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여친과 헤어진 뒤에야 알았습니다, 내가 사랑한 게 아니라 계속 눈치를 보고 있었다는 걸
전 여자친구와는 1년 반 정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제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퇴근하면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누구보다 먼저 물어봐 주고, 제가 힘들다고 하면 “오빠는 내가 다 이해해 줄게”라고 말해 주던 사람이었습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래 얘기도 많이 했고, “우린 서로밖에 없으면 돼”라는 말도 자주 했어요. 당시에는 그 말이 깊은 사랑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조금씩 이상해져도, 처음의 다정했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여자친구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때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서운한 일이 있나 보다 했어요. 그런데 친구를 만나는 날이면 “나는 항상 뒷전이지?”, “친구들이 나보다 더 중요한 거야?”라는 말을 들었고, 가족 모임이 있는 날에는 “그럼 나는 오늘 혼자 있으라는 거네”라는 식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는 괜히 싸우기 싫어서 친구 약속을 줄이고, 가족과 있어도 틈날 때마다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맞춰 줄수록 관계가 편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요구가 하나씩 더 생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회사 회식이 있던 날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회식이 있다는 건 며칠 전부터 말했고, 시작할 때도 연락했습니다. 중간에 업무 전화가 와서 약 30분 정도 답장을 못 했는데, 휴대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여러 개 쌓여 있었습니다. “왜 답이 없어?”, “여자랑 있는 거 아니야?”, “너는 내가 불안해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지?” 같은 말들이었어요. 바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지만 그녀는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억울하다고 하면 “또 변명하네”, “내 감정을 무시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목소리가 조금만 높아져도 “화내는 걸 보니 찔리는 게 있나 봐”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저는 회식에 간 것, 답장이 늦은 것,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 것까지 전부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정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전날 상처받은 일이 사라진 게 아닌데도, 다시 꺼내면 또 싸울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가게 됐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저는 제 감정이 맞는지부터 의심하게 됐습니다. 원래는 불합리한 일이 있으면 제 의견을 말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어떤 말을 해야 그녀가 화내지 않을지만 생각했습니다. 퇴근하고 잠깐 쉬고 싶어도 연락을 늦게 하면 안 됐고, 친구에게 답장을 보내는 일조차 눈치를 봤습니다. 저에게도 힘든 일이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힘들다고 하면 결국 “나는 더 힘든데 왜 네 얘기만 하냐”는 식으로 대화가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느끼는 서운함이나 분노는 자연스럽게 사라진 게 아니라, 말하면 안 되는 감정처럼 마음속에 쌓였습니다.
특히 아버지 병원 진료에 같이 갔던 날이 잊히지 않습니다. 병원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보호자 설명도 들어야 해서 휴대폰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여자친구는 제가 연락이 늦었다는 이유로 크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제가 상황을 설명하자 “결국 오빠는 내가 아니라 가족이 먼저네”, “내가 아플 때도 이런 식으로 할 거지?”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나기보다는 허무했습니다. 가족에게 일이 생긴 날조차 상대의 기분을 먼저 달래야 한다면, 이 관계에서 저는 언제 제 삶을 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바로 헤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녀가 다정했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고, 싸운 뒤에는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오빠를 너무 좋아해서 그래”라며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저도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제가 조금 더 잘하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렇게 끝내면 제가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더 지치고,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집에서도 웃는 일이 줄었습니다. 연애를 하고 있는데도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고, 함께 있을 때보다 연락이 없을 때 더 편안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결국 저는 큰 사건 하나 때문에 관계를 끝낸 게 아니라,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된다는 걸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툴 때 그녀가 “네가 나를 이렇게 예민하게 만든 거야”라고 말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바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네 감정을 배려할 수는 있지만, 네 감정을 전부 책임질 수는 없어. 내 친구, 가족, 회사 생활을 죄책감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에도 붙잡는 연락과 비난이 번갈아 왔지만, 저는 길게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직접 만나면 다시 흔들릴 게 뻔해서 짧게, 분명하게 관계를 끝내겠다고 말했습니다.
헤어진 직후에는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분명 제가 원해서 끝낸 관계인데도, 제가 너무 차갑게 굴었나 싶었고 그녀가 잘해 줬던 순간들만 떠올랐습니다. 연락이 오지 않아도 계속 휴대폰을 확인했고, SNS를 보며 다른 사람이 생긴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다시 연락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연락처와 SNS를 정리했습니다. 바로 지우기 어려운 사진과 대화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겼고, 충동적으로 연락하지 않기 위해 번호도 차단했습니다. 그녀를 벌주려는 게 아니라, 제가 다시 그 관계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습니다.
그리고 싸웠던 상황들을 메모장에 적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어떤 일로 다퉜는지, 제가 어떤 말을 들었는지,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가능한 한 사실 위주로 썼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일보다 좋았던 순간만 떠오르고, ‘내가 예민해서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록을 모아 보니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친구를 만날 때, 회식을 할 때,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 답장이 늦을 때마다 의심과 비난이 시작됐습니다. 그걸 보면서 비로소 제 감정이 과한 게 아니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혼자 감당하지 않기로 한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남자가 연애 문제로 힘들었다고 말하는 게 괜히 창피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친구 한 명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더니, 친구는 저를 판단하지 않고 제 말을 들어 줬습니다. “왜 이제야 말했냐”고 하면서도 제 편을 들어 줬고, 한동안은 제가 괜찮은지 먼저 연락해 줬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내가 힘들었던 일을 말한다고 해서 약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요. 오히려 혼자 버티는 동안 제 판단이 더 흐려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생활을 다시 채우는 일도 필요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무조건 연락을 기다리던 습관이 남아 있어서 처음에는 빈 시간이 너무 어색했습니다. 그래서 가볍게 운동을 시작하고, 주말에는 미뤄 뒀던 약속도 잡았습니다. 친구들과 밥을 먹고 별것 아닌 얘기를 하면서 웃는 시간이 늘어나자, 예전의 제가 조금씩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잠이 안 오는 날에는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고 산책을 하거나 일기를 썼습니다. 감정이 너무 오래 가라앉지 않을 때는 상담도 받았습니다. 상담을 통해 제가 배운 건,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불안과 분노를 전부 감당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겪고 나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사랑을 바라보는 기준입니다. 예전에는 상대가 불안해하면 제가 더 많이 양보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배려와 통제가 다르다는 걸 압니다. 배려는 서로의 사정을 듣고 조율하는 것이지만, 통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간관계, 시간, 감정까지 마음대로 정하려는 것입니다. 누군가 제 친구나 가족, 일을 이유로 죄책감을 주고, 반복해서 제 말을 믿지 않으며, 제 경계를 무시한다면 더 이상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혹시 저처럼 관계 안에서 점점 말수가 줄고, 사소한 연락 하나에도 불안해지고, 상대가 화내지 않게 하는 것이 하루의 가장 큰 과제가 된 분이 있다면 꼭 말하고 싶습니다. 상대가 실제로 어떤 성향인지, 나르시시스트인지 아닌지를 먼저 확정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 관계 안에서 존중받고 있는지, 편하게 내 감정을 말할 수 있는지, 내 일상과 사람들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입니다. 반복되는 의심과 비난, 통제 때문에 내가 계속 작아진다면 그 감정은 충분히 믿어도 됩니다. 관계에서 거리를 두고 도움을 요청하는 건 도망도 아니고 패배도 아닙니다. 나 자신을 다시 지키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