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제가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 하나 있어요.
“진창이나 마른창이나 서 있느니 걸어간다.”
이 말은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고, 어느 유명한 책에서 본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어느 날, 모든 일이 꼬이고 안 풀리던 때에, 제 마음을 다잡으려고 제가 제게 던진 말이었죠.
그때는 뭐든 시작하면 잘 안 풀리던 시기였어요.
일을 해도 결과가 안 따라오고, 사람 관계도 어딘가 엇나가는 느낌이고, 뭘 해도 “왜 나는 이렇게 안 되지?”라는 생각이 먼저 올라오던 때였어요. 그런 날이 계속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바닥에 턱 서서 멍하니 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더라고요. 앞으로 나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지는 그런 상태요.
근데 가만히 서 있으면, 이상하게 더 힘들어지더라고요.
진창 위에 서 있든, 마른 땅 위에 서 있든, “그 자리”에 멈춰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은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가고, 자책과 후회만 머릿속에서 커져요. 그래서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어차피 힘든 거라면, 진창이든 마른창이든 서 있느니 차라리 걸어가자.”
발 밑이 진흙탕이어도, 바닥이 바싹 말라 있어도, ‘이 자리’에만 멈춰 있기보다는 어딘가로 움직이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때부터 이 문장을 제 나름의 신념처럼 붙잡고 살았어요.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계획대로 안 흘러갈 때도,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도, 항상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 바닥 상태가 어떻든, 그냥 한 발이라도 더 가자. 진창이면 진창대로, 마른창이면 마른창대로. 서 있지는 말자.”
이 한 문장이, 그때는 저를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작은 모터 같은 역할을 해줬어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어요.
“내가 만든 이 말이랑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런저런 명언들을 찾아보다가, 공자의 말 하나를 발견했어요. 바로 이 말이었죠.
“멈추지 않는 한,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 공자
이 문장을 보고 좀 뜨끔했어요.
아, 내 말이랑 방향이 비슷하구나 싶어서요. 제가 했던 말이 “서 있느니 걸어간다”였다면, 공자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얼마나 느린지는 중요하지 않고,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하고 있더라고요. 어떤 땅 위에 서 있느냐를 고민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계속 움직이는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는 거죠.
돌이켜보면, 제가 진창이든 마른창이든 ‘서 있는 상태’가 너무 괴로워서 이 말을 만들었을 때, 이미 공자가 말한 핵심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멈춰서 생각만 하면 자꾸 자기 비난만 늘어나고, “왜 나는 이 모양일까” 같은 질문만 끝없이 반복되는데, 일단 한 걸음이라도 내딛으면 그 생각들이 조금씩 옅어져요. 속도가 빨라지지 않아도, 발 밑 진흙이 쉽게 안 마르더라도, 계속 걷고 있는 내 자신이 어느 정도는 나를 버티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이 두 문장을 같이 떠올려요.
“진창이나 마른창이나 서 있느니 걸어간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한,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첫 번째 문장은 그때의 나를 구해준, 아주 개인적인 신념이에요.
어떤 바닥 위든 서 있는 상태를 끊고, 움직이는 나 자신을 선택하자는 말이었죠.
두 번째 문장은 그 신념을 좀 더 넓은 시야로 다듬어주는 옛 철학자의 조언 같아요.
속도에 집착하지 말고, 멈추지 않는 나의 걸음 자체를 믿으라는 말이니까요.
지금도 뭔가 잘 안 풀릴 때가 있잖아요.
내가 하는 일이 자꾸 빗나가고, 사람들 반응이 기대만큼 따라오지 않고, 계획이 계속 틀어질 때. 그럴 때 예전처럼 다시 그 문장이 떠올라요. “진창이나 마른창이나 서 있느니 걸어간다.” 그리고 그 뒤를 공자의 말이 따라오죠. “괜찮다. 느려도 괜찮다.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아마 앞으로도 인생에서 비 오는 진창과, 햇볕 쨍한 마른창을 계속 번갈아 가며 밟고 살겠죠.
그래도 그때마다, ‘어디 위에 서 있느냐’보다 ‘나는 계속 걸어가고 있느냐’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건 이미 예전의 내가 만들어낸 말이, 수천 년 전의 한 철학자의 지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생긴, 작은 자부심 같은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