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30대 젊을 때는 월급날 봉투째 가져다주면 어떻게든 집안이 굴러가는 줄 알았습니다.
평생을 앞만 보고 소처럼 일만 했는데, 막상 은퇴라는 걸 하고 나서 통장을 들여다보니 수중에 남은 돈이 생각보다 참 초라하네요...
아이들 공부시키고 다 커서 장가보내고 시집보내느라 기둥뿌리 몇 번 뽑히고 났더니, 제 노후를 위해 남겨둔 몫이 이렇게 부족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가장 답답한 건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은 뚝 끊겼는데, 나가는 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겁니다.
아파트 관리비에, 부부 실비보험료, 통신비, 가스비까지 그저 숨만 쉬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돈 들어올 구멍은 막혔는데 통장 잔고 숫자가 다달이 줄어드는 걸 눈으로 보고 있으니, 마치 내 수명이 줄어드는 것처럼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얼마 전에는 아들 녀석이 제 핸드폰이 너무 낡고 느려졌다며 최신폰 하나 주문해서 새 폰으로 싹 바꿔주더군요. 복잡할 텐데 자기 딴에는 아버지가 쓰기 편하게 예전 폰에 있던 데이터까지 그대로 다 옮겨주고 갔습니다.
새 폰을 쥐여주니 고맙고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밥벌이하느라 고생하는 자식 주머니를 털어먹은 것 같아 속으로 참 미안하고 씁쓸했습니다.
내 돈으로 번듯하게 척척 사서 쓰던 시절이 지났다는 걸 새삼 느꼈거든요.
게다가 요즘 아내는 살림에 단돈 몇십만 원이라도 보탬이 되어보겠다며, 돋보기를 끼고 인터넷으로 고용보험 관련 지원금이나 일자리 규정 같은 걸 열심히 찾아보고 다닙니다.
평생 내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아내를 늙어서까지 돈 걱정으로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것 같아 늙은 가장으로서 참 낯이 뜨겁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집니다...
지금 우리 부부가 믿고 의지할 구석이라고는 달마다 통장에 찍히는 국민연금뿐입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둘이서 아껴가며 밥이나 먹고 가끔 병원 진료비 정도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습니다. 행여나 친척이나 지인들 경조사라도 겹치는 달에는 당장 생활비가 마이너스가 돼버립니다. 돈 백만원 우습게 생각하고 살았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마트에 가서 과일 하나 고기 한 근을 집어 들 때도 할인 가격표를 두 번 세 번 쳐다보고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게 되네요.
가끔 친구들 만나서 소주 한잔 기울이다 보면 다들 자기들은 노후 준비 잘 해놓고 여유롭게 사는 것처럼 떠드는데, 속으로는 '나만 이렇게 바보처럼 노후 대비를 못 하고 살았나' 싶어 자책감만 듭니다.
남들 앞에서는 허허 웃고 말지만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제 인생 전체가 가난이라는 단어 앞에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참 서글픕니다.
이러다가 나중에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덜컥 큰 병에 걸려서 목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싶습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자식들한테 손을 벌리게 될까 봐, 그게 가장 두렵고 무서워서 밤에 잠이 안 옵니다.
다른 분들은 퇴직하시고 이 막막한 노후 자금 관리를 어떻게들 하고 계시는지 참 궁금합니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다들 저처럼 허리띠 졸라매고 국민연금 아껴 쓰며 사시는 건지? 아니면 무슨 좋은 지혜가 있는지? 답답한 마음에 넋두리 한번 길게 적어봤습니다.
늙어서 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게 사람이라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