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이에도 서로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한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 불편해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편하게 만나고 싶은데 이상하게 약속 날짜나 시간을 정할 때면 늘 제가 맞춰주는 쪽이 되는 것 같거든요.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어요. 누구나 바쁜 날이 있고 개인적인 사정도 있으니까 친구가 편한 시간에 맞춰줄 수 있으면 맞춰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도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굳이 제 시간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니까 조금씩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친구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해 놓고도 날짜를 정할 때는 자기가 가능한 날만 이야기해요. 제가 다른 날은 어떠냐고 물어보면 그날은 안 된다거나 그 시간에는 다른 일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물론 정말 사정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친구가 편한 시간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고 제 시간은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저도 집안일이 있고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도 있잖아요. 특별히 중요한 약속이 없다고 해서 하루 종일 시간이 남아도는 건 아닌데 친구는 제가 언제든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가끔 제가 그날은 조금 어렵겠다고 이야기하면 친구가 다른 날짜를 찾아보기보다는 그럼 다음에 보자고 해요. 그러다가 며칠 지나 다시 연락이 오면 또 자기가 편한 날짜를 이야기합니다. 이런 식으로 반복되다 보니 결국 만나려면 제가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렇다고 친구가 대놓고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건 아니에요. 자기 사정을 설명하면서 그날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하니까 제가 굳이 따지기도 애매합니다. 친구 입장에서는 가능한 시간을 이야기한 것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제 사정은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제가 언제 편한지 먼저 물어봐 주거나 서로 중간에서 맞춰보려는 모습이 조금만 있어도 이렇게까지 서운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항상 제가 양보해야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이 드니까 약속을 잡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워지네요.
만나는 장소를 정할 때도 비슷한 경우가 있어요. 친구가 가고 싶은 곳이나 이동하기 편한 곳을 먼저 이야기하고, 제가 다른 곳을 제안하면 거기는 불편하다거나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해요. 그러면 결국 친구가 이야기한 곳으로 정해지는 일이 많습니다.
저도 그 장소가 아주 싫은 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곤 해요. 그런데 날짜도 시간도 장소도 자꾸 한쪽에 맞춰지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왜 이렇게까지 맞춰주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괜히 그런 생각이 날 때가 있어요. 오늘도 결국 친구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나가는구나 싶어서요. 막상 만나면 또 평소처럼 이야기도 나누고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약속을 정할 때 느꼈던 서운함이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사실 제가 처음부터 너무 쉽게 맞춰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친구가 그날 괜찮냐고 물어보면 제 일정이 조금 애매해도 괜찮다고 했거든요. 웬만하면 서로 편하게 만나자는 생각이었는데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친구도 제가 시간을 잘 맞춰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요즘은 제가 불편한 날에는 어렵다고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친구가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면 또 마음이 약해져요. 어차피 조금만 움직이면 만날 수 있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그러고 나면 나중에 혼자 서운해하는 제가 답답해집니다. 제가 스스로 맞춰주고 있으면서 상대방이 알아서 배려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그렇지만 친구 사이라는 게 꼭 말을 해야만 서로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면 가끔은 상대방이 편한 시간도 물어보고, 이번에는 내가 맞춰볼게 하는 말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저도 친구에게 매번 양보하라고 바라는 건 아닙니다. 서로 형편이 다르니까 어떤 날은 제가 맞추고 어떤 날은 친구가 맞추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균형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한편으로는 친구가 저를 편한 사람으로 생각해서 그러는 건가 싶기도 해요. 가까운 사이니까 굳이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자기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걸 수도 있겠죠. 그런데 편한 사이일수록 상대방의 시간도 소중하게 생각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도 예전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서로 건강하게 지내면서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사소한 문제로 마음이 멀어지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작은 서운함이라고 계속 참기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일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친구가 약속을 잡자고 연락해도 반가운 마음보다 이번에는 또 언제 나오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 때가 있거든요.
친구를 만나기 싫어진 게 아니라 약속을 잡는 과정에서 제 사정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상하는 거예요.
차라리 한번 솔직하게 이야기해 볼까 싶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내가 편한 시간에 맞춰줄 수 있겠느냐고 가볍게 물어보면 될 것 같은데 막상 그러려니 괜히 생색내는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돼요. 그동안 아무 말 없이 잘 맞춰주다가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렇다고 앞으로도 계속 친구가 정하는 대로 움직이면 제 마음속에 서운함만 더 쌓일 것 같습니다. 작은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네요.
혹시 주변에 약속을 잡을 때마다 자기 편한 날짜와 시간만 고집하는 친구가 있으신가요?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맞춰주는 게 자연스러운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서로 가능한 시간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게 좋은 건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