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왔는데도 머릿속이 계속 바쁘거나, 별일 없는데 괜히 마음이 산만한 날이 있습니다. 휴대폰을 계속 보고 있어도 쉬는 느낌은 안 들고요. 저는 그럴 때 차나 커피 한 잔을 일부러 천천히 마시는 편입니다.
가장 자주 마시는 건 트와이닝 얼그레이 티백입니다. 뜨거운 물에 2~3분 정도 우리면 베르가못 향이 확 올라오는데, 홍차를 처음 마시는 사람도 향의 차이를 느끼기 쉬워서 입문용으로 괜찮았습니다. 너무 오래 우리면 떫은맛이 강해질 수 있어서 처음에는 짧게 우려보는 걸 추천합니다.
조금 더 담백한 게 당길 때는 우롱차를 마십니다. 얼그레이처럼 향이 확 치고 올라오는 느낌보다는 은은하고 깔끔해서 식사 후나 오후에 마시기 좋았습니다. 홍차가 너무 진하다고 느껴지는 분이라면 우롱차부터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정말 지치고 집중이 필요할 때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합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너무 작고 쓴데 이걸 왜 마시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물 한 모금 마신 뒤 두세 번에 나눠 천천히 마셔보니 고소한 향과 쓴맛 뒤에 남는 맛이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산미가 강한 원두보다는 묵직하고 고소한 쪽이 더 잘 맞았습니다.
좋았던 점은 차나 커피 자체보다 한 잔을 준비하고 마시는 몇 분 동안 자연스럽게 속도가 느려진다는 점입니다. 물을 끓이고, 향을 맡고, 잔을 손에 쥐고 있으면 휴대폰을 잠깐 내려놓게 되고 머리도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다만 홍차와 에스프레소에는 카페인이 있어서 늦은 저녁에는 피하는 편입니다. 잠이 잘 안 오거나 카페인에 민감한 날에는 카모마일 차를 마십니다. 카모마일은 카페인이 없어서 밤에도 부담이 덜하고, 은은한 꽃향이 있어서 자기 전에 따뜻하게 마시기 좋았습니다.
처음 차에 입문하시는 분이라면 비싼 찻주전자나 도구부터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얼그레이 티백 하나, 소포장 우롱차 정도로 먼저 자기 취향을 확인해보세요. 에스프레소도 머신부터 사기보다 가까운 카페에서 한 잔 주문해보는 게 훨씬 부담이 적습니다.
그리고 밤에 따뜻한 차는 마시고 싶은데 카페인이 신경 쓰인다면 카모마일부터 시작해보셔도 좋습니다.
저처럼 하루가 길고 머리가 복잡한 분이라면 거창한 힐링 방법을 찾기보다 따뜻한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시간을 한번 만들어보세요. 몇 분밖에 안 되지만 그 시간이 생각보다 괜찮은 쉼표가 되어주더라고요.