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도 오전에 이것저것 해놓고 잠깐 앉아서 쉬려고 하는데 가족한테 연락이 왔어요. 집에 있으면 이것 좀 해줄 수 있냐고 하는데, 순간 또 집에 있으니까 당연히 된다고 생각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해줬어요. 밖에 나가 있는 사람보다 제가 움직이는 게 편한 일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요즘은 집에 있다는 말 자체를 하기 싫을 때도 있어요.
가족들 머릿속에는 집에 있는 사람은 언제든 시간이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뭘 받아줘야 할 일이 있어도 저를 찾고, 대신 알아봐달라는 일이 생겨도 저한테 부탁합니다. 급하게 필요한 게 있으면 제가 좀 움직여주면 안 되냐고 하고요.
물론 가족이니까 그 정도 부탁은 할 수 있죠. 저도 도움이 필요하면 가족한테 부탁할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반응이 조금 달라요. 집에 있는데 무슨 일이 그렇게 많냐는 식으로 말할 때가 있거든요. 그 말을 들으면 참 서운합니다.
집에 있다고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만 보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청소하고 빨래하고 장 보고 밥 챙기다 보면 오전이 금방 지나가요. 볼일이 있어서 밖에 나갈 때도 있고, 아무 일정이 없는 날에는 그냥 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에서 쉬는 시간은 시간으로 쳐주지 않는 것 같아요. 밖에서 약속이 있다고 해야 그제야 일정이 있는 사람이 되고, 집에서 혼자 쉬려고 했다고 하면 언제든 다른 일을 넣어도 되는 사람처럼 생각하네요.
한번은 제가 오늘은 좀 쉬고 싶다고 했더니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면서 금방 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말에 괜히 욱하더라고요. 금방 할 수 있는 일이면 본인이 하면 되지 왜 제가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부탁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정말 별것 아닙니다. 그래서 더 거절하기가 어려워요. 이것 하나 못 해주나 싶을까 봐 그냥 알았다고 하게 되죠. 그런데 그런 작은 일들이 계속 제 몫이 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서 싫어요.
저도 제 시간이 있는데 가족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오늘은 천천히 커피 한잔 마시고 싶을 수 있고,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은 날도 있잖아요. 그런 시간까지 꼭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허락받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가끔은 일부러 오늘 밖에 나간다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래야 부탁을 덜 받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가족끼리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또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제가 계속 다 해주니까 가족들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건가 싶어요. 싫으면 싫다고 하고 오늘은 안 된다고 했어야 하는데, 그동안 제가 괜찮다고 받아주다 보니 이제는 당연한 역할처럼 굳어진 건지도 모르겠네요.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건 싫지 않아요. 다만 제가 집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 시간이 늘 비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한테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이 필요하고, 제가 정해서 쓰고 싶은 하루가 있으니까요.
다른 분들도 집에 있다는 이유로 가족들 부탁이 자꾸 몰리시나요? 이런 부탁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줘야 할지, 이제라도 오늘은 안 된다고 편하게 말해도 되는 건지 다들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