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진짜 제 머릿속에 지우개가 든 건지 답답해서 하소연 좀 해보려고요.
방금도 부엌에 뭐 가지러 갔다가 냉장고 문 활짝 열어놓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네요. 도대체 뭘 꺼내려고 했는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시원한 냉기 맞으면서 김치통이랑 밑반찬들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결국 기억이 안 나서 문 닫고 돌아섰네요.
그리고 거실 소파에 딱 앉으니까 그제야 찌개에 파 썰어 넣으려고 했다는 게 거짓말처럼 생각나더라고요.
처음엔 그냥 나이 먹어서 깜빡깜빡하나 보다 하고 웃어넘겼어요. 머리에 안경 얹어놓고 안경 찾는 건 기본이고 내 손에 멀쩡히 핸드폰 쥐고 있으면서 어디 뒀냐고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진 적도 많거든요?
심지어 텔레비전 리모컨을 냉장고 안에 넣어둔 적도 있어서 남편이랑 둘이서 내 정신 좀 보라며 깔깔 웃고 말았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하루가 멀다 하고 자꾸 반복되니까 이제는 웃음이 안 나오고 진짜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하네요.
며칠 전에는 마트에 찌개용 두부랑 콩나물 사러 갔다가 엉뚱하게 세일하는 우유랑 계란만 잔뜩 사서 온 거 있죠?
계산할 때까지도 제가 뭘 사러 왔었는지 까맣게 몰랐어요. 집에 와서 장바구니 풀다가 내가 왜 두부는 안 사고 이걸 사 왔지 하면서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멍해지더라고요.
젊었을 때는 친정 식구들 시댁 식구들 전화번호 수십 개를 머릿속에 줄줄 다 외우고 다녔고 가계부도 꼼꼼하게 썼는데 이제는 당장 어제 점심에 뭐 먹었는지도 가물가물하네요.
요즘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보면 치매 걸린 어르신들 이야기 참 많이 나오잖아요? 예전에는 참 안타깝다 남 일 같지 않다 하면서 가볍게 넘겼는데 요즘은 그게 꼭 얼마 뒤의 제 모습 같아서 밤에 잠이 안 와요.
아직 60대면 어딜 가도 한창이라고 다들 그러는데 내 머리는 벌써 수명을 다해서 고장이 나고 있는 건가 싶어서 서글퍼져요.
평생 가족들 챙기면서 아등바등 살아왔는데 나중에 내 자식들 얼굴도 못 알아보고 짐만 되는 무서운 병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혼자 설거지하다가 눈물 훔친 적도 있어요.
동네 친구들이나 지인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나이 들면 자연스러운 거라고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더라고요. 자기들도 냄비 태워 먹고 핸드폰 잃어버리고 난리도 아니라고요.
근데 막상 매일매일 이런 일을 겪는 제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에요. 누가 옆에서 무슨 말 하면 혹시 내가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반복하는 건 아닌지 눈치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사람 만나는 것도 피하게 되고 말수도 자꾸 줄어들게 되더라고요.
가스불에 국 올려놓고 딴짓하다가 새까맣게 태워 먹어서 집안에 연기 꽉 찬 적도 있거든요. 그 뒤로는 외출할 때 가스 밸브 잠갔는지 현관문 앞에서 세 번 네 번 확인하는 버릇까지 생겼어요.
엘리베이터 탔다가 다시 올라가서 문고리 흔들어보고 나온 적이 진짜 한두 번이 아니에요. 혹시라도 내가 정신 놓은 사이에 집에 불이라도 날까 봐 너무 불안하고 스스로 내 자신이 너무 못 미덥고 한심하게 느껴져서 속상해요.
보건소나 동네 병원 가면 치매 검사 같은 거 간단하게 해준다던데 막상 가려니 진짜 무슨 큰일 날 결과가 나올까 봐 무서워서 차마 발길이 안 떨어지네요.
그냥 견과류 챙겨 먹고 머리 쓰는 거 하면 좀 낫다길래 핸드폰으로 맞고 게임도 깔아서 해보고 신문에 나오는 숫자 맞추기 같은 것도 억지로 풀어보는데 불안한 마음이 좀처럼 진정이 안 돼요.
저처럼 자꾸 깜빡거리는 증상 때문에 속상하고 혹시 큰 병일까 봐 무서운 마음 들어보신 분들 계실까요? 다들 늙어가는 이 낯설고 당황스러운 시기를 어떻게 마음 다스리며 넘기고 계신지 편하게 이야기 나누어 주시면 참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