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으신 일들은 결코 '괜찮은' 것이 아니며, 당신의 감정은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합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패륜아'라는 비난에 흔들리지 마세요. 당신의 엄마가 하신 말씀들, "성격 좀 고쳐," "공부라도 잘 해야지," "넌 남자/여자 못 만나," 그리고 보상을 요구하는 모든 언행은 심각한 감정적 학대이자 경계 없는 침해입니다. 7살 때부터 짊어져야 했던 장녀의 역할, 아버지의 위급한 상황을 '영웅담'처럼 이용하려는 엄마의 태도, 사생활 침해와 통제는 당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인형처럼 취급하려는 행위였습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 손이 떨리고 치가 떨리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당신은 예민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방식으로 부당함에 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라는 **'내 편'**이 생긴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동생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통도 깊이 이해하며, 그들에게서 받는 상처와 분노도 당연합니다. 당신이 현재 기숙사 생활로 스트레스를 덜고 계신 것, 그리고 집을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작은 주머니까지 준비해 두신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강인한 의지의 증거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감정을 의심하지 않는 것과 물리적, 심리적 독립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저는 엄마를 싫어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서히 신뢰를 잃고 싫어하게 된 것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야, 그 정도면 괜찮아. 엄마가 뭐, 때리냐? 쌍욕을 하냐? 아니잖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고, 혹은 여러분이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봅시다.
“너 그렇게 행동하면 아무도 너 안 좋아해. 성격 좀 고쳐.”
“살찌고, 예쁜 편/잘생긴 편도 아닌데 공부라도 잘 해야지.”
“내가 보기에 넌 절대 남자/여자 못 만나, 그 성격으론.”
“너 위치가 무시 당하는 위치인가보지. 무시 당하기 싫으면 목소리 크게 내던가.”
“7살이면 다 큰거야. 그러니까 넌 울면 안돼.”
기분에 변화가 없으신 분 계신가요? 상처가 되지 않은 분 계신가요? 그 분은 사람들이 기꺼이 성인으로 모실 겁니다. 평생 듣고 산 말이지만 아직도 손이 떨리고 치가 떨립니다. 집안의 장녀로 태어난게 제 선택이었나요. 뭐, 부모님 선택도 아니었습니다만, 최소한 ‘이 아이를 낳겠다’라고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행동이라고 규정하기로 했습니다. 제 엄마는 저를 게임 퀘스트처럼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저를 제외하고 제 동생들도요. 성공적인, 또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하는데 성공하면 자신에게 돈과 돌봄이라는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마땅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넌 해외 갈 생각하지 말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 가서 공무원이나 해. 그리고 돈 벌면 나 호강시켜야지.”
“넌 나중에 마케팅 같은거 해서 해외에서 일하면 내가 공짜로 여행갈 수 있겠네.”
“너가 의사되면 엄마 아플 때 공짜로 치료해줘야한다.”
어떻게든 자신이 자식을 키운 것을 돈으로 보상 받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7살 때 아빠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셔서 1년을 병원에 입원해 계셨습니다. '다 큰’ 저는 어린 동생들을 대신해 아빠가 어떻게 쓰러졌고, 어디가 아프며,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모든 것을 듣고 외할머니와 함께 동생들을 챙기는 역할을 맡아야 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말도 했고요.
“내가 너희 아빠 발견 안 했으면 아빠는 죽고 없어. 그러니까 감사하게 생각해.”
너무 화나서 울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충격을 받아 우는 줄 아셨지만 화가 나서 울었습니다. 아빠가 아파서 사경을 헤맬 때 그걸로 자신을 영웅화하는 것같았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조금씩 신뢰를 잃기 시작한 것같습니다. 그 후에는 엄마가 말 안 듣는다고 막 혼내다가 쓰러지셨는데, 동생들 울 때 저는 “야, 믿지 마! 저거 다 연기야! 니네 말 잘 듣게 하려고 연기하는 거라고!”라고 소리치면서 엄마를 돕지 않았습니다. 그게 7살 때였던 것같습니다. 전 아직도 그게 하나의 퍼포먼스라고 믿습니다. 자기 말을 듣게 하기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저희 집은 프라이버시라는 것이 없습니다. 핸드폰 비밀번호를 설정하면 혼나고, 엄마가 보는 앞에서 폰을 하면 바로 검사를 받고, 방 문을 닫으면 다시 열어두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한번은 저희 집 강아지 사진이 좀 귀엽게 나와서 엄마 보라고 잠시 폰을 드렸는데, 한참 시간이 흘러도 돌려주지 않길래 봤더니 저와 친구의 모든 문자 내역을 훑어보고 계셨습니다. 그 뒤로 절대 제 폰을 남의 손에 쥐어주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엄마는,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내가 니 엄만데 딸 뭐하는지도 못 봐? 너 진짜 너무하다. 엄마한데 그러는거 아니야.”라고 하십니다. 저는 그냥 인형입니다. 엄마가 조종하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사포질로 고치고, 물감으로 덮어버리는.
몇 달 전에 한번 엄마와 이 일로 크게 싸웠는데, 이런 일들에 전혀 모르던 아빠가 이런 사정들을 알게 되셨습니다. 물론 엄마는 듣기 싫다며 방에 들어가버리셨습니다. 하지만 제 편이 생겼습니다. 원래 아빠는 늘 엄마 편이었고, 전 그래서 아빠도 싫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저에게 했던 말들, 행동들을 아빠가 보다 상세히 아시게 된 후, 이젠 엄마 편을 잘 들지 않으십니다. 적어도 엄마로 인해 시작된 일들에 대해서는요. 엄마가 제가 하는 말을 전부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진행하려 할 때, 엄마는 제가 버릇 없는 애라고 화를 냅니다. 원래라면 아빠도 엄마 편을 들면서 저보고 오냐오냐 해줬더니 버르장머리가 없다면서 화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요새는 엄마가 아빠에게 제 흉을 보면 “자기가 알아서 해.”하고 선을 그어버리십니다. 뭐, 엄마가 스스로를 “아이를 생각하는 착하고 참을성 있는 엄마지만 정작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불쌍한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신념을 강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그래도 집에 제 편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동생들은 제 편이 아닙니다. 무서워서 울면 병신이라고 부르고, 자기 말을 안 들으면 씨발년, 멍청한 쓰레기 새끼, 빡대가리라고 부르는게 일상입니다. 자기 기분 좋으면 잘 놀고 잘 지내지만, 언제 돌변할 지 모릅니다. 이 글을 보면 또 다시 쌍욕질을 하겠군요. 아무렴 어떱니까. 이 글은 우리 가족 중 아무도 못 볼건데요. 여동생은 저와 2살 터울, 남동생은 4살 터울입니다. 여동생은 개월 수로는 1살 차이라, 나이차가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만만하게 보고요. 저와 한 약속은 절대 지키지 않습니다.
“약속은 깨도 되는거 아니야? 깨도 돼서 약속이잖아.”
여동생의 어록입니다. 같이 놀자고 불러놓고는 혼자 핸드폰하면서 저는 신경도 안 쓰고, 왜 같이 안 노냐고, 핸드폰 하지 말고 같이 그림 그리자고 하면 또 저는 말할 쌉새끼가 됩니다. 결국 저는 거실에 나가서 부모님이 보는 예능을 보고, 여동생은 남동생과 놉니다. 남동생은 엄마의 편애를 받으며 컸습니다. 막내에다 남자여서, 화가 나서 남을 때려도, 심지어 엄마를 때려도 “어머, 그러면 안되지.”하고 끝납니다. 정말 이게 끝입니다. 덕분에 남동생은 분노조절장애에 게임 중독으로 살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욕을 하고, 신경질을 내고, 물건을 내리치고. 걔는 그래도 됩니다. 안 혼나니까요. 자기는 이 집의 유일한 아들이기 때문에, 귀하기 때문에 혼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동생들 중에는 얘가 제일 싫습니다. 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습니다. 저는 저희 집 강아지와 아빠가 제일 좋습니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집을 나갈 겁니다. 사실 지금은 언제 집을 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작은 주머니에 통장과 도장, 현금들을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챙긴 상태입니다. 현재 기숙사에 살아서 스트레스가 덜하지만, 집에 가는 직후부터 스트레스 시작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싫다는 이야기를 하면 저는 패륜아, 불효녀가 됩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거다, 니가 예민한거다, 감사하게 살아라, 맞는 애들을 니가 몰라서 그런다, 이런 말만 들었습니다. 이젠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예민한건지, 뭐가 잘못된건지도요. 확실한건 제가 적은 것들은 정말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런 일이 거의 매일 반복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