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기분이 이상하게 가라앉습니다. 친구들이 싫어진 것도 아니고 사이가 나빠진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이고 다들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의 좋은 소식을 듣는 일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친구 몇 명과 저녁을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 욕도 하고 예전 이야기하면서 웃었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집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한 친구가 얼마 전에 아파트를 샀다고 했습니다. 대출을 많이 받아서 부담된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내 집이 생기니까 마음이 완전히 다르다고 하더군요.
다른 친구도 몇 년 전에 산 집이 조금 올라서 이제는 갈아타기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동네가 괜찮다느니, 대출을 얼마나 받았다느니, 요즘 시세가 어떻다느니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저는 옆에서 적당히 웃으면서 부럽다고도 하고 잘됐다고도 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어요.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정말 처참했습니다. 누군가는 벌써 자기 집을 가지고 다음 집을 고민하는데 저는 아직 통장에 찍힌 돈을 보면서 이번 달에는 얼마를 더 아껴야 하나 계산하고 있으니까요.
저라고 일을 안 한 것도 아닙니다. 20대부터 계속 직장을 다녔고 야근도 했고 하기 싫은 일도 참아가며 버텼습니다. 월급날이면 나름대로 저축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흥청망청 돈을 쓴 것도 아닙니다. 비싼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매달 여행을 다닌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30대가 된 지금 통장을 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남아 있는 게 없습니다.
20대에는 30대가 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때는 월급이 적으니까 돈이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경력이 쌓이고 연봉이 오르면 저축도 늘어나고 삶도 조금씩 안정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30대가 되고 보니 연봉이 조금 오른 만큼 생활비도 올랐고 집값을 보고 있으면 제가 몇 년 동안 모은 돈은 돈 같지도 않게 느껴집니다.
몇 년 동안 아끼면서 모은 돈인데 집값 앞에서는 너무 작은 숫자가 되어버립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보낸 몇 년까지 같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나는 그동안 대체 뭘 했나? 분명 매일 출근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남은 게 이것밖에 없지? 이런 생각이 계속 머리를 맴돕니다.
더 괴로운 건 친구들과 저를 자꾸 비교하게 된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다 비슷했습니다. 같이 싼 술집에서 술 마시고 월급날 기다리고 회사 욕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인생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누구는 부모님 도움을 받아 집을 샀고 누구는 결혼하면서 배우자와 돈을 합쳐 집을 마련했고 누구는 투자가 잘돼서 자산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머리로는 압니다. 사람마다 출발점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운도 다르다는 걸요. 그런데 그걸 안다고 해서 마음까지 납득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솔직히 부럽습니다. 질투도 납니다.
친구가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기 전에 제 상황부터 떠올리는 제가 너무 싫습니다. 가끔은 그 친구가 이룬 걸 속으로 깎아내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부모 도움을 받았으니까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하고, 결혼해서 둘이 돈을 합쳤으니까 가능한 거라고 생각하고, 운 좋게 투자한 게 올랐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잠깐 마음이 편해지는데 조금 지나면 더 비참해집니다. 남의 성공을 깎아내려야 겨우 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요.
SNS를 볼 때도 비슷합니다. 누가 새집으로 이사했다거나 신혼집을 꾸몄다거나 차를 바꿨다는 사진을 올리면 예전에는 그냥 넘겼는데 요즘은 손가락이 멈춥니다. 사진 몇 장을 보고 나면 갑자기 제 인생 전체가 초라해집니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깨지고 지쳐서 집에 돌아왔는데 누군가는 자기 집 거실에 새 가구를 들여놓고 있습니다. 저는 다음 월급날까지 남은 날짜를 계산하는데 누군가는 대출을 얼마나 빨리 갚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게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작아지게 만드는 걸까요?
특히 주변에서 집은 언제 살 거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들을 때면 속이 답답합니다. 저도 사고 싶죠. 왜 안 사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사고 싶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몇 억이라는 숫자가 붙는 순간 현실감부터 사라집니다. 지금부터 몇 년을 더 모아야 하는지 계산하다 보면 오히려 의욕이 없어집니다.
월급에서 생활비를 빼고 현실적으로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을 계산한 다음 일 년 단위로 곱해봅니다. 그렇게 몇 년을 계산해도 제가 원하는 수준의 집에는 한참 부족합니다. 그러면 갑자기 모든 절약이 의미 없어 보입니다. 커피 몇 잔 덜 마시고 배달 몇 번 참는다고 이 차이가 메워질까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돈을 쓰는 것 자체가 불편합니다. 맛있는 걸 먹어도 이 돈을 아꼈어야 했나 싶고, 옷 하나를 사면서도 정말 필요한지 몇 번씩 고민합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아껴서 통장에 몇십만 원 더 남는다고 제 인생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쓰면 불안하고 안 쓰면 사는 재미가 없습니다.
회사에서는 월급을 받으려고 버티고 집에서는 돈을 아끼려고 참고 주말에는 괜히 돈 쓰기 싫어서 집에 있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대체 언제 살고 있는 거지? 미래를 위해 현재를 계속 미루고 있는데 그 미래가 정확히 언제 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가 무서운 건 집이 없는 것 자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더 무섭습니다.
친구들은 인생의 다음 단계로 계속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집을 사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자산을 불리고 다음 계획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몇 년 전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저 혼자 인생의 진도가 멈춰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가장 싫은 건 제가 점점 돈으로 사람과 인생을 평가하게 된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친구를 만나면 그냥 그 친구 자체를 봤는데 요즘에는 집이 있는지,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부모에게 도움을 받았는지 같은 게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잣대를 가장 잔인하게 들이대는 대상은 결국 저 자신입니다.
직장이 있어도 부족합니다. 몇 년 동안 성실하게 일했어도 부족합니다. 큰 사고 없이 제 몫을 하며 살아왔어도 부족합니다. 통장에 큰돈이 없고 집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다 가끔 정신이 들면 무섭습니다. 앞으로 40대가 되고 50대가 되어도 계속 이런 식으로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저보다 돈 많은 사람은 평생 존재할 텐데 그때마다 비교하고 자괴감에 빠지면 저는 도대체 언제 편해질 수 있을까요?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위로를 듣고 싶은 건 아닙니다. 현실에서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저도 압니다. 사람마다 때가 다르다는 말도 이제는 별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 가도 비교하게 되고 친구를 만나도 비교하게 되고 인터넷을 켜도 비교할 대상이 끝없이 나타나는 세상인데 어떻게 아예 비교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현실적인 방법을 묻고 싶습니다.
제가 실제로 남들보다 늦은 거라면 늦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를 패배자 취급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구의 좋은 소식을 들었을 때 속이 뒤틀리고 집에 돌아와 제 통장을 확인하는 이 습관은 어떻게 끊어야 할까요?
괜찮다고 달래주는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현실적인 말을 듣고 싶습니다. 이미 벌어진 자산 격차를 매일 바라보면서 자괴감에 빠지는 대신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면 어떤 식으로 생각을 바꿔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친구들은 집을 사고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할 겁니다. 저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버는 사람도 계속 만나게 되겠죠. 그때마다 지금처럼 제 인생 전체를 실패로 판정하면서 무너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남의 집과 통장 잔고를 기준으로 제 인생의 가치를 계산하는 이 지긋지긋한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지금 제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어떤 생각부터 버리라고 하실까요? 조금 아프고 듣기 싫은 말이어도 괜찮습니다. 잠깐 기분 좋아지는 위로 말고 제가 앞으로도 계속 비교에 흔들릴 때마다 정신 차릴 수 있는 독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