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를 보면 늘 매사에 꼼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곤 하는데요...
대학 동기들이 적당히 타협하며 캠퍼스 라이프를 즐길 때 저는 밤을 새워가며 완벽에 가까운 학점을 악착같이 유지했고 교수님과 선후배들의 부러움 섞인 인정과 칭찬을 한 몸에 받았거든요?
그때는 제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고 저의 그 지독한 완벽주의 성향이 험난한 사회생활에서도 저를 빛나게 해 줄 강력한 무기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돌이켜보니 온실 속 화초처럼 안전하고 예측 가능했던 학교를 벗어나 진짜 차갑고 냉혹한 현실의 출발선에 서게 된 순간부터 저의 그 완벽주의는 제 발목을 썰어버리는 가장 끔찍하고 무거운 족쇄로 변해버린 것 같습니다.
서른 중반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가 훌쩍 다가왔지만 저는 여전히 과거의 찬란했던 그 작은 영광의 틀 안에 갇혀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이력서를 쓰거나 새로운 직무를 위한 공부를 시작해야 할 때마다 과거에 늘 상위권이었던 제 모습과 현실의 초라하고 부족한 제 실력이 뼈저리게 비교되면서 숨이 턱턱 막혀옵니다.
빈 화면에 첫 글자를 적어 내려가는 순간 제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평범한 남자인지 스스로 뼈아프게 인정하게 될까 봐 미치도록 두려워서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고 완벽한 준비가 될 때까지 미루겠다는 비겁한 핑계 뒤로 끝없이 도망만 치고 있더라고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면 당연히 처음에는 서툴고 실수도 하며 넘어지는 게 정상인데 저는 단 한 번이라도 실패를 하거나 남들에게 멍청해 보이는 꼴을 도저히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 도전이라는 단어 자체를 제 인생에서 아예 지워버렸습니다.
도전을 하지 않으니 당연히 실패도 없었지만 동시에 제 삶은 아무런 성취도 발전도 없는 썩은 고인 물처럼 끔찍하게 썩어가고 있더군요.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깨지고 부딪히며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데 저 혼자만 과거의 화려했던 성적표라는 낡은 트로피 하나만 끌어안고 멈춰버린 텅 빈 방 안에서 시간만 죽이고 있는 꼴이 너무나도 비참하고 한심하네요.
차라리 무식하게 일단 부딪혀보는 뻔뻔한 성격이었다면 지금쯤 뭐라도 이뤄놓았을 텐데 머릿속으로만 완벽한 계획을 수백 번 세웠다가 부수기를 반복하느라 제 황금 같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청춘을 다 날려버렸다는 뼈아픈 자각이 매일 밤 저를 날카롭게 찌릅니다.
실패가 두려워서 회피하는 제 진짜 찌질한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겉으로는 지금 당장은 내가 원하는 완벽한 조건의 자리가 없어서 안 가는 거라고 오만한 거짓말을 늘어놓을 때마다 제 입을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깊은 자기 혐오에 휩싸이곤 해요.
이런 끔찍한 정체기와 자기 파괴적인 회피에서 어떻게든 벗어나야겠다는 절박함에 최근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억지로 워크넷에 접속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과거의 알량한 자존심을 다 버리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신청하고 내일배움카드까지 등록을 마치고 나니 묘한 안도감과 동시에 또다시 실패하면 어떡하나 하는 거대한 공포가 파도처럼 덮쳐오더군요...
나라에서 지원을 받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백지상태로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현실이 서른 중반의 남자인 저에게는 마치 발가벗겨진 채로 겨울 바다에 던져지는 것 같은 지독한 두려움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남들은 이미 자리를 굳건하게 잡고 나아가는 나이에 나는 이제야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현실 자각이 완벽을 추구하던 제 유리 멘탈을 사정없이 짓부수고 있어서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더 이상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그 완벽하고 거창한 허상의 나에게 얽매여서 현실의 불완전한 저를 학대하고 방치하는 미련한 짓은 멈추고 싶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과거의 그 쓸데없는 학점 강박과 1등 놀이를 완전히 부수고 남들처럼 아주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묵묵히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 수 있는 진짜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세상에 부딪히는 그 미칠 듯한 불안감과 타인의 시선을 견뎌내면서 제가 겨우 용기 내어 신청해 둔 이 작은 시작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끝까지 멱살을 잡고 끌고 나갈 수 있는 아주 독하고 현실적인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과거의 트로피를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흠집 투성이에 보잘것없는 30대 남자의 현실을 담담하게 인정하며 흔들림 없이 제 삶을 다시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부디 제게 뼈 아픈 조언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