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는 동안 행복하게 사시는 분이란걸 느꼈어요. 앞으로도 행복하시길 응원합니다.
안녕하세요. 제 MBTI는 ‘ISTP’입니다.
MBTI를 처음 해보게 된 건 10년전쯤이었을까요? 재밌는게 인터넷에 있다는 직장 동료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이 MBTI 성격유형 검사가 그저 재미로 하는 것 정도로 인식 했었는데요, 하지만 인터넷에 있는 간단한 검사를 진행해보고 막상 결과지를 받아보니 ‘어? 이거 꽤나 정확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ISTP로 진단받았고 부연 설명에는 ‘과묵하고 현실적이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이마를 탁~쳤습니다. 제가 그런사람 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저를 종종 ‘무뚝뚝하고 정없는 사람 아닌가?’라는 오해를 하곤 합니다. 실제로 저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느끼는거 같아요. 하지만 저를 오래 알아온 사람들은 압니다. 겉은 정없어 보이지만 속은 꽤 다정하다는 것을요. 아마 이것도 ISTP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이지 싶네요.
제가 아내를 처음 만난 건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친구의 지인으로 술자리에 나왔을때 처음 봤습니다. 비록 다른학교에 저보다 학번은 3학번 아래 였는데요 어쩌다보니 같이 토익스터디도 하게 되었어요.
그때 저는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였고, 아내는 활발하고 명랑한 성격의 그야말로 ‘인싸’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MBTI로 치면 상반되는 유형이었죠. 아내는 지금은 감성있는 F에 가까워 졌는데요 그때는 아마 ENTJ였던 걸로 기억됩니다. ISTP와 ENTJ의 조합이라면, 그땐 MBTI에 대해 조예가 없어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엄청 흥미로운 조합 이었습니다.
우리는 처음엔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스타일이었고, 아내는 즉각 바로바로 대화로 풀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여자와 함께 있으면 재밌고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별다른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았고, 가끔 제 시시한 농담에도 큰 리액션으로 웃어주는 모습이 참 기분좋게 느껴졌습니다. 사실은 얼굴이 예뻐서 좋아 했던게 크긴 합니다. ㅋㅋ
그 이후 부터 제 ISTP식 연애 방식이 작동 했습니다. 약간의 썸이랄까? 그런단계에서의 이야기 입니다만, 저는 그녀에게 먼저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의 학교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그녀를 기다렸다가 같이 버스를 타고 가주었고, 비가 오면 말없이 찾아가서 우산을 건네주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행동이 제게는 그저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표현이 서툰 저는 ‘괜히 말로 고백공격하면 어색해질까 봐’ 은근히 신호를 주는 행동으로 대신했던 거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바로 ISTP다운 방식이었습니다.
아내는 나중에야 그걸 알았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오빠가 자꾸 찾아오고 비오는날은 우산 빌려주러 오고 하던 때, 사실은 그냥 같은 스터디라서 그런 줄 알았어. 아니면 학교가 근처에 있어서 그런가하고…그런데 계속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이건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는 걸 느꼈지. 이놈 날 좋아하는군 후후”라고 말하던 기억이 납니다.
ISTP는 연애할 때 ‘감정 표현이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드디어 사귀기 시작한 시절에도 ‘너무도 무심하다’, ‘연락 좀 자주 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저는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그냥 전화기가 어색한 것 뿐 이었습니다. 누군가와 하루 종일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너무 힘겨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저의 성격을 말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땐 늘 행동으로 제 마음을 대신 표현 했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던 브랜드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도서관 책상 위에 올려놓고 포스트잇에 ‘잘하고 있어!‘ 만 적어 붙여 놓았습니다. 말로하는 것보다는 글이 편했고, 몸으로 때우는게 편했습니다. 그게 제 진심을 보다 쉽게 그녀에게 보여주는 방법이었습니다.
연애 초기에는 그런 제 모습을 답답해하던 아내도,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을 했는지 조금씩 이해해주었습니다. “오빠는 진짜 표현이 서툴지만, 마음은 확실히 우직해. 곰같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참 고마웠습니다. 저를 알아준 것 같아서요.
ISTP는 감정에 솔직하지 않다는 오해를 받기 쉽지만, 사실은 마음속으로는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걸 굳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뿐이죠. 아내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아줬습니다. 그래서인지 함께 있을 때면 별 말 없어도 기분이 편안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제 ISTP적인 사랑법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금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 변했습니다. 연애 시절에는 커피 한 잔, 쪽지 한 장 으로 마음을 전했다면, 결혼 후에는 생활 속 작은 배려로 사랑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오래 공회전 하면 환경파괴에요)
겨울에는 아침에 주차장에 내려가서 아내가 출근하기 전에 차 시동을 켜서 예열해두거나, 가방에 잊고 가는 물건이 없나 챙겨 주는 일 같은거요. 이런 행동들이 제 방식의 ‘사랑해~’라는 외침입니다. 이제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걸 아내는 다 알아채 줍니다. 오랜 세월 함께하다 보니, 말보다 습관이 서로의 마음을 대신하게 되었달까요. 그냥 포기한걸까요?ㅎㅎ
저는 여전히 ISTP다운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겉으로는 무심한 듯하지만 속으로는 늘 생각하고 챙기는 사랑. 그것이 제 삶의 나름의 철학까지는 아니고 고집 정도? 됩니다. 이게 아내와의 관계를 은근하지만 깊고 길게 지켜온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아이들이 자라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가 될텐데요, 그때를 대비해서 저는 또 다른 방식의 사랑도 연구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씩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학교 어땠어?”, “힘든 일 있었니?”처럼 짧은 대화를 먼저 시작하려 합니다. 여전히 어색하긴 하지만, 그 작은 시도가 우리 가족을 더 가깝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젊은 시절 ISTP로서 매우 과묵한 연애를 했습니다. 감정의 휘몰아치는 파도와 거친 소용돌이 보다는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하게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그때보다 조금 더 따뜻함을 밖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여전히 표정은 무뚝뚝하지만, 입은 사랑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려 노력합니다. 짧은 말 한마디, 따뜻한 손길,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 제 사랑이 녹아 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제 무뚝뚝함은 단점이 아니라, ‘진심을 오래 지키는 방식’으로 작동해 주었습니다.
젊은 시절은 ISTP로서 그런 방식으로 연애했고, 지금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변함없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말보다 행동이 더 편한 ISTP의 사랑이었지만 이제 따뜻한 말들을 곁들인 사랑으로 나아가는것. 이것이 제가 평생을 두고 이어가고 싶은 사랑의 방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