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친구한테 밥이나 먹자고 연락이 왔는데 바로 대답을 못 했어요. 예전 같으면 날짜부터 맞췄을 텐데 요즘은 만나고 돌아오면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아서 자꾸 핑곗거리부터 찾게 되네요.
이 친구가 원래부터 돈 이야기를 많이 했던 건 아니에요. 예전에는 만나면 사는 이야기하고 남편 흉도 조금 보고, 자식들 걱정도 하면서 몇 시간씩 앉아 있어도 시간이 금방 갔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화의 반 이상이 돈 이야기가 된 것 같아요.
누구네 집이 얼마가 올랐다더라, 아는 사람이 어디에 투자해서 돈을 벌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기본이고 자기가 산 물건 가격이나 이번에 어디에 얼마를 썼다는 얘기도 자주 해요. 자식들 이야기가 나오면 연봉이나 집 마련한 얘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요.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요. 나이가 들수록 노후 걱정도 생기고 돈이 중요한 문제니까 친구끼리 그런 이야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매번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니까 어느 순간부터 제가 피곤해지더라고요.
특히 제가 뭘 하나 샀다고 하면 얼마 줬냐고 꼭 물어봐요. 가격을 이야기하면 그 돈이면 다른 걸 사지 그랬냐거나 자기는 더 싸게 샀다고 하고, 반대로 조금 비싼 걸 샀다고 하면 돈 아깝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냥 예쁘다, 잘 샀네 하고 끝낼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꼭 돈으로 따져보는 느낌이 들어요.
밥을 먹으러 가도 비슷해요. 음식보다 이게 얼마짜리인지, 다른 곳은 얼마인지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누가 계산할 때도 괜히 신경이 쓰입니다. 제가 사면 다음에는 자기가 산다고 편하게 넘어가면 될 텐데 얼마 나왔는지 계속 따지고 계산하니까 같이 있는 저까지 머리가 복잡해져요.
제일 힘든 건 사람 사는 형편을 자꾸 비교하는 이야기예요. 누구는 집이 몇 채라더라, 누구 남편은 퇴직하고도 얼마를 받는다더라, 누구 자식은 부모한테 용돈을 매달 얼마씩 준다더라 하는 얘기를 듣다 보면 처음에는 맞장구를 치다가도 나중에는 왜 남의 형편을 이렇게까지 알아야 하나 싶어요.
그렇다고 제가 돈 이야기를 전혀 안 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장 보러 가면 물가 오른 것도 이야기하고 생활비 걱정도 하죠. 그런데 그런 생활 속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자꾸 돈으로 비교하는 식이 되니까 듣기가 싫어지는 것 같아요.
한번은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제가 오늘 무슨 이야기를 했나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기억나는 게 집값, 연금, 자식들 수입, 생활비 이런 것뿐이더라고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즐겁다기보다 이상하게 기가 빠졌어요. 나는 왜 남의 돈 이야기를 두 시간이나 듣고 왔나 싶기도 했고요.
더 답답한 건 오래 알고 지낸 친구라는 거예요. 최근에 알게 된 사람이었다면 그냥 안 만나면 그만인데 예전부터 좋은 기억도 많고 힘들 때 서로 이야기 들어주던 사이였거든요. 그래서 돈 이야기 때문에 이제 만나기 싫다고 말하기도 참 그렇네요.
요즘에는 연락이 오면 반가운 마음보다 또 돈 이야기 듣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약속을 잡았다가도 괜히 피곤해지고, 그렇다고 계속 바쁘다고 둘러대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친구가 싫어진 건 아닌데 만나고 나서까지 마음이 불편해지는 자리는 점점 피하고 싶어져요.
제가 너무 예민해진 건가 싶다가도 친구 사이가 편하려면 서로 형편을 비교하지 않고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래된 친구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불편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한번 말해보는 게 나을지 모르겠어요.
혹시 주변에 만나기만 하면 돈이나 재산 이야기를 하는 친구 있으신가요? 오래된 사이라 쉽게 멀어지기도 어려운데 다들 이런 친구와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