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주말마다 양복 챙겨 입고 결혼식장 쫓아다니느라 바빴습니다.
친구들 자식들 시집장가보낸다고 청첩장이 하도 날아와서, 봉투에 축의금 챙겨 넣으며 왁자지껄하게 축하해 주는 게 주말의 가장 큰 행사였지요.
그런데 나이 60을 넘기고 중반을 향해가니, 이제는 핸드폰에서 '징' 하고 문자가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혹시 또 누구 상 당했다는 부고 문자일까 봐, 화면을 확인하기도 전에 덜컥 겁부터 집어먹는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며칠 전에도 참 허망한 일을 겪었습니다. 불과 이주일 전에 만나서 고기 굽고 소주잔 부딪치면서 "우리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보자"며 껄껄 웃던 옛날 친구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소에 산도 잘 타고 지병도 없이 튼튼하던 놈이었는데, 자다가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더니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뒀다더군요.
허둥지둥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장례식장에 달려갔는데, 영정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그놈 얼굴을 보니 눈물도 안 나고 그저 다리에 힘만 쫙 풀렸습니다.
육개장 국물에 밥을 말아 꾸역꾸역 삼키면서 다른 친구들과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다들 겉으로는 "갈 때 되니 가는구나" 하며 덤덤한 척했지만, 술잔을 쥐고 있는 손들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저는 봤습니다.
그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캄캄한 새벽길을 혼자 걷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아, 다음번 저 영정 사진 속 얼굴이 내 얼굴이 될 수도 있겠구나.'
평생을 소처럼 앞만 보고 일했습니다.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아등바등 살면서 진짜 내 인생이 뭔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한 번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 늙어서 직장도 그만두고 겨우 숨통 좀 트이나 싶었는데, 정작 내 손에 쥐어진 건 망가진 몸뚱어리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시한부 같은 목숨줄이라는 생각이 드니 참을 수 없이 억울하고 허탈합니다.
밤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그 원초적인 공포가 제 목을 조릅니다.
이렇게 자다가 나도 모르게 숨이 멎으면 어떡하나, 눈을 감는 것조차 무서워서 억지로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적도 있습니다. 어디가 크게 아픈 것도 아닌데, 그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한순간에 스러질 수 있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오면 손발이 차가워지고 숨이 턱턱 막힙니다.
평생 죽는소리 한 번 안 하고 꼿꼿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보이지 않는 저승사자 발소리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한 겁쟁이가 되어버리네요.
다 늙어서 누구나 한 번은 겪는 죽음이 왜 이렇게 미치도록 두렵고 무서운 걸까요?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 지독한 불안감에 짓눌려 있다 보니, 오늘 하루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헛짓거리처럼 느껴집니다.
이렇게 덜덜 떨면서 죽음만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남은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헛헛하고 겁나는 마음을 둥글게 다스리고, 내게 주어진 남은 노년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다 갈 수 있도록 뼈 때리는 조언 하나만 꼭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