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좁혀지지 않는 장모님과의 평행선 이야기

 

 

안녕하십니까. 저는 추석이야기로 매년 명절마다 반복되는 저희 처가댁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어김없이 올해도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전날 밤, 차 트렁크에 과일 상자와 한우 세트, 그리고 장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약과를 채워 넣었습니다. 뒷좌석에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 두 딸아이가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보며 앉아 있고, 조수석에 앉은 아내의 얼굴에는 연휴의 기대감보다는 희미한 긴장감이 서려 있습니다. 시댁과 처가를 오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부부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그 미묘한 공기입니다.

 

장모님 댁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훅 끼쳐오는 것은 고소하지만 이제는 어딘가 숨이 막히는 짙은 기름 냄새입니다. 추석 일주일 전부터 틈틈이 시장을 보시고, 하루 종일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며 집안 전체에 배어든 명절의 냄새입니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전기 그릴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고, 그 앞에는 올해로 칠순을 넘기신 장모님께서 땀 흘리며 앉아 계십니다. 명태전, 꼬치전, 동그랑땡, 육전, 채소전 등 종류를 헤아리기도 힘든 전들이 소쿠리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아이고 오니라 고생했다. 차 안 막히더나?"

 

웃으며 우리를 반기시는 장모님의 손목과 목과 허리에는 어김없이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제 마음 속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생깁니다.

 

장모님은 평생을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오신, 우리네 전통적인 어머니의 표본 같은 분입니다.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나신 후, 오롯이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건사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오셨습니다. 그런 장모님에게 '제사'란 단순히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하는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돌아가신 남편에 대한 도리이자, 집안의 어른으로서 자식들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이었고, 당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무대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위인 제 마음이 버텨내기에 그 무대는 매년 너무나도 가혹하고 가련한 모습이었습니다. 명절이 끝날 때마다 장모님은 고생으로 앓아누우셨고, 양 손목과 목과 허리에는 빈틈없이 파스가 붙여졌습니다. 저에게, 이러한 명절의 풍경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자기 학대처럼 보였습니다.

 

가장 답답한 것은 정작 그 힘들게 만든 제사 음식을 딱히 먹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창 입맛이 변해가는 두 딸아이는 기름진 전이나 밍밍한 나물보다는 피자나 치킨, 파스타를 훨씬 좋아합니다. 우리 어른들 역시 명절 내내 똑같은 음식을 데워 먹다 보면 결국 물리게 되어, 명절이 끝나면 냉장고 구석에 방치되다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것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러던 몇 년 전 추석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시는 장모님을 보며, 저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결심했습니다.

 

"장모님, 어차피 기제사는 모시니까 내년부터는 명절 제사 그만 모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아주 간소하게 밥 한 그릇에 국 하나만 올리시지요. 연세도 있으신데 매번 이렇게 무리하시다가 진짜 큰일 나십니다."

 

아내도 옆에서 조심스럽게 거들었습니다.

 

"맞다, 엄마. 요즘 누가 이렇게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는데. 애들도 제사 음식은 입에도 안 대잖아. 엄마 아픈 거 보는 게 우리가 더 힘들다."

 

저는 속으로 '시대가 변했고, 합리적인 이유가 충분하니 당연히 수긍하시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장모님의 반응은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씰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림없는 소리다. 조상님이 굽어살피시고 느그 아빠가 돌봐줘서 너희들이 그나마 이만큼 무탈하게 사는 기다. 오데서 근본도 없이 제사를 없애자는 소리를 하는기고?”

 

하며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장모님의 눈빛에는 단순한 거절을 넘어, 당신의 평생에 걸친 신념을 부정당한 듯한 서운함이 서려 있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논리나 합리성으로는 결코 뚫을 수 없는 견고한 감정의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명절 때마다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었습니다. 장모님은 몸을 혹사시키며 음식을 산더미처럼 하셨고, 저희 부부는 죄인처럼 그 옆에서 눈치를 보며 일을 거들었습니다. 명절의 기쁨이나 가족 간의 정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의무감과 피로,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만이 감돌았습니다.

 

작년 추석을 앞두고, 저는 새로운 전략을 세웠습니다. 무작정 명절 제사를 없애자고 하는 것이 반발을 불렀으니, 매력적인 대안을 제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사 대신 여행이나 가자고 운을 띄웠습니다.

 

"장모님, 이번 추석에는 진짜 음식 하지 마세요. 제가 경치 좋은 리조트에 예약해 두었습니다. 관광도 하시고, 맛있는 것도 사 먹으면서 푹 쉬다 오시지요. 제사는 여행 가서 마음으로 지내도 장인어른도 다 이해하실 겁니다. 애들도 할머니랑 여행 가고 싶다고 난리입니다."

 

여행지 모습까지 폰으로 보여드리며 간곡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차라리 그 돈을 들여서라도 이 지긋지긋한 명절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장모님도 평소에 다리가 아파 여행을 자주 못 가셨으니 내심 좋아하시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번에도 싸늘했습니다.

 

"너희들이나 가라. 나는 집에 있을란다, 나는 못 간다."

 

순간,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습니다.

 

"장모님, 도대체 제사가 뭐라고 왜 이러십니까!"

 

결국 제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았습니다. 항상 정중함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그 순간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먹지도 않을 음식 산더미처럼 해놓고 어차피 다 버리게 되는데, 왜 몸까지 상해 가며 사서 고생을 하십니까? 장인어른이 살아계셨다면 장모님께서 이렇게 골병드는 거 원치 않으셨을 겁니다! 산 사람이 살아야지, 죽은 사람이 먼저입니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제사입니까!"

 

높아지는 언성에 아내가 깜짝 놀라 제 팔을 잡아끌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장모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습니다.

 

"사위라고 있는 게... 나이 든 장모 무시하냐? 내가 내 돈으로 내 남편 밥 한 끼 차려주겠다는데."

 

그날 저희 가족은 도망치듯 장모님 댁을 빠져나왔습니다. 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아내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고, 뒷좌석의 아이들은 잔뜩 겁을 먹은 채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차를 몰아 돌아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저는 끝없는 자괴감 그리고 후회에 휩싸였습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다 장모님 건강 생각해서, 우리 가족 모두가 편하자고 한 말인데. 왜 내 진심을 몰라주고 저렇게 고집만 피우실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화를 내고 돌아서 앉아 홀로 파스를 붙이고 계실 장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것은 명절이 남긴 깊고 쓰라린 상처였습니다.

 

그 사건 이후, 몇 달 동안 장모님과 제대로 된 연락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중간에서 안부를 전하며 눈치를 보는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 장모님의 생신이 다가왔고, 저희 부부는 못 이기는 척 다시 장모님 댁을 찾았습니다.

 

어색한 식사 자리가 끝나고, 장모님이 조심스럽게 꺼내신 말씀은 저의 오만함을 깨부수며 철저히 무너뜨렸습니다.

 

"이 서방, 그동안 내가 너무 내 고집만 부맀다. 시대가 바뀌는 걸 늙은이가 못 따라가서 미안하다. 자네 말마따나 죽은 사람 밥 차려주려다 산 사람 다 도망가게 생깄지 뭐고. 내년 설부터는 제사 안 지내련다. 그냥 식구들끼리 밥이나 먹자."

 

그토록 완강했던 장모님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항복 선언...기뻐야 할 순간이었지만, 저는 묘한 슬픔과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장모님의 눈빛은 빛을 잃은 듯 공허해 보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가 울먹이며 제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왜 그렇게 제사에 집착했는지 알게 됐다.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자기가 자식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밥 해먹이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 같다. 제사 핑계라도 대야 흩어진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얼굴이라도 보지. 엄마한테 제사는.…..가족을 묶어두는 마지막 끈 같은거였는갑다. 당신이 여행 가자고 했을 때, 엄마는 이제 자식들이 자기를 짐으로 여긴다고 생각해서 너무 서운했단다."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저는 문제의 현상만 보았지, 그 이면에 숨겨진 장모님의 깊은 외로움과 불안감은 전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에게 제사는 없애야 할 '비효율적인 관습'이었지만, 장모님에게 제사는 당신의 인생을 지탱해 온 '존재의 이유'이자 가족에 대한 '사랑의 방식'이었습니다.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사위의 날 선 비판이, 평생을 바쳐 지켜온 어머니의 자부심을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았을지 상상하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장모님은 저희가 찾아갈 때면 늘 바리바리 반찬을 싸서 들려 보내셨습니다. 무뚝뚝한 사위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명절상에 꼭 오징어튀김을 산더미처럼 올려놓으시던 분이었습니다. 그 기름 냄새와 파스의 명절 투혼은, 미련한 고집이 아니라 차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당신만의 투박하고 눈물겨운 사랑이었습니다.

 

그 후로 우리 가족의 명절 풍경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장모님의 선언대로 제사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노인네의 오랜 습관과 신념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는 만무하니까요.

 

하지만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제 장모님은 산더미처럼 전을 부치지는 않으십니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의 가짓수도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애들이 좋아하지 않는 생선구이 대신, 아이들이 좋아하는 불고기와 잡채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도 한결 가벼워졌고, 음식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시간도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명절날 오후에는 함께 거실에 모여 앉아 과일을 깎아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나눕니다. 장모님의 허리에 파스를 붙여드리는 대신, 아이들과 함께 장모님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웃음꽃을 피웁니다.

 

여전히 명절이 다가오면 약간의 긴장감은 있습니다. 가끔은 예전의 고집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셔서 저희를 당황하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과거처럼 불도저식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습니다. 장모님의 고집을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품어야 할 세월의 흔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논리와 합리성이라는 잣대로 가족의 마음을 난도질하는 우를 다시는 범하고 싶지 않습니다. 갈등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며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명절을 앞두고 가족 간의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로 가슴앓이를 하고 계신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며느리의 입장에서, 사위의 입장에서, 혹은 부모님의 입장에서 각자의 억울함과 서운함이 존재할 것입니다.

 

제가 감히 조언을 드릴 자격은 없지만, 지난 몇 년간의 처절했던 갈등과 반성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 자식 간에 갈등이 생기는 원인은 서로 다른 세대를 살아오며 굳어진 '방식의 차이'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이면에 있는 외로움과 사랑을 먼저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다음 명절에는 잔소리나 훈계 대신,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손을 한 번 더 따뜻하게 잡아드리는 것은 어떨까요?

 

"엄마, 장모님, 이제 그만하시고 쉬세요"

 

라는 명령조의 말보다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 덕분에 우리 가족이 이렇게 건강하게 잘 지냅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곁에 오래오래 계셔 주시는 게 저희에겐 더 큰 행복이니, 조금만 덜 하시고 같이 웃으며 명절 보내요"

 

라고 부드럽게 마음을 전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모쪼록 이번 추석이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가정에, 갈등과 다툼보다는 이해가, 상처보다는 따뜻한 미소가 가득한 넉넉한 한가위가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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