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이에도 형편이 좀 나아졌다고 사람을 아래로 보는 일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오래 알고 지낸 친구 하나 때문에 자존심이 많이 상합니다. 대놓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웃으면서 한마디씩 던지는 말이라 그 자리에서 화를 내기도 애매한데, 집에 돌아오면 그 말들이 자꾸 생각나더군요.
그 친구와는 젊었을 때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서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도 함께 보냈고, 힘든 일이 있으면 술 한잔하면서 속마음을 털어놓던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그 친구의 경제적인 형편이 좋아지면서 말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차를 샀다거나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해도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친구가 잘살면 저도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기 이야기를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 생활까지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함께 점심을 먹을 때도 그랬습니다. 제가 평소 다니는 식당이 가격도 적당하고 음식도 괜찮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웃으면서 이제는 나이도 있는데 그런 데만 다니지 말고 돈 좀 쓰면서 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기는 음식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곳을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냥 취향이 다른 거라고 생각하고 넘기려 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친구에게까지 저 사람은 예전부터 돈 쓰는 걸 아까워한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다들 웃고 넘어갔지만 저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제가 형편이 어려워서 싼 음식만 찾아다니는 사람처럼 들렸거든요.
한번은 제가 오래 타던 차를 정비해서 당분간 더 탈 생각이라고 했더니, 언제까지 그런 차를 타고 다닐 거냐며 이제는 체면도 좀 생각하라고 하더군요. 제가 무슨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멀쩡한 차를 더 타겠다는데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형편이 좋아졌다고 남의 생활까지 초라하게 만드는 말투가 참 듣기 싫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돈이 많고 적은 걸 가지고 친구를 판단한 적은 없습니다.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인데 그 친구는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뒤떨어진 사람처럼 이야기합니다.
더 기분 나쁜 건 제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꼭 농담이었다고 한다는 겁니다. 얼마 전에는 저도 참다못해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른 것 아니냐고 했더니, 별말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냐며 오히려 저를 민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돈 문제로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처럼 보일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는 왜 제가 그런 걱정까지 하면서 말을 참아야 하나 싶어 화가 났습니다.
물론 저도 그 친구가 잘사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부러운 것과 무시당해도 괜찮은 것은 다른 문제 아닙니까. 저는 제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게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와 만나고 나면 괜히 제 생활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요즘은 그 친구에게 제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됩니다. 무슨 말을 해도 또 평가하거나 충고하려 들 것 같아서요. 예전에는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던 사이였는데 이제는 말을 꺼내기 전에 눈치부터 보게 되니 씁쓸합니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와서 위로는커녕 자존심만 상하는 관계를 언제까지 이어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수십 년 인연을 이런 일로 멀리하는 게 맞는지 망설여집니다. 혹시 제가 그 친구의 말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래된 친구라는 이유로 계속 참기도 싫고,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따지다가 관계를 망치고 싶지도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면서 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현실적인 대처 방법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