀에 대한 존중의 표현으로도 보였습니다.

 

이별이 힘든 이유는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식었다면 떠남은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별은 아직 사랑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별을 후회하고, 다시 붙잡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 선리기연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랑하고 있더라도 떠나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고 말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 여기에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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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고통받는다.”
–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 단편집 중

 

이 말은 이별 앞에서 우리가 흔히 빠지는 함정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우리는 사랑이 지속되지 않으면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역할이 반드시 지속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랑은 떠남을 통해 제 역할을 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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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선리기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윤회를 통해 환생한 자하선사는 지존보와 닮은 떠돌이 무사와 이어졌지만 군중속에 있는 손오공을 잠시동안 응시합니다. 손오공은 그녀를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뒤돌아 떠나갑니다. 이 장면은 잔인할 정도로 담담합니다. 그러나 그 담담함 속에는 분명한 결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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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미련을 안고도 돌아서야 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그 장면은 말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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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겪은 뒤 사람들은 흔히 묻습니다. 그 사랑은 진짜였는지, 아니면 사랑이라는 착각이었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그렇게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습니다. 그 사랑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다주었는지 말입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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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랑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했느냐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이 문장은 사랑의 성취를 시간으로 재단하지 말라는 메시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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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선사와 지존보의 사랑은 길지 않았지만, 그 진실함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별은 관계의 끝이지만, 삶의 연속선 위에 놓인 하나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이별을 통해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내려 놓아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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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은 자하선사를 떠나며 더 큰 책임을 짊어지고, 자하선사는 그 떠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완성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한 문장을 더 소개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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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의 이 말은 이별을 실패가 아니라, 성숙의 과정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붙잡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보내는 선택 역시 사랑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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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선리기연〉은 코미디로 시작해 슬픈 이별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 이별은 어찌보면 절망으로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각자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한 출발점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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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의 담담한 모습과는 달리 제3자인 저의 눈에서는 매번 눈물의 홍수가 납니다.

 

그래도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저 슬프기만 하다기보다는 묘하게 마음이 단단해짐을 느낍니다. 이별이 반드시 상처만을 남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영화가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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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별이란 꼭 누군가를 잃는 사건이라는 단순한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다짐까지 포함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다짐을 가능하게 했던 사랑은, 끝났어도 헛되지 않습니다.

 

이별 뒤에 남는 것은 막다른 절벽 끝에 서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선에 서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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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이 앞에 나타났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그걸 잃었을

비로소 크게 후회했소

인간사 가장 고통은 바로 후회요

당신의 칼로 목을 잘라 버리시오

망설일 필요 없소

하늘이 내게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녀에게 이렇게 말할거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만약 사랑에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서유기 선리기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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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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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RU2UC6
    글 잘 보고 갑니다. 서유기 선리기연 한번 봐야겠어요
    • 프로필 이미지
      바보
      작성자
      인생 영화로 삼는 분도 꽤 많은 명작입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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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희
    영화를 통해서도 배울수 있군요
    처음들어보는 영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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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
      작성자
      오래된 영화라서 그런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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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꽃7
    영화로 이별을 배우는것도 도움 되겠어요
    영화 시간되면 봐야겠어요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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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
      작성자
      네 추천 영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