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땐 참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내 몸을 굴렸습니다. 직장 생활 한창 바쁘게 하던 30대, 40대 시절에는 그야말로 제 체력이 강철이라고 굳게 믿고 살았거든요.
저녁에 동료들이랑 고깃집에서 1차로 소주를 마시고, 2차로 당구장이나 호프집 가서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켜고, 3차로 노래방까지 가서 새벽 두세 시까지 놀아도 끄떡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술통에 빠져 놀다가 집에 들어가서 넥타이만 대충 풀고 쓰러져 자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얼큰한 해장국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멀쩡한 얼굴로 출근해서 서류를 넘겼으니까요. 늘 피곤을 달고 살긴 했지만 몸이 축난다는 느낌은 없었고, 그때는 대한민국 남자들 다 그렇게 버티며 사는 줄 알았습니다. 제 몸뚱어리가 영원히 늙지 않고 고장 나지 않을 무쇠인 줄로만 알았죠.
그런데 나이 60을 훌쩍 넘기고 현직에서 은퇴까지 하고 나니, 이놈의 몸뚱어리가 도무지 제 마음 같지가 않습니다. 며칠 전에 참 오랜만에 옛날 직장 동료들 모임이 있어서 서울 시내까지 나갔다 왔습니다. 예전처럼 무식하게 부어라 마셔라 한 것도 절대 아니었습니다.
다들 나이 먹은 거 뻔히 아니까 그저 삼겹살에 소주 반병 정도 기분 좋게 반주로 걸친 게 전부였습니다. 밤 9시도 안 돼서 자리를 파하고 일찍 지하철을 타고 집에 들어와 잤는데,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온몸이 몽둥이로 흠씬 두드려 맞은 것처럼 쑤시더라고요. 머리는 무겁게 짓눌리고 속은 울렁거려서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도 못 먹고 하루 종일 안방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꿀잠 한숨 자고 사우나 가서 땀 한 번 빼고 나면 싹 풀렸을 텐데, 이제는 그 찌뿌둥하고 무거운 기운이 사흘은 꼬박 가더군요. 간에서 알코올을 해독할 힘도 떨어졌는지, 좋다는 비싼 간 영양제를 챙겨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방바닥에 앓아누워 있으니 아내는 "다 늙어서 주책맞게 옛날 생각하고 술을 마시냐"며 등짝을 치며 핀잔을 줍니다. 아내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어서 반박할 기운도 안 나고, 그저 쭈그러져 누워있는 제 자신이 너무 처량하고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가장 서글픈 건 몸은 이렇게 늙어빠졌는데 제 마음은 아직도 팔팔한 20대라는 겁니다. 오랜만에 사람들 만나서 왁자지껄 떠들고 술잔 부딪치면서 노는 그 흥겨운 분위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좋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옛날처럼 호기롭게 건배사도 하고 밤새도록 웃고 떠들며 거리를 누빌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저녁 8시만 넘어가면 얄밉게도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허리가 뻐근해져 옵니다.
식당 딱딱한 의자에 한두 시간 앉아 있는 것조차 고역이 되어버렸습니다. 분위기 한창 좋을 때 초 치기 싫어서 저 혼자 피곤한 티를 낼 수도 없으니, 억지로 하품을 참아가며 허벅지를 꼬집고 앉아 있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 여기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이러고 있나' 싶어 헛웃음이 나고 참 씁쓸해집니다.
머리로는 내가 늙었다는 걸 뻔히 아는데, 가슴으로는 그게 인정이 안 되니 참 답답하고 속상한 노릇입니다.
자꾸 옛날 그 쌩쌩했던 시절만 떠오르고, 지금의 이 형편없이 방전되어 버린 체력을 마주할 때마다 자존심도 팍 상하고 덜컥 겁도 납니다. 이러다간 저녁 약속이 잡히는 것 자체가 무서워지고, 사람 만나는 걸 슬금슬금 피하다가 결국 방구석에만 갇혀 지내는 외톨이 늙은이가 될까 봐 두렵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사람 냄새도 맡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이놈의 야속한 몸이 안 따라주는 기막힌 엇박자를 겪으면서 진짜 나이 듦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마음만은 청춘인데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는 이 육신을 어떻게 타협하고 받아들여야 제 스스로가 덜 서글퍼질까요?
예전 같은 체력은 없어도 남은 사람들과 부담 없이 기분 좋게 어울리고, 마음과 몸의 틈새를 줄여가며 늙어가는 육신을 담담하게 인정하는 방법이 있다면 꼭 좀 가르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