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수십 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직장 생활을 얼마 전에 마무리하고 이제 막 정년퇴직이라는 새로운 꼬리표를 달게 된 60대 여성이에요. 주변에서는 다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이제 평생 못 잔 늦잠도 푹 자고 놀러나 다니면서 제2의 인생을 마음껏 즐기라고 축하를 참 많이 해줬어요.
저도 사실 퇴직하기 전에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가면서 그날만 와봐라, 원 없이 쉬어야지.. 하며 손꼽아 기다렸거든요. 근데 막상 저한테 그토록 원하던 그 엄청난 자유 시간이 주어지고 나니까, 제 기대와는 너무나도 다른 하루하루가 덮쳐오더라고요.
혹시나 저처럼 퇴직 후에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까 봐 용기 내어 제 이야기를 조금 길게 적어보려고 해요.
Q1. 자가점검 전,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었나요?
처음 한두 주는 밀린 집안일도 하고 멍하니 소파에 누워 TV도 보면서 나름 후련하게 쉬었어요. 그런데 딱 한 달쯤 지나고 나니까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오늘은 또 뭐 하면서 이 긴 하루를 버텨야 하나... 눈을 뜨자마자 막막함부터 밀려왔거든요.
평생을 아침 일찍 어딘가로 출근해서 내 몫을 해내는 사람,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쓸모를 다하고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들었어요. 앞으로 내게 남은 미래라는 게 과연 있긴 한 걸까? 그냥 이렇게 늙어가다가 끝나는 일만 남은 건가 싶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왔어요.
그렇다고 가만히 방구석에 누워있는 건 제 성격에 죽기보다 싫고 너무너무 갑갑했어요. 집 안에 시계 초침 소리만 똑딱똑딱 들리면 진짜 가슴이 턱턱 막히고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았어요. 베란다 창밖으로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세상은 저렇게 잘만 굴러가는데 나 혼자만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춰 있는 것 같아서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고요.
뭐라도 새로 배워볼까 싶다가도 금세 무기력해지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는 건 또 끔찍하게 갑갑해서 온종일 좁은 거실만 빙빙 서성거리는 지옥 같은 날들이 계속됐어요. 밤에는 잠도 오지 않고 가슴 한구석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죠.
Q2. 어떤 검사를 했고, 결과는 무엇이었나요?
그렇게 하루하루 숨막히는 일상을 버티다가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하던 중 도대체 내 마음이 지금 왜 이러는 걸까? 하는 심정으로 페이지 안에 있는 우울증 자가점검을 해보게 됐어요.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며 문항 하나하나를 읽고 체크하는데, 어쩜 그렇게 지금 제 마음을 콕콕 찌르고 대변해 주는 질문들만 있는지... 검사를 하는 내내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맺히더라구요.
결과는 제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본문에 첨부한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 우울증 검사 점수는 무려 41점이 나왔고 화면에는 빨간 글씨로 덜컥 '심한 우울 상태'라고 적혀 있었어요. '일상 유지가 어려울 만큼 우울감이 깊어져 적극적인 도움과 돌봄이 필요한 상태'라는 문구를 읽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죠.
막연히 내가 요즘 퇴직해서 기분이 좀 쳐지나 보다 하고 억지로 넘기려 했던 제 마음 상태가 이렇게 뚜렷한 숫자로, 그것도 아주 심각한 수준이라고 명확하게 나오니까 머리가 멍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한편으로는 아, 내가 쓸데없이 유난을 떠는 게 아니었구나. 내 마음이 지금 진짜로 병이 들어서 나한테 살려달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구나 싶어서 묘하게 위로받는 기분도 들었어요. 이 트로스트 앱에서 자가점검 결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까, 더 이상은 이 지독한 갑갑함을 내 의지만으로 참고 넘길 일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됐어요.
Q3. 점검 후 어떻게 했는지 - 약물 복용 경험
사실 우리 60대 세대 사람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거나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편견도 심하고 지레 겁부터 먹기 일쑤잖아요.. 저 역시도 남의 시선이 두려워 망설였지만 자가점검 결과를 보고 나니 이 숨 막히는 감옥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려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용기를 내어 긴 상담을 받았고, 지금은 약물 치료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제가 요즘 매일 챙겨 먹고 있는 약은 본문에 첨부한 두 번째 사진에 있는 '프로작(PROZAC) 20mg'이라는 약이에요.
선생님 말씀으로는 우울증 치료에 널리 쓰이는 SSRI 계열의 항우울제라고 하시더라고요. 초록색과 흰색이 반반 섞인 이 조그마한 캡슐을 처음 처방받아 손에 쥐었을 때는 내가 어쩌다 우울증 약까지 먹는 신세가 됐나... 싶어서 덜컥 겁도 났고 혹시나 의존성이 생길까 봐 걱정도 산더미였어요. 하지만 감기에 걸리면 열을 내리기 위해 감기약을 먹듯이, 뇌의 호르몬 균형이 깨졌을 때 그걸 바로잡아주는 안전한 약이라는 설명을 듣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처음 약 복용을 시작했을때 한 며칠 동안은 속이 약간 메스껍고 밥맛이 떨어지는 등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은 가벼운 위장 장애 부작용이 있긴 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선생님 말씀대로 일주일 정도 꾸준히 챙겨 먹다 보니까 그런 불편한 증상들은 자연스럽게 싹 사라지더라고요.
Q4. 지금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지금은 이 SSRI 프로작 20mg을 매일 아침 식후에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제 마음을 챙기고 있어요. 물론 약이 무슨 동화 속 요술 지팡이처럼 하루아침에 저를 20대 청춘으로 만들어주거나 기분을 날아갈 듯 붕붕 띄워주는 건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분명한 건, 매일같이 제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그 무거운 돌덩이가 조금씩 조금씩 치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거예요. 가만히 앉아있으면 이유 없이 숨이 턱턱 막히고 갑갑해서 미칠 것 같던 그 무서운 증상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제 앞을 가로막고 있던 캄캄하고 막막하기만 했던 것들도 이제는 제법 잔잔하게 걷히고 있고요.
물론 약에만 모든 걸 의존하는 건 아니에요. 집에 가만히 있으면 또 쓸데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갑갑해질까 봐, 무조건 몸을 움직이고 하루의 규칙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에요.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집 근처 하천 길을 무조건 한 시간씩 걷고 돌아와요. 따뜻한 햇볕을 쬐며 걷다 보면 아, 나도 아직 이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나서 기분이 한결 나아지거든요.
최근에는 억지로라도 사람들을 만나려고 주민센터에서 하는 요가 반에도 등록해서 일주일에 두 번씩 나가고 있어요. 비록 몸은 뻣뻣하지만, 내일은 어딜 걷지, 모레는 무슨 동작을 배울지 작게라도 제 일상에 계획을 세우니까 미래가 아예 텅 비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던 그 끔찍한 공포감에서도 많이 벗어날 수 있었어요.
Q5. 자가점검을 망설이는 분께 한마디
제 또래 친구들이나, 혹은 저처럼 은퇴 후의 삶이 너무나도 막막하고 두려운 분들께 이 공간을 빌려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리는 평생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직장에서 살아남느라 정작 나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방법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로 늙어버렸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찢어지게 아픈데도 그걸 그저 내가 나약해서, 나이 먹어서 주책맞게 왜 이러나 라며 꾹꾹 누르고 참으려고만 해요. 가만히 있는 게 숨 막히게 갑갑한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매일 좁은 집안만 서성이고 계시진 않나요?
그건 여러분이 유난스럽거나 못나서 그런 게 절대 아니에요.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이제 좀 돌아봐 달라고 소리를 치고 있는 거예요. 단 몇 분이면 내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이렇게 객관적인 숫자로 들여다볼 수 있잖아요. 저처럼 검사 결과가 심각하게 나오더라도 절대 겁내지 마세요. 오히려 곪은 상처를 정확히 아는 것이 치유를 시작하는 가장 완벽한 첫걸음이니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60대, 70대의 긴 삶을 캄캄한 우울함에 잡아먹히게 내버려 둘 순 없잖아요. 도움을 청하고 약을 먹는 건 결코 흠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에요. 오히려 내 남은 소중한 인생을 더 건강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평안하게 살아가기 위한 엄청난 용기랍니다.
혼자서 답답한 어둠 속에 갇혀 계시지 말고 꼭 자가점검부터 시작해서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해 보세요. 저 역시도 매일 알약 하나와 산책으로 잃어버렸던 제 일상의 색깔을 다시 조금씩 칠해나가고 있으니까요. 여러분도 꼭 도움을 받으시고, 다시 편안한 숨을 쉴 수 있는 내일을 맞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