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동료, 그리고 제가 배운 것들(사실 아직도 정리는 안됐습니다)
직장에 같은 해 들어간 직장동료였습니다. 같은팀에서만 2년 넘게 일했으니 회사에서는 그래도 적당히? 가까운 편이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 표현도 맞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가까웠다고 해야 하나, 가깝다고 착각했다고 해야 하나.
처음엔 진짜 좋은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말도 잘하고, 사람들이랑 금방 친해지고, 회의 때 보면 아이디어도 잘 내고. 저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서 솔직히 좀 부러웠어요. 나도 저렇게 말 좀 잘하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도 했었고요.
그러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왔는데... 사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요.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은 게 아니라, 자잘한 게 계속 쌓이다가 어느 날 '어? 이거 뭐지'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건 몇년전에 했었던 직장내 행사진행 이였어요.
몇 주를 날새며 갈아 넣었습니다. 밤12시 넘어 퇴근한 날이 셀 수도 없고, 주말에도 노트북 붙잡고 데이터 정리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싶기도 한데, 그땐 열심히했었어요.)
보고하는 날, 팀장님 앞에서 발표가 시작됐는데... 어? 싶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접근을 해봤는데요."
"저는 이 수치를 보고..."
계속 '제가, 제가' 라고 하는겁니다. 저는 옆에 그냥 앉아 있었어요. 뭐라고 끼어들어야 하나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그냥... 얼어붙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왜 아무 말도 못 했나 좀 답답하기도 하고 스스로 화도 납니다.
회의 끝나고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아까 그거, 제가 준비한 부분도 있었잖아요."
돌아온 대답이,
"우리 한 팀인데 내가 말 잘해서 평가 좋게 나오면 너한테도 좋은 거 잖아~ 쪼잔하게 왜그래~ㅎㅎ"
이 말 듣고 순간 멍해졌어요.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 자리에서는 그냥 "아... 그런가" 하고 넘어갔던 것 같아요. 지금 쓰면서도 좀 부끄럽네요. 왜 그때 아무 말도 못 했을까요..
이게 한 번이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계속 반복됐어요.
사람들 있을 때는 되게 친한 척했어요. "얘랑 저랑 진짜 친해요" 하면서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사주고. 근데 성과 걸린 자리만 되면 이상하게 사람이 달라집니다.
처음 한두 번은 '아 내가 예민한가 보다' 하고 넘겼어요. 근데 세 번, 네 번 반복되니까 슬슬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능력이 없나?'
'저 사람 말대로 내가 너무 쪼잔한 건가?'
이 생각을 진지하게 며칠 동안 했어요. 지금 다시 보면 좀 어이없긴 한데, 그땐 진짜 그랬어요.
출근하기가 싫어지더라고요. 뭔가 답답하고. 근데 또 회사 가면 티 안 내려고 일부러 웃고 표정관리 하구요. 이게 좀... 이중적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러다 언제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화장실에서 손 씻다가 거울 봤는데 제 얼굴이 진짜 별로였어요. 그때 뭔가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거창한 깨달음까진 아니고 그냥 '이렇게는 못 살겠다' 정도?
그때부터 조금씩 바꿨어요. 한 번에 확 바뀐 건 아니고요.
일단 업무 얘기는 말로만 하지 말고 메일로 남기자, 이거부터 시작했어요. 처음엔 이것도 좀 어색했어요. "메일로 정리해서 보내주시겠어요?" 이 말 하는데 괜히 제가 예민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눈치도 보이고.
근데 하다 보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
회의록도 꼬박꼬박 썼어요. 누가 뭐 담당인지, 회의에서 무슨 말이 나왔는지. 솔직히 이거 하면서 스스로가 좀 치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근데 효과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예전처럼 은근슬쩍 넘기려고 할 때, "그건 메일로 다시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이 말 한마디면 대충 끝났어요. 신기하게도요.
그러면서 조금씩 거리가 생기더라고요. 저한테서 멀어졌다기보다, 뭐랄까... 저를 이용하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아지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쓰면서 생각해도 좀 헷갈려요. 제가 잘 대처한 건지,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았던 건지. 여전히 회사 다니면서 비슷한 사람 마주치면 위축될 때 있어요. 완전히 극복했다고 하기엔 좀 아닌것도 같고..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말로만 하는 관계는 못 믿겠다는 거예요. 특히 이런 사람들한테는요.
친한 척하는 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 다 조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겉으론 그냥 웃으면서, 속으론 다 남겨두기. 이게 제가 배운 전부입니다. 대단한 교훈까진 아니고 그냥... 살아남는 법 정도?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